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일본의 한 의과대학이 저출산에 따른 지원자 감소와 우수 인재 확보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졸업 후 지역 근무 조건이 붙는 의대 입학전형의 선발 비중을 줄이기로 했다.
20일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홋카이도의 삿포로의대는 최근 일본판 지역의사제인 ‘지역틀(地域枠)’ 정원을 처음으로 줄이고, 별도의 근무 조건이 없는 일반전형 정원을 2배 이상 늘리는 입시제도 개편안을 마련했다.
지역틀은 지역의료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2008학년도부터 일본 의대 입시에 본격 도입된 제도다. 대학과 지자체별로 세부 조건은 다르지만, 학비나 장학금 등을 지원받는 대신 졸업 후 9년가량 해당 지역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도록 한다.
현재 삿포로의대 입학정원의 80% 이상은 졸업 후 홋카이도 내 연수나 근무 조건이 붙는 전형으로 구성돼 있다. 저출산에 더해 향후 진로가 제한되는 것을 피하려는 학생들의 경향이 강해지는 가운데, 올해 삿포로의대 전체 응시자는 모집정원 110명에 300여 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정원 80%가 졸업 후 지역 근무 조건…"지방병원서 최첨단 의료 못 배울 것" 불안감
이는 지역틀만의 지원자 수가 아니라 의학부 전체 응시자 수다. 다만 대학 측은 지역 관련 전형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전국 수험생이 지원할 수 있는 일반전형의 문이 좁고, 전체 지원자 풀과 입시 경쟁성이 약화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삿포로의대는 지역틀 정원을 현행 90명에서 60명으로 3분의 1 감축하고 일반전형 정원을 50명으로 2.5배 늘리는 방안을 2028학년도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전국에서 수험생을 폭넓게 유치해 입시 경쟁성을 높이고, 보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려는 취지다.
이와 관련, 일본 자치의대 고이케 소이치 교수는 현지 언론에 “어떤 입시제도를 택하더라도 지역의료에 기여할 의사를 양성하는 것은 대학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대학을 갓 졸업한 의사들은 전문성과 의료기술을 향상시키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 지방병원에서는 최첨단 의료를 배우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등 경력 설계 측면에서도 불안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온라인을 활용해 경험이 풍부한 의사들의 지도를 강화하는 등 지방에서 근무하면서도 의사로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대학과 의료기관, 행정 당국에 요구된다”고 제안했다.
실제 일본 류큐의대 연구진이 2025년 발표한 지역틀 학생 대상 연구에서는 학생들이 입학 전부터 ‘학업 능력이 떨어진다’는 주변의 인식으로 인해 자신감 저하와 열등감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망 전문과와 근무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하기 어렵다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컸다.
국내 지역의사제도 '낙인' 우려…제도 설계시 커리어패스 중요
이 같은 일본의 사례는 내년부터 지역의사제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리나라도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지방의대들은 지역의사제와 별도로 졸업 후 의무복무 조건이 없는 지역인재전형을 운영하고 있다.
현행법상 강원·제주권 의대는 입학정원의 20% 이상, 그 외 비수도권 의대는 40% 이상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해야 한다. 교육부는 비수도권 의대에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60% 이상으로 확대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일부 의대는 전체 정원의 80%에 가까운 인원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하고 있다.
다만 교육부가 지역의사전형 선발 인원을 기존 지역인재 60% 권고 비율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일부 의대는 지역의사제 선발 인원만큼 기존 지역인재 전형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최준서 사무처장은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지역의사제 관련 행사에서 “국내에도 이미 지역인재전형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이 있는 만큼 지역의사제 입학생에 대한 인식이 더 악화될 수 있다”며 “이런 낙인 효과가 지역의사제 입학생과 졸업생을 넘어 향후 지역의료와 공공의료로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복무형 지역의사제는 지역·공공의료 전문가를 양성하고 차별화된 경력 경로를 제공하는 제도라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며 “지역과 국가의 의료정책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갖도록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