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여한솔 칼럼니스트] 먼저 글을 시작하기 전에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환자와 그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올해 봄 부천시 모 한의원에서 벌침 치료를 받던 중 한 초등학교 30대 여교사가 쇼크 반응을 일으켜 치료를 거듭하다 끝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시신을 부검했고 부검결과 정확한 사인은 벌침에 의한 아나필락틱 쇼크로 밝혀졌다.
아나필라틱 쇼크는 특정 항원에 의한 전신의 과도한 알러지 반응으로 유발된다. 이 질환은 호흡곤란과 혈압저하를 유발해 심할 경우 환자를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다. 벌에 있는 독성분이 문제라 쇼크에 대비한 사전 테스트를 병행해야 하면 문제 시 빠른 응급처치가 필수다.
해당 한의원 원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경찰에 "벌침에 대한 아나필락틱 쇼크에 대비한 테스트와 응급처치를 적절하게 수행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부끄러웠다. 응급처치를 적절하게 수행했다면 환자의 상태를 빠르게 평가해서 에피네프린을 투여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보도가 나간 후 며칠 후 대한한의사협회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에피네프린이 포함된 전문의약품 응급키트가 없었기 때문에 환자가 사망한 것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한의사협회는 “의사들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반대에 부딪혀 위급한 환자를 보고만 있어야 하냐”는 언급과 함께 현행법에 없는 조항을 개선해 전문의약품을 마음대로 사용하겠다고 했다.
한의사협회는 대체 양심이 있는 단체인가. 당신들에게 수입이 되기만 한다면 배우지도 않은 현대의료기기의 촬영과 판독권을 갖겠다고 하고, 이제는 전문의약품인 '에피네프린'과 교묘하게 '페니라민'까지 끼워 넣어 갖다 쓰겠다는 것인가. 당신들에게 현대의학은 보증 없이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는 전당포 같은 존재인가.
한의사들이 배우지 않은 현대의료기기 사용, 판독과 이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위한 과학적 유산은 모두에게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펼친 법안이 계류돼있다. 며칠 전에는 한방재활의학과 교과서가 의학책을 표절했다는 판결도 있었다.
한의사가 일반의약품, 전문의약품을 처방하거나 조제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 명백한 근거들이 있다. 그런데도 법조문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모든 한의원에 전문의약품 응급키트를 구비하겠다는 한의사협회의 억지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다.
한의사협회에 소속된 자들은 한의학과 현대의학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이중면허를 취득한 자들인가. 전문의약품이 담겨 있는 응급키트를 아무나 멋대로 사용하게 놔둘 수도 없겠지만, 일부에서는 한의원에 이런 응급의약품을 비치해둬야 환자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반박한다. 백번 천번 양보해서 응급키트를 갖다 놓고 이를 사용했다고 치자. 그 다음 치료는 한의학적 측면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사건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면 한의사는 인근에 있는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한양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사건 발생 후 응급실에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지체됐고 끝내 사망했다. 그렇다면 한의사들은 환자 상태가 나빠지고 나서야 학문 상태게 위험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발을 동동 구르며 환자를 구급차에 태워 응급실로 보낼 것인가.
한의사들은 전문의약품이 포함된 응급의약품을 쓰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 받았다 할지라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배웠을 것이다. 한의사들은 항상 의료현안들에 대해 날을 세울 때에는 한의학과 의학의 본질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학과 차별을 두려는 이들이 왜 이럴 때는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고 셀 수 없는 과학적 타당성 연구를 거친 현대의학의 산물들을 제멋대로 사용하려는가. 한약의 성분을 명확히 밝혀 사용하라는 현실적 조언에는 함구하는 이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한의사들이 앞으로 올바른 교육을 받아 사용하겠다고 또다시 성명서를 제작해 배포할 것인가.
의료인이라면 자신이 맡은 환자는 각자 학문의 영역 내에서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환자를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애초에 환자에게 행하는 어떠한 검사든 치료든 시행할 생각을 접어야 한다. 이는 병마에 씨름하며 의료진을 찾는 환자를 위한 최소한의 존중이고, 의료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확신한다.
필자도 응급실 근무 중 벌에 쏘여 왔다며 불편함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적지 않게 대한다. 응급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의료진은 생체활력지수를 측정하고 환자에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벌에 쏘인 지 얼마나 됐는지, 숨쉬기 불편한지, 가슴 답답하진 않은지, 식은땀이 나는지, 어지럽진 않은지' 이 모든 행위는 단순히 환자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이 아닌,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염려한 환자 상태를 빠르게 감별하기 위함이다.
만약 저 질문 중 하나라도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 다른 어떤 환자들보다 신경이 곤두선 채로 예의주시한다. 왜냐하면 갑작스레 발생할 수 있는 아나필락틱 쇼크를 절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여나 모든 수치와 질문들에 괜찮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부종과 가려움을 가라앉히는 약을 주면서도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아나필락틱 쇼크 유무를 관찰한다. 이를 위해 환자를 침대에 눕힌 채 상태를 관찰한 후 완전히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나서 또 다시 아나필락틱 쇼크에 대한 위험성을 설명하고 증상이 나타나면 곧바로 응급실로 다시 올 것을 알리면서 환자를 퇴원시킨다.
그만큼 아나필락틱 쇼크는 필자에게 무섭고 겁나는 질환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한 부작용을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과정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홍보하며 한약 처방을 통해 신경계를 안정시킨답시며 치료를 끝까지 받을 수 있도록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게 하겠다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의료인이라는 것에 분노한다.
2015년 연합뉴스 한 섹션에는 한국의 전통 북소리가 급성 쇼크사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모 한의대 공동연구팀이 동물실험결과를 발표한 것을 카드뉴스로 만들어 배포한 적이 있다. "전통북소리는 심장박동소리와 비슷해 교감신경계 활성화로 혈압, 심장박동 등에 영향이 있다. 고통스럽거나 우울할 때도 도움이 된다"이라고 모 한의대 교수가 자랑스럽게 밝힌 바 있다.
오늘은 16세기 조선 14대 왕 선조의 허준이 살던 시대가 아니다. 환자에게 행하는 모든 검사와 치료방법에 대해 유효성과 안전성, 더 나아가 효율성까지 확보하기 위해 투자되는 천문학적인 재원은 물론, 끊임없이 과학의 오류를 바로 잡아 더 나은 치료법에 매진하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계속되는 21세기다. 이런 연구결과가 내일을 살아갈 인류에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인지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
짧지 않은 글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다. 한의사들은 학부 때 얄팍하게 배운 현대의학 교과과정을 편입시켜 '우리도 의학을 배웠다'며 알량한 자존심을 치켜세워 영역을 침범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찾는 '환자'에게 해줄 최선을 생각하길 바란다. 한의사들은 환자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행위를 중단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