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시범사업과 관련해 응급의학과 의사 98%가 법적 리스크를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 강행 시 사직을 고려하겠다는 비율도 41%에 달했다. 3월부터 시범사업이 시작되는 호남권 전문의들의 찬성률은 2.1%에 불과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5일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과 관련해 진행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설문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진행됐으며, 의사회 회원 1200명 중 529명이 참여했다.
정부는 응급환자의 골든타임 내 적정 응급의료기관으로의 이송 등을 목표로 3월부터 광주광역시, 전북특별자치도, 전라남도 등에서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 동안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중증응급환자(pre-KTAS 1-2)에 대해 광역응급의료상황실(광역상황실)이 이송병원 선정을 지원하며, 중등증 이하 응급환자(pre-KTAS 3-5)는 지침 중심으로 사전 약속된 절차에 따라 이송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적정 시간 내에 병원 선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광역상황실이 의료자원 현황을 참고해 ‘안정화 처치가 가능한 우선수용병원’을 지정하며, 최종 치료를 위해 전원이 필요한 경우 119가 지원한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시범사업과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사법 리스크였다. 우선 수용된 환자가 시설이나 배후진료의 한계로 불가항력적 결과가 발생할 경우 의료진 개인에게 행정적∙법적 책임이 전가될 것을 우려한다는 답변이 98%에 달했다.
의료진의 병상 부족, 배후진료 불가 등을 이유로 불가피하게 수용을 거절했음에도 행정적 처벌이 있을 것을 우려한다는 답변도 94%나 됐다.
우선수용병원에서 안정화 처치만 제공한 후 119가 다시 적정 치료기관으로 재이송하는 모델이 현실적으로 작동 불가능하다는 응답도 88%였다. 광역상황실의 개입이 증증환자 이송병원을 지금보다 더 신속하고 적절하게 선정하는 데 도움이 될 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답변이 78%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시범사업이 응급실 수용곤란 문제 해결에 실질적 도움이 될 거라고 보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3%에 그쳤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41%는 본인 지역에서 사업이 강행될 경우 사직이나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적극적인 반대활동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자는 31%, 광역상황실 상황의사 근무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응답자는 14%였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시범사업은 참여하겠다는 응답은 15%에 그쳤다.
그럼에도 시범사업이 추진돼야 한다면 선결해야 할 조건들로는 ▲의료진에 대한 면책권 보장(31%) ▲119의 재이송 책임 명문화 또는 강제화(23%) ▲현장의료진의 판단에 의한 수용거절의 보장(18%) ▲경증환자의 자의적 응급실 방문제한 대책 마련(8%) 등이 제시됐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이번 시범사업은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를 외면한 이번 시범사업은 응급의료를 망가뜨릴 무책임한 독단적 행정”이라며 “본질적 인프라 확충 없는 임시방편 처방은 응급의료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고 했다.
이어 “현장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전문가를 자처하고, 행정낭비와 예산낭비를 초래한 잘못된 정부 정책에 동조해 온 일부의 잘못된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사회는 “이번 사업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호남 지역 응급의료 체계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힐 뿐”이라며 “복지부와 중앙응급의료센터는 현장 의료진이 압도적으로 반대하는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시범사업 강행을 즉각 중단하고, 이제라도 현장 전문가들과 진정성 있는 재논의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