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인 미식축구 계에서 가장 큰 행사는 '슈퍼볼(Super Bowl)'이다. 이는 북아메리카프로미식축구리그(National Football League, NFL)에 속한 두 리그가 연초에 단판 승부를 벌이는 스포츠 행사다. 슈퍼볼의 30초짜리 광고비가 천문학적인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치매의 바이오마커에도 같은 이름, NFL이 존재한다. 신경미세사(Neurofilament light, NfL)라고 이름을 붙인 61.3 kD 단백질이 치매를 예측할 수 있는 인자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미 치매로 확정 진단을 받고 나면, 그 후의 치료 방법도 쉽지 않거니와 병의 진행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조기 진단이 중요하고, 진단 후에는 더 이상의 퇴행성 진행을 지연시키는 방법이 중요하다.
뉴런은 길쭉하고 가지처럼 뻗은 세포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세포 내부에는 긴 단백질 망으로 된 세포골격을 가지고 있다. 이 긴 단백질 망을 신경미세섬유라고 부른다. NfL은 NEFL이라는 이름의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신경미세사이고, 신경원을 형성하는 신경미세섬유의 한 종류이다.
이와 같은 신경미세섬유는 서로 합쳐져 축삭 내 신경 섬유망을 형성해 세포체에서 축삭으로의 물질 이동을 원활하게 하며, 이와 함께 미토콘드리아를 세포 내에서 이동시켜 축삭 내의 적절한 위치에 분포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앓고 있다고 알려진 샤르코-마리-투스병(Charcot–Marie–Tooth, CMT)은 유전성 말초신경병증의 일종으로, 하지 원위부의 근위축으로 인해, 샴페인 병을 거꾸로 세운 듯한 기형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이 CMT 질환을 분자유전학적으로 연구해, 유전자 변이의 종류와 병변의 소견, 그리고 임상적 장애 간의 상관관계가 밝혀졌다. 이 질환의 유전자 변이 중 CMT2E 형의 경우가 바로 NEFL 유전자의 변이에 의한 것이다. NEFL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축삭 내에서의 물질 이동 및 미토콘드리아의 분포 이상을 일으킴으로써 신경세포와 축삭의 퇴행을 초래해 말초신경병을 일으킨다.
일부 기억력 상실이 노화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전에 알던 사람의 이름을 잊기도 하고, 자동차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한 노화현상을 넘어, 이런 식의 기억력 상실이 일상 생활 영위에 어려움을 유발하고 그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면 가벼운 기억력 상실 단계(Mild Cognitive Impairment, MCI)를 의심해 봐야 한다.
치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MCI는 질병의 명칭은 아니고, 단지 사고 능력과 정보 처리 능력에 변화를 가져오는 모든 증세를 통틀어 일컫는 용어에 해당된다. 기억력의 문제 발생을 MCI의 가장 흔한 지표로 삼는다.
MCI가 있는 사람은, 자연스런 노화 증세를 경험하는 경우보다 더 심각한 판단력과 사고의 문제 그리고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평상시 본인들이 하던 활동의 대부분을 할 수 있고 독립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MCI를 가진 모든 사람이 치매에 걸리지는 않는다.
11월 12일 국제학술지인 '미국의사협회 신경학회지(JAMA Neurology)'에 뇌척수액(cerebrospinal fluid, CSF) 내의 NfL 농도로 MCI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보고가 실렸다.
이 연구는 치매 증상이 없고, 평균 연령 72세인, 648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인지기능, 뇌척수액 내의 NfL 농도, 뉴로그라닌(neurogranin), 타우(Tau), p-Tau, Aβ42수치 등을 검사해 기준 값(baseline)을 구했다. 그 후 평균 3.8년 동안 매 15개월마다 'Petersen and DSM-IV criteria' 조사를 통해 MCI와 치매 발병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648명 중 총 94명이 MCI, 4 명이 치매 증상을 보이는 것을 관찰했다. 삼분위(tertile)로 구분해 뇌척수액 내의 NfL수치가 높은 그룹이 낮은 그룹에 비해 MCI로 판정되는 경우가 3.1배 더 높았다. Tau, p-Tau, neurogranin 수치는 MCI 진행 여부와 아무런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이전 연구에서 Aβ42가 낮은 것이 MCI의 위험인자라는 것을 밝힌 사례도 있었지만, 이 인자와 뇌척수액 내의 NfL수치는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진단을 위한 바이오마커는 알츠하이머 치매 연구 및 조기 진단, 그리고 나아가 치료제 개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A/T/N' 시스템이 고안됐다. 'A'는 아밀로이드, 'T'는 타우, 'N'은 신경 퇴행성(neurodegeneration)을 의미한다. 각각을 진단하는 PET 방법이 존재하고, 혹은 뇌척수액에서 각각의 인자를 측정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이 시스템에 따라, 개개인을 A+/T+/N− 혹은 A+/T−/N−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10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알츠하이머질환 임상시험 컨퍼런스(Clinical Trials on Alzheimer’s Disease conference, CTAD)에서 차세대 PET이 각광을 받았다. '플로타우시피르(Flortaucipir)'라는 이름의 PET은 환자의 뇌에서 특정 형태의 타우를 이미지화해 감지하는 진단법이다.
이를 적용한 임상 3상의 결과 보고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타우의 접히고 얽혀진 필라멘트 형태가 더 선명하게 감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이 방법이 이미 오래 전 상용화된 N과 A를 새롭게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치매 중증도 분류 시스템인 브락 스테이지에서 5기나 6기에서만 결과가 선명하다는 점이다. 이미 질환 진행도가 상당한 환자들이 대상이 되기 때문에 조기 진단으로서의 효과를 입증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뇌척수액 내의 NfL농도를 초기 단계의 MCI 예측 수단으로 사용 가능할까.
A/T/N 시스템의 새로운 N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뇌척수액을 채취하는 것은 허리 척추에 긴 바늘을 찔러 척수액을 얻는 방법으로 매우 침습적인 문제가 있어 치매의 조기 병변의 진단용으로는 부적절하다.
뇌척수액 대신 혈장(plasma)에 존재하는 NfL수치도 비슷한 연관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이 가능하다면 간단한 피 검사만으로도 인지기능 장래를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신경병증의 분자유전학적 연구와 뇌세포생물학의 기능학적 연구를 통해 조기 환자 진단의 바이오마커의 발견과 상업화의 가능성이 활짝 열린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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