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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봉사하는 마음으로 지원한 산청군 보건의료원장, 1년만에 쫓겨나게 된 사연

    [단독 인터뷰] 권현옥 원장 "공무원 직원과 노조가 버티는 한 대한민국 공공의료 활성화 쉽지 않아"

    기사입력시간 2019-11-30 08:46
    최종업데이트 2019-12-03 11:29

    의료봉사가 취미였던 권현옥 원장은 공공의료에서 또 한번 봉사를 해보기로 하고 자리를 옮겼다고 밝혔다. 

    산청군에 병원 없어 입원·검진 활성화하려다 불만 가진 직원들에게 발목
    대리처방으로 고발당해 검찰에선 기소유예, 면허정지는 행정심판 청구 중 
    산청군청이 직위해제·중징계 요구, 원장 떠나면 그만이지만 다시 의료공백 우려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10여년간 경남 진주에서 산부인과의원을 운영해오다가 지난해 10월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권현옥 원장. 틈만 나면 의료봉사를 다니는 것이 취미였던 그는 마지막으로 공공의료원에서 봉사한다는 부푼 꿈을 안고 다른 의사들이 꺼리는 자리에 지원했다. 

    그는 3만5000명이 거주하는 산청군의 유일한 여자의사로서, 그가 원장으로 오자마자 할머니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산청군에는 독거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이 많이 거주하지만 병원이 없어 환자들이 진주까지 가야 하는 사정을 알게 됐다. 그는 의료봉사를 하는 마음으로 진료에 임했다. 하루에 최대 100명씩 진료하는가 하면 지난 1년간 무려 9000여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입원과 검진을 활성화하고 진료시간을 늘리기도 했다. 

    그러던 권 원장이 지난 10월 15일자로 산청군청에 의해 직위 해제됐다. 산청군청은 최종 인사권을 승인하는 경상남도청으로 그의 중징계를 권고한 상태다. 권 원장은 하루라도 빨리 인사위원회가 열려 다시 진료를 이어가거나, 아니면 차라리 파면돼 자유로운 신분이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1년간 권 원장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지난 26일 그가 거주하는 경남 진주에 직접 찾아가 그의 심경을 들어봤다. 전날 전화통화상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다급한 목소리였지만, 막상 그는 진주의 맛집과 구경거리를 어떻게든 안내해주려고 애썼다.

    “공공의료원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고 온 저의 잘못입니다. 대한민국 의사가 공공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다시 마음 편하게 진료하고 의료봉사를 다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산청군의 열악한 의료 수준, 입원과 검진 활성화부터 시작  
    산청군 보건의료원에서 구비한 산부인과 초음파는 권현옥 원장이 오기 전까지 한번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다문화가정 임산부와 권현옥 원장.

    권현옥 원장은 10년여간 경남 진주에서 산부인과의원을 운영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부터 산청군 보건의료원장으로 근무를 결정했다. 

    산청군 보건의료원은 보건소를 겸해 진료가 가능한 의료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산청군은 병원이 없다보니 1989년부터 보건소를 보건의료원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산청군은 워낙 외딴 지역이다 보니 보건의료원장이나 진료과장 공모가 나도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다. 상당수는 공중보건의사들이 진료의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의료봉사를 많이 해온 권 원장은 주위 추천으로 의료수준이 열악한 산청군 보건의료원장직에 도전해보게 됐다. 산청군청 측에서 서둘러서 와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자리를 옮긴 다음에서야 의원 폐업 절차를 밟았다. 그러다 보니 직원 월급과 임대료 등 한 달의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기도 했다.  

    권 원장은 “산청군 의료 수준은 정말 열악하다. 인구가 3만5000여명인데 이 중 약1만5000명은 독거 노인으로 파악된다”라며 “병원이 없다 보니 환자들이 진주까지 가서 치료를 받는다. 지역 내에서 여의사, 특히 산부인과 의사가 왔다고 하니 여성 노인환자들이 매우 좋아했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지역의료 수준을 높이기 위해 다소 의욕을 보였다. 우선 입원과 검진 활성화를 내세웠다. 

    권 원장은 지난해 11월 '산청군 보건의료원 개선지침'을 작성했다. 입원실을 활성화하고 입원실 가동에 모든 의료직 직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여기에 직원들이 따르지 않으면 보건지소로 이동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입원 전담 간호사 2명을 지정해 환자가 빠르고 편하게 입원 수속 절차를 밟을 수 있게 했다. 

    환자들의 외래 진료 편의를 위해 간혹 평일 오전 진료시작 시간을 당겼다. 토요일에는 자발적으로 소아청소년과를 운영해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건강을 살폈다. 

    권 원장은 직원 교육에도 신경을 썼다. 외래 진료부는 단체복이나 가운을 입고 사복을 입지 못하게 했다. 직원들은 잡담이나 큰 웃음을 조심하도록 하고 환자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지시했다. 

    권 원장은 “일이 늘어나자 처음에는 직원들이 잘 따르는 듯 하더니 직원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공무원 노조까지 나서기 시작했다. 원장이라고 해도 직원들을 평가하거나 환자를 위해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높은 평가점수를 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의사가 아닌 행정직이 인사권을 갖다 보니, 의사가 환자를 위해 열심히 진료를 하려고 해도 직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직원들로부터 대리처방으로 고발 당해, 검찰 기소유예 결정  

    그러다가 결국 직원들이 권 원장에게 반기를 드는 사건이 생겼다. 권 원장이 직원들의 이름으로 평소 의료봉사를 다니던 요양원 장애인들에게 대리처방을 해줬는데, 해당 직원들이 이를 고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권 원장은 지난해 12월 의료원 직원 4명의 이름으로 총 6회에 걸쳐 대리처방을 했다. 권 원장은 의료봉사에 필요한 약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질염 및 감기 증세로 진료한 것처럼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하고 처방전을 발급했다. 6회에 걸쳐 진료비 4만5360원과 처방약 7만9680원을 합쳐 12만5040원의 보험 급여(공단 부담금)를 받았다. 이에 따라 권 원장은 의료법 위반과 국민건강보험법 위반의 혐의로 직원들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권 원장은 선의의 의도라며 선처를 호소하는 동시에 죄가 있으면 마땅히 받겠다며 감사를 자청했다. 권 원장은 “산청군 보건의료원장 취임 초기부터 노인요양원 입소 노인, 다문화 가정 임산부 등 의료기관 방문이 곤란한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해왔다. 이런 환자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권 원장은 “의료봉사 활동 중 거동이 불가능한 노인요양원 환자 치료에 전문의약품인 질염 치료제가 필요했다. 아무리 선의의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법령을 위반해선 안 된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산청군 내 환자 건강을 책임지려는 과정에서 법령의 내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점을 감안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권 원장은 자신이 대리처방을 해준 환자들은 물론 자신이 의료봉사에서 만났던 수많은 환자들로부터 탄원서 수십장을 받아 이를 제출했다.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은 6월 27일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 위반으로 권 원장에게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산청군보건의료원에 허위(부당)청구 금액을 환수결정을 통보해 12만5040원을 반환했다. 
     
    검찰은 “본 건 범행에 대해 피의자(권 원장)는 스스로 감사를 청구했다. 또한 피의자가 직원들에게 처방전 발급의 승낙을 구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강압적인 수단을 행사하지 않은 점, 피의자는 봉사활동을 위해 본 건 범행에 나아간 것으로 보이고 실질적으로 취득한 이익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피의자가 자신의 범행을 진지하게 반성하며 재발방지를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은 참작할 사정이 있다”라고 기소유예 사유를 밝혔다.

    면허정지 1개월 7일, 의료봉사 못하고 의료공백 우려로 행정심판 청구   

    권 원장은 기소유예를 받긴 했지만 형사처벌에 이어 행정처분의 책임도 떠안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20일자로 권 원장에게 2020년 3월 30일부터 2020년 5월6일까지 1개월 7일간 의사면허 자격정지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복지부는 자격정지 기간 중에는 국내외 의료봉사를 포함해 일체의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권 원장은 곧바로 복지부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권 원장은 “의료법에서 인정하는 대리처방이 가능한 것으로 잘못 판단해 의료법을 위반했다. 하지만 본인이 의료법을 위반한 점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 앞으로는 의료법령을 반드시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행정심판에서 참작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권 원장은 20년간 의료계에 종사하면서 의료법 위반 사실이 단 한 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처분의 대상이 되는 위법 행위도 일시적이고 일회성이었다고 밝혔다.  

    뜻밖에도 권 원장은 면허정지 행정처분으로 의료봉사를 할 수 없는 사실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놨다. 권 원장은 “경상남도에서 1000회 이상의 의료봉사 활동을 해왔고 60여회에 걸친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해왔다”라며 “의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의료봉사 활동에 매진해왔다. 면허정지를 당하면 진료는 물론 의료봉사를 할 수 없다. 행정심판에서도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권 원장이 언급한 그의 일생은 의료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권 원장은 "1999년 3월부터 경상남도 13개 사회복지시설의 장애 여성, 성폭력 피해 여성, 빈곤 여성 등 사회 취약계층 여성을 대상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전개해왔다. 2006년부터는 해외로 확대해 사비를 써가면서 인도, 네팔, 아프리카 등 약 7만여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해왔다"고 소개했다.

    권 원장은 진주시의사회 장애우 봉사동우회 '나누미'를 결성해 지역 장애우들과 함께 10년간 어린이날, 바다캠프, 가을학예발표회, 크리스마스 축제 등을 주관했다. 이에 따라 2011년 10월 자랑스러운 진주시민상을 받았다. 

    이 밖에 그는 의료봉사 활동에 대한 공로로 2010년 3월 경남의사봉사대상, 2013년 4월 보령의료봉사상, 2014년 3월 경상남도의사회 특별공로상, 2016년 10월 대한적십자 박애상 금상, 부산여고 자랑스런 동문상 등을 받았다. 올해 10월에는 임산부 건강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권 원장은 “산청군 보건의료원장으로 재직하던 올해 10개월간 토요일을 포함한 81일동안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다. 사회취약계층 여성환자들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라며 “면허정지 기간 동안 의료봉사 활동마저 금지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행정심판에서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재차 밝혔다. 

    그는 산청군 여성 환자들의 진료권 확보를 위해서도 면허정지 처분이 취소되길 바라고 있다. 권 원장은 “그동안 산청군 보건의료원에서 매일 5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해왔다. 주로 독거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 빈곤 계층 등의 여성 환자들이다. 이들의 약20%가 산부인과 진료를 필요로 한다. 원장이 진료를 중단하면 취약계층 환자들이 진주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라고 했다. 
    권현옥 원장은 산청군의 유일한 여자의사로, 할머니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밝혔다. 

    직위해제 통보와 중징계 요구, 안타까운 공공의료의 현실  

    권 원장은 기소유예와 행정심판 청구까지 이번 사건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복병을 만났다. 권 원장은 10월 15일자로 산청군청으로부터 원장 직위해제를 통보받았다. 산청군청은 권 원장을 상대로 지방공무원법 제48조 성실의 의무 위반, 제55조 품위 유지의 의무 위반 및 같은 법 제69조 징계사유에 해당해 중징계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권 원장의 인사 문제는 산청군청에서 최종 인사결정 승인자인 경상남도청으로 넘어간 상태다. 

    하지만 직위해제 조치 이후 50일이 지나도록 인사위원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이에 권 원장은 진료도, 의료봉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답답한 심정을 호소했다. "차라리 파면이라도 시켜달라"라고 수차례 이야기했다. 

    심지어 권 원장은 근로조건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처음에 산청군 보건의료원 근로조건으로 월급과 연구수당을 받기로 했다. 그동안 해왔던 노인요양시설 촉탁의도 취임 이후에 계속 하기로 했고 해외 의료봉사는 연3회까지 인정받는 조건을 약속받았다. 사택도 제공받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매달 월급으로 받은 550만원이 전부였고 직위해제 이후에는 최저임금만 받고 있다.

    권 원장은 “서류상 계약은 없고 구두상으로만 계약했다. 그러던 중 노조가 촉탁의를 하지 못하게 했고 연구비는 서류상 미비하다고 지급하지 않았다. 사택은 불법이라고 지급을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청군청 인사 담당자의 출장 관계로 자세한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는 개개인의 행정처분만 시행하고 있다. 징계 및 직위해제 여부는 산청보건의료원 내부 규정이나 산청 보건의료원을 소관하는 기관의 규정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경상남도청은 12월 10일쯤 권 원장의 인사위원회를 열 예정으로 전해졌다. 경상남도의사회는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전인 12월 3일 경상남도청을 방문해 권 원장이 평생 의료봉사에 매진해왔으며 선의로 한 일에 대해 정상참작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한국여자의사회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전달해 부당한 직위해제 구제에 나서기로 했다.  
     
    권 원장은 “원장이 인사권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의욕을 보였다. 그러다가 공무원 신분 직원들의 불만에서 시작돼 공무원 노조의 문제로 연결됐다. 산청군청 측에서도 적당히만 하라고 하다가 결국 직원들의 편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라며 "대한민국은 공공의료를 강화한다고 하는데 직원들이 움직이지 않고 노조가 움직이지 않으면 원장이 아무리 의욕을 보여도 진료를 활성화하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환자들이 오지 않고 예산만 낭비할 수 있다. 진주의료원 폐업 논란이 끊임없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권 원장은 "심적으로 힘든 와중에도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고 왔다. 더 힘든 사람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고 왔다. 산청군 보건의료원에서 진료를 계속하거나, 여기를 떠나더라도 자유로운 신분으로 진료와 의료봉사를 계속하길 원한다"라며 "하지만 원장이 산청군 보건의료원을 떠나면 산청군 여성들이 진주까지 가서 진료를 받고 정작 산청에는 진료 공백이 생긴다. 공공의료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