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최근 법원이 뇌성마비로 태어난 신생아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12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의료계가 술렁이고 있다.
의료계는 분만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악결과가 발생하는 일이 빈번함에도 이를 모두 의사의 책임으로 떠넘겨 천문학적 금액의 배상판결을 내린다면 얼마 남지 않은 분만의들을 현장에서 떠나게 만들 것이라고 분노했다.
태동 약한채로 병원 방문한 임신부…法 "의사 주의의무 소홀" 책임져야
최근 수원지법 평택지원 1민사부는 신생아 부모 등이 의사를 대상으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더불어 법원은 해당 산부인과 의사에게 부모 측에 12억552만2190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해당 임신부가 출산예정일 하루 전 입원해 태동이 약하다고 증상을 말했지만, 의사가 바로 진료하지 않고 상태 관찰을 소홀히 했다며 의사의 주의의무 소홀이 신생아의 장애 발생에 있어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실제로 해당 의사는 임신부가 병원에 입원한 지 1시간 40분이 지나서야 태아의 상태를 확인했고, 뒤늦게 응급 제왕절개술을 실시했지만 태아는 자가 호흡과 심박동이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신생아는 곧바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은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뇌손상에 따른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게 됐다.
재판부는 "의사가 임신부의 상태 관찰을 소홀히 하고 대응을 뒤늦게 한 점이 태아의 장애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임신부가 이미 출산 경험이 있어 병원이 특별안 이상을 예상하기 어려웠던 점, 해당 의사가 태아를 소생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고려해 손해배상 책임 범위는 70%로 제한했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도 천문학적 배상판결 '유감'…"분만 인프라 붕괴 우려"
이 같은 소식에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재판부를 규탄했다.
직선제 산의회는 "분만이라는 본질적 위험성을 지니는 의료행위에 있어서는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하더라도 산모, 태아 및 신생아의 사망과 신생아 뇌성마비 등의 의료사고를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위험성으로 2018∼2021년까지 분만의료기관은 80곳이 문을 닫았고, 이에 따라 전국 250개 시·군·구 중 42%에 달하는 105곳은 분만의료기관이 없는 '분만취약지'로 분류된다.
직선제 산의회는 "분만의 낮은 수가와 낮은 출산율로는 분만병원 운영비와 직원 인건비를 유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선의의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인해 받게 되는 가혹한 처벌 및 천문학적인 거액의 배상판결은 많은 분만의를 위축시키고 재정난에 빠지게 하여 분만 인프라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특히 직선제 산의회는 "이번 재판부의 판결은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히 진료실과 분만실을 지키며 환자와 국민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분만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하고, 종국적으로 전국의 분만의들로 하여금 가능한 책임질 일이 없는 방어진료나 분만의 중단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직선제 산의회는 "저수가로 인해 왜곡될 대로 왜곡되어 있는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에서 고단하게 버티고 있는 의사들에게 정부는 각종 악법을 퍼붓고 있고, 사법부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지 못한 것을 죄로 물어 천문학적인 거액의 배상판결을 내리고 있다. 해당 재판부를 포함한 전국 각급 법원에서 의료분쟁 소송을 진행하는 재판부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배상 판결을 내려 줄 것을 부탁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