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료사고의 책임 감면이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의료계에선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을 중과실로 제한하거나 의료배상책임과 연계해 경과실 부분은 형사책임을 면책하는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은 30일 국회도서관에서 '의료사고의 책임감면과 필수의료 확대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모인 의료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의료인들이 의료사고에 대한 과도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필수의료과의 경우 의료행위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돼 의료사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만큼 타 과 대비 배상액수도 크다. 의료인들이 최근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바른의료연구소 윤용선 소장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이 최종 의료진 무죄가 나왔지만 해당 사건은 필수의료 분야 기피의 시발점이 됐다"며 "사건 이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이 급감했고 전반적인 소아청소년 진료 시스템이 붕괴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성남 소아 횡격막 탈장 사망사건, 자궁 내 태아 사망 사건을 비롯해 최근 응급실 뺑뺑이 대구 전공의 형사수사 사건 등도 유사한 경향이 있다"며 "의료분쟁에서 의료진의 고의 중과실이 아닌 경우 수사와 기소 단계에서부터 형사처벌을 염두하지 않는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의료분쟁 처리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해외에선 우리나라와 달리 의료분쟁에서 국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의료배상 책임보험제도를 통해 환자에게 신속한 보상과 의료인의 배상금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영국도 국가보건서비스소송국(NHSLA)을 설립해 의료과소 소송에 따른 보상처리를 국가가 대부분 담당하고 있다.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 건수도 우리나라가 압도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에서 검사가가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는 연평균 754.3건에 달한다. 이는 일본의 입건송치 건수의 14.7배에 달하며 영국 기소 건수의 580.6배다.
서울시의사회 박명하 회장은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연이은 가혹한 처벌은 대한민국 의사들이 소신껏 진료를 펼치지 못하고 젊은 의사·의대생들이 필수의료를 전공으로 선택하는데 주저하고 외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국의대 박형욱 교수는 "여러 대안이 있지만 의료과실로 인한 형사처벌은 중과실로 제한하는 입법조치와 의료배상책임을 연계해 경과실은 면책하는 입법 조치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전자는 서구 사례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접근이지만 한국은 환자단체들로 인해 정치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후자 대안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유사하게 의료배상책임 가입을 전제로 경과실 형사책임을 면책하는 방안"이라고 소개하며 "다만 필수의료와 바이탈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를 강제로 의료배상책임보험에 가입시키는 법을 만들면 이는 오히려 필수의료의 몰락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의료배상책임에서 국가의 역할 강화와 연계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의료인의 법정구속이 자제돼야 한다고 봤다. 그는 "1심 재판 과정에서부터 의사들이 과실을 인정하지 않고 합의하지 않으면 법정구속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불구속을 위해 무리하게 합의를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