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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실 내 CCTV 설치, 외과의사는 위험 감수하는 수술 주저해 결국 환자들만 손해

    [칼럼] 박진규 대한신경외과의사회장·대한신경외과병원협의회장

    기사입력시간 2021-08-30 06:34
    최종업데이트 2021-08-31 09:41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국회 본회의 통과 절대 반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8월 23일 법안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통해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방안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개정안은 25일 새벽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 통과를 남겨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안규백, 신현영 의원에 의해 발의된 개정안은 거대야당을 통해 사실상 통과시킨다는 입장이어서 의료계, 특히 외과계의 반발을 낳고 있다. 외과계 의사단체들로부터 긴급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들어본다. 

    (글 싣는 순서, 마감순) 
    ①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②김승진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의사회장
    ③이태연 대한정형외과의사회장 
    ④박국진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장
    ⑤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⑥박진규 대한신경외과의사회장  

    [메디게이트뉴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의무화돼 시행될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은 폐쇄적인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의료분쟁을 신속·공정하게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해 의료현장을 상세히 기록하는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 같은 주장은 여론의 힘을 얻고 있다. 반면 의료인들은 대부분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며, 특히 수술환자 결과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CCTV 설치 목적은 기본적으로 일거수 일투족의 감시다. 길거리이건 차량용 블랙박스이건 CCTV는 일상을 기록하고 감시하는 용도로 만일을 대비하는 장치이다. 길거리 무인 감시 장비나 차량용 블랙박스 등은 개인의 일상을 감시하지만, 이로 인해 개인의 행위를 제한한다거나 권리를 제한하지 않으며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CCTV가 일상에 제한을 주지 않고 순기능이 강하다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으나, 수술실 내 CCTV처럼 역기능이 강하다면 충분한 숙고와 논의를 거쳐서 진행해야 한다. 역기능이 개인정보나 사생활 유출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절대 추진해서는 안되는 악법이다.

    외과의사 입장에서 CCTV는 본질적으로 수술의 집중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수술실 내 CCTV의 목적이 '의료분쟁과 소송'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으므로 수술은 '분쟁과 소송'이라는 점을 염두하고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이는 한발 더 나아가야하는 수술의 진행과정을 일정 수준에서 멈추게 하는 것으로, 환자의 장기적 예후보다 지금 당장의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되는 의료행위에 집중하는 소극적인 수술 경향을 가져온다.

    다시 말해 외과의사가 가져야하는 최선의 노력은 최소 진료로 대체될 수 있지만, 환자들은 이를 알 수 없어 최선의 수술결과를 손해볼 수밖에 없다. 이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외과의사의 사명감을 강조한다고 해결되지 못하는 자기보호를 위한 인간 본성의 문제이므로, 수술실 내 CCTV 설치로 인해 위험성을 감수하는 적극적인 수술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만큼은 분명하다. 길거리 무인 감시 장비나 차량용 블랙박스가 보편화됐다고 피해를 받는 사람은 없지만,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이런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환자들의 알권리', '분쟁과 소송'이라는 명분 하에 여론에 휩쓸리고 있어 안타깝다.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아니더라도 지금도 이미 의료계는 필수의료의 몰락을 우려하고 있다. 필수의료 중에 외과계의 기피가 심각한데, 2020년 전공의 지원현황을 보면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 등 외과계 필수과목이 모두 미달이며 신경외과 역시 겨우 정원을 채우는 정도로  한 해, 한해 근근히 버티고 있는 수준이다. 의료분쟁 조정 자동개시법(신해철법)이 2016년 국회를 통과한 후에 외과계 기피현상은 더욱 심해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수술을 감시하는 CCTV 강제화 법안이 통과되면 대한민국 외과계가 붕괴될 것이라는 탄식은 현실화할 것이다.

    수술실내 CCTV 설치법이 시행된다고 당장은 세상이 바뀌거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개인의 삶을 관통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내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술실 내 CCTV 설치법은 진료의 적극성을 훼손할 것이 분명하다. 최선의 진료와 평균진료, 그리고 기본 진료 사이의 선택이 필연적인 진료 현장에서 의료진의 결정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의 최선이 환자에게 최선이지만, 결과에 따라서는 소송의 대상이다. 외과의사의 수술의 정도를 환자나 보호자는 절대 알 수 없으며,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최악인 것인지 알 수 없어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외과의사는 최선의 수술결과를 위한 노력보다는 기본진료, 평균진료에 머무를 것이다. 

    정치인, 법조인, 그리고 의료인들은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이다. 사이버 세상에서 온갖 비난과 폄하를 받지만 실제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자격증이라는 규범적 권위와 문제에 대한 해결이라는 지적 권위를 가지게 된다. 전문가 집단에게 이 권위는 곧 명예이며, 명예는 또한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명예는 경제적 보상으로만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기반으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다.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외과의사 권위와 명예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의료진들의 권위와 명예의 추락이 사이버 세상의 환호와 함성을 가져오겠지만, 실제 진료실의 윤활작용을 망가뜨려 의료와 국민건강의 체계를 삐걱거리게 할 것이다. 

    개인의 삶과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정책이 시간이 지나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지해 다시 되돌려지기도 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보완을 명목으로 악순환의 고리로 빠져들기도 한다. 다리의 붕괴는 가장 약한 곳에서 시작되고, 시작된 균열은 대체로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균열의 시작은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유지 보수 전문가는 균열을 시작점을 찾을 수 있고 해결책도 제시할 수 있다.

    국회와 정부는 국민에게 의료의 불신을 조장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의료라는 커다란 다리의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수술성공률이 추락하고 필수의료가 붕괴될 것이라는 사실을 정부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