[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의료사고 발생에 따른 의료진의 책임을 경감해주기 위한 법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의료계에선 범위와 속도 모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의료체계 붕괴가 가시화하면서 정부∙국회가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진 책임 완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타국 대비 의료사고에 따른 의료진의 부담이 큰 게 사실인데다, 젊은 의사들이 의료사고 발생 시 감당해야 하는 막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주요 이유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지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당시 의료진들이 과실치사혐의로 구속됐던 일이 지난 몇 해동안 이어지고 있는 저조한 전공의 지원율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해당 사건에 관련된 의료진들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그 사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대로 곤두박질 쳤다.
산부인과도 최근 사법부가 뇌성마비로 태어난 신생아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12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한 판결에 분노하고 있다. 분만 시 태아 및 신생아의 사망과 신생아 뇌성마비 등은 불가항력적으로 일정 수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그 책임을 의사에게 묻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분만사고 국가책임법 통과 등 의료진 부담 완화 법안 속속 '발의'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의료계의 목소리에 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대표발의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일명 ‘불가항력 분만사고 국가책임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13년부터 시행돼 온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는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 최대 3000만원까지 보상하되, 재원을 정부와 의료기관이 각각 7대 3으로 부담토록 했었다. 하지만 ‘불가항력 분만사고 국가책임법’이 통과되면서 재원 100%를 모두 정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개선됐다.
신 의원은 이 외에도 응급의료행위에 대해 고의나 중대 과실이 없는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경감 또는 면제해주는 내용의 ‘착한사마리아인법(응급의료법 개정안)’,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제도를 소아진료 중 발생한 중대한 의료사고로 확대하는 ‘소아 의료사고 국가책임법(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등도 발의해 둔 상태다.
현 수준으론 필수의료 붕괴 반전 어려워…의료사고처리 특례법 필요
의료계는 이 같은 법안 발의 자체에 대해선 평가하면서도, 내용이나 법안 처리 속도 측면에서 아쉽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분만사고에 대한 보상액은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낮고, 형사처벌 면제를 골자로 한 특례법 논의는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분만사고 국가책임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부의 보상 금액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지금 정도의 법안들론 어림 없고, 더 강력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안 발의에서 그칠 게 아니라 법안이 빠르게 본회의까지 통과할 수 있도록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의료인의 과실로 환자에게 위해가 발생하더라도 전적으로 의료인의 업무 과실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특수성을 고려하면 환자의 요인이 있는 사건에 대해선 의료인에게 형벌권을 발동하거나 손해배상 외에 추가로 불이익을 주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이어 “최근 고난이도 치료, 고위험 환자에 대한 의료인들의 소극적 태도와 적절한 의료 제공을 통한 시민 생명권 보장의 필요성을 감안할 때 의료사고처리에 관해 특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