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이번 대선이 지난 수십년간 이어져 온 주치의제 도입 논의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여야 유력 대선주자들이 주치의제에 대해 긍정적 의견을 피력한 가운데 24일 주치의제도입을위한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4당 대선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4당 관계자들은 모두 주치의제 도입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 구체적 실현 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측은 노인∙소아청소년 등 특정 계층을 시작으로 한 점진적 도입을, 정의당은 인구 100만명 규모의 주치의 도시 시범사업 방식을 제안했다.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주치의제 도입을 공약으로 발표했으며,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역시 주치의제 공약을 준비 중인 상황이다.
민주당 "고령층 대상 실시후 점진적 확대"...수가 고려 필요∙국민 의료이용 과도 제한 안 돼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민주당이 생각하는 주치의제 구현 방식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작하는게 아니라 노인, 장애인, 아동 등 각별한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분들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며 “단계적으로 모든 국민들 대상 확대 적용 가능성도 열어뒀다”고 했다.
신 의원은 코로나가 촉발한 감염병 시대에 전 국민이 주치의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했다. 미지의 감염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부터 백신접종 후 이상반응, 재택치료 과정에 서 우려까지 국민들이 믿고 상담할 주치의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신 의원은 “이 외에도 국민들은 평소에 특정 증상이 있을 때 어느 병원, 어느 의사에게 가야하는지에 대해 판단이 쉽지 않고, 대형병원에 중증질환으로 입원해 있을 때도 본인의 상태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주치의들이 중간에서 역할을 해준다면 국민들의 의료이용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주치의는 의료 과잉 이용, 의료비 증가, 고령층 약물 과다복용 등의 문제 해결에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밝혔다.
다만 신 의원은 주치의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상과 현실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단 점을 분명히 했다.
신 의원은 “지금 일차의료에선 단과 전문의들이 다수인데 단과 전문의원과 포괄적 진료가 가능한 의원들을 차별화할지 통합할 것인지, 3분 진료에 익숙해져있는 의료인들이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장시간 상담한다고 할 때 어떤 기전으로 유인할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 행위별 수가제로 이런 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신 의원은 전면적 도입에 앞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우선 시작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앞서 장애인주치의제를 시작하면서 여러 현실적 벽에 부딪혔었는데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시범사업 시행 시에 좀 더 세밀하게 가능한 것부터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동구강주치의제가 현장에서 상당히 효과가 있었고 긍정적인데, 요양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의 치아 건강을 전담할 주치의가 있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현실과 이상간 격차를 좁히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치의제가 도입되더라도 국민들의 의료이용 선택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는 “일정 부분 제한은 불가피하지만 국민들은 의료이용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히 높다”며 “이 수준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야한다. 그런 준비 없이 1차의료만 강요할 순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국민∙의료계 참여 유도할 '한국형 주치의제' 도입해야"...조만간 공약 발표 예정
약사 출신인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도 “현재 당에서 주치의제와 관련해 구체적 안을 만드는 중이다. 1월말 안에는 후보가 직접 발표할 것으로 본다”며 주치의제 도입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서 의원은 그간 주치의제 도입이 어려웠던 것은 국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외국식 주치의제를 획일적으로 들여오려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국형 주치의제는 의료계와 국민에게 충분한 이점을 제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은 저수가 탓에 3분진료가 불가피하고, 국민들은 의원급부터 대형병원까지 자유로운 의료기관 이용에 익숙해진 국내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낮은 수가탓에 병원은 같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환자를 봐야하고 이는 의료 질 저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을 고려해 주치의의 진료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인프라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과도 관련 있는 부분인 만큼 지속가능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일차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기위해선 주치의 자격과 기능을 어떻게 관리하고 설정할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 의원은 “의료이용에 대한 주치의에 통제 관리 권한과 이로 인한 의료인의 책임 문제도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부분”이라며 “주치의의 문지기 권한이 지나치게 크면 의료인의 부담도 커지고 국민 저항도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치의제가 좋다는 의욕만 갖고 성큼 성큼 가다간 오히려 현장에서 수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서 의원은 당사자인 의료계와 소비 주체인 국민 및 시민단체 들이 정기적으로 논의의 장을 가지며, 국민과 의료계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한국형 주치의제를 설계해 갈 것을 제안했다.
그는 “주치의제 도입이 현실화되려면 제도의 궁극적 목적이 진료비 절감, 의료이용 억제가 돼선 안 된다. 자신의 병력과 건강상태를 잘 알고 필요에 따라 알맞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줄 의사, 내가 잘 알고 나를 잘 아는 의사란 개념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의료서비스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선에서 개별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할 것인지 하는 방향으로 한국형 주치의제 모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민의당 "소아청소년부터 시범사업 실시해 효과 검토"...의료계에 대한 충분한 지원 필요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인 국민의당 위드코로나대책특별위원회 박진규 위원장도 “국민들의 합리적 의료이용 유동, 자원의 효율적 배분, 일차의료 강화란 측면에서 좋은 제도라 생각한다”며 소아청소년 등 취약계층을 시작으로 주치의제의 단계적 도입에 찬성했다.
다만 의료전달체계 문제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문재인케어는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전혀 안 된 상태에서 보장률제고에 초점을 맞췄다가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더욱 심화시켰다”며 “의료전달체계를 최우선으로 두고 주치의제 도입 모형을 신중하고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기본적 방향은 합리적 의료이용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점은 환자가 병원 선택권이 없는 것인데, 국민들이 주치의를 통해 상급병원을 가야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주치의제의 성공적 도입을 위해선 의료계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필수적이란 점도 언급했다.
박 위원장은 “일차의료기관이 충실히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의료인의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현재 진찰료는 건별로 돼있는데 충분한 진료에 대한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주치의제 도입과 관련해 의료인력 양성시 정부의 지원책이 필요하단 점도 지적했다. 실제 의사 중 40%가량이 GP인 영국의 경우, 전문의에 비해 대우가 좋은 경우도 많고, 해외유학까지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이 외에 의과대학 교육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이유로 처음에 주치의제를 시행하면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한 번 정착되고 나면 비용이 오히려 줄 거다. 대학병원에가 진료받는 것의 상당부분을 주치의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 위원장은 소아청소년, 장애인, 고령층 등의 취약계층 그 중에서도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주치의제도를 적용해볼 것을 제안했다. 소아청소년 시기에는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건강관리를 위해 주치의가 필요하지만, 실제 지역 보건의료시설 기반이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른 영향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소아청소년 시기는 예방, 진단, 조기치료 등이 가장 효과적일 때고 아동학대, 성폭력, 학교폭력도 정기적 진단과 상담을 통해 조기에 대응할 수 있다”며 “소아청소년 대상 주치의제 시범사업을 통해 효과를 충분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의당 "전국민 주치의제 5개년 계획 추진"...주치의 특별법 제정∙100만 인구 도시 시범사업
정의당 이은주 의원도 “가족이나 본인이 아플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확한 의학정보를 어떻게 찾아야할지 당황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신뢰하는 주치의가 있다면 그런 염려가 사라진다”며 주치의제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의원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외래진료건수가 OECD 국가들 중 최고이며, 평균 재원일수도 OECD 평균의 2배를 넘는다며 주치의가 있다면 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일이 줄고 필요 이상의 검사와 처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뇨병 등 외래에서 제대로 진료 받으면 굳이 입원∙응급실 방문이 불필요한 외래의료민감질환을 분석한 결과, 입원횟수, 입원일수, 응급의료이용횟수 모두 저소득층 점유율이 높았단 점도 언급했다.
이에 이 의원은 질병 발생후 치료 중심의 의료서비스에서 전생에에 걸쳐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보건의료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예방중심 의료체계로 재편을 위해선 일차의료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선진 서구국가는 모든 시민이 자신의 주치의가 있고, 이들 나라에선 1차의료기관이 의료서비스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개입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은 이미 국내에서도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 등 유사한 사업들이 시행된 바 있다며 이제는 전면적 제도 시행을 검토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심상정 정부는 출범 즉시 주치의 도입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겠다”며 “주치의가 일상적으로 환자의 건강관리를 하고 상급 병원과 연계, 퇴원 후 돌봄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치의제는 특히 특히 어르신들의 과도한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 행복한 노년을 보장하는 통합돌봄의 뿌리가 될 것”이라며 “혼자사는 청년들도 질병 걱정을 덜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주치의 특별법’을 제정해 정부조직과 예산, 의료체계 틀을 뒷받침하는 법률적 토대를 구축하고, 모든 의대에 주치의 수련과정을 설치하겠단 계획도 밝혔다.
이 의원은 “인구 100만명 규모의 주치의 도시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이 경험을 토대로 5년 후엔 전국민 주치의제가 구현되도록 하겠다”며 “고령화, 불평등 시대에 건강권 보장과 체계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전국민 주치의제 도입은 미룰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