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병원 응급 진료를 대기 없이 즉시 받기 어려운 나라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해 잉글랜드 지역에서만 응급진료를 받지 못한 환자가 40만명이 육박했으며 이는 전년도 대비 5% 증가한 수치다.
또한 이틀 이상 응급진료를 위해 대기한 환자는 5만4000여명, 사흘 이상 대기한 환자는 1만8638명에 달한다. 영국 내 응급실(A&E) 이용 대기시간은 평균적으로 12시간 이상 소요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올해 '새로운 GP 계약(New GP contract)' 조건을 발표하고 오는 4월 1일부터 실시할 예정이다.
해당 정책은 '당일 예약, 당일 진료'를 모토로 모든 응급환자가 당일에 예약을 하더라도 그날 GP 의사의 응급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진료를 의무화하는 것(same‑day urgent appointment)이 주요 골자다.
이를 위해 정부는 3억 파운드(한화 5874억원)를 GP진료소에 배정해 추가 GP를 고용하거나 기존 의사들의 진료 시간을 늘리는 데 사용할 방침이다.
영국 정부는 10년 보건 계획(10 Year Health Plan)의 중심에 GP를 두고 의료시스템 자체를 병원 중심에서 지역사회로 전환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이번 GP계약 변경도 이 같은 정책 방향성의 일환이다.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정부 출범 이후 영국은 이미 GP 2000명을 추가 채용하고 GP 진료소 시설 개선을 위해 1억 파운드(한화 1953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얼핏 보면, 일차의료를 강화해 응급의료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영국의 GP는 우리나라 일반의 개념 달리 의대 졸업 이후 별도 수련을 마쳐야 하며, 한국의 가정의학과 전문의와 비슷한 개념이다.
또한 영국 NHS는 GP진료소에서 응급환자 분류(triage)를 우선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며, 특히 주치의와 GP 중심인 1차 진료와 응급실 사이 어전트케어 센터(Urgent Treatment Centre)를 둬 응급실 과밀화를 완화하고 있다. 어전트케어 센터는 주로 경증 응급환자 진료를 제공한다.
이는 응급환자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상급 대형병원 응급실에 직접 방문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영국 보건부 웨스 스트리팅(Wesley Paul William Streeting) 장관은 "이번 투자를 통해 우리는 NHS 통로를 바로잡고 있다. GP들이 더 많은 의사를 고용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주고 추가 자금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그 결과 응급 환자들이 연락한 그날 즉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반발도 있다. 영국 의사들은 사실상 정부가 '무제한 응급진료' 책임을 의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영국의사협회(BMA) GP위원회 케이티 브라몰(Katie Bramall) 위원장은 입장문에서 "정부는 이번 GP 계약을 환자 접근성 향상의 큰 성과로 포장하려 할 것"이라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번 정책은 무제한 당일 긴급 진료로, 불가능한 수준(unrealistic expectations of unlimited same‑day urgent care)"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번 새로운 계약으로 전문의 진료 의뢰 절차에 새로운 제약이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이번 계약 변경 사항에 대해 영국의사협회와 직접 협상하지 않았다.이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응급환자가 제때 응급실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소위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 이송체계 전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시범사업'은 중증응급환자(pre-KTAS 1-2)에 대해 광역응급의료상황실(광역상황실)이 이송병원 선정을 지원하며, 중등증 이하 응급환자(pre-KTAS 3-5)는 지침 중심으로 사전 약속된 절차에 따라 이송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적정 시간 내에 병원 선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광역상황실이 의료자원 현황을 참고해 ‘안정화 처치가 가능한 우선수용병원’을 지정하게 된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상급병원 응급실 이용에 제한이 없는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은 일차의료가 응급환자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고 경증 응급환자를 분산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돼 있다. 이 때문에 영국은 GP를 통한 응급의료 강화가 가능한 것"이라며 "한국도 무작정 우선수용병원을 정해 응급환자를 밀어 넣지만 말고 적절한 재정적 투자와 함께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편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