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키워드 순위

    메디게이트 뉴스

    국회 통과 의료인력 추계위법, '과학적' 의사 추계 가능할까

    [칼럼] 박지용 병의협 조직강화이사∙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공의모) 대표

    기사입력시간 2025-04-04 07:36
    최종업데이트 2025-04-04 08:4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설치법이 2일 본회의를 통과하며 사실상 법제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의료인력의 적정 수급을 과학적으로 추계하기 위한 기구를 설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계 내부에서는 이 법안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추계위원회는 의사 위원이 과반수이지만 고용자 단체인 병원협회의 추천 위원이 포함된 수이고, 추계위에 의결권이 부여되지도 않았습니다. 이 사안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추계위법 통과를 보고 의사가 이겼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사들 내부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입니다. 의사 위원 중 병협 추천은 제외해야하니, 의사 측 주장을 대변하는 위원이 과반수를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수결로 추계위가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는 대한전공의협의회의 7대 요구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추계기구의 '과학적' 여부는 누가 판단하는 것일까요? 막말로 서울대병원의 교수님들 중 세네분이 엉뚱한 주장을 한다고 해서, 그 내용이 자동으로 과학적인 주장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1. 과학적 여부를 밝히는 과정의 어려움

    저는 재작년부터 의사부족을 주장하던 보건사회의료연구원(보사연)의 연구보고서를 분석했었습니다. 2035년 의사가 2만7000명 부족하다던 그 보고서입니다. 제가 분석한 결과 보고서에는 여러 오류들이 존재했고, 오류를 숨기기 위해 통계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근거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보고서가 과학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대중들에게 제 생각을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통계에 대한 지식이 많은 분들은 제 설명을 이해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보고서가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납득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200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이라면 황우석 교수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겁니다.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로 박지성과 함께 두유노 클럽 중 한명이었던 황우석 교수가 연구조작으로 한 순간에 몰락한 것은 2006년이었습니다. 

    그런 황우석 교수가 연구를 조작했다는 사실은 누가 결정한걸까요? 그것은 대중도, 정치인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판사가 결정한걸까요? 판사도 아닙니다. 판사는 황교수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지만 연구조작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황교수의 연구가 조작이고 비과학적이라고 판단한 것은 서울대학교 징계위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 징계위의 위원장은 응용화학부 교수였습니다. 동료 과학자가 과학적인지 비과학적인지 여부를 판정한 것입니다.

    반면, 2035년에 의사가 2만7000명 부족해진다는 연구보고서가 비과학적인지 판단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정부에서 발주한 연구보고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그런 보고서가 나왔을 뿐이고, 정부는 그 보고서를 정책 세우는데 사용했을 뿐입니다. 언론과 정치인은 그런 보고서가 있다고 국민들에게 얘기만 했을 뿐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면, 한의학이 비과학적이라는 얘기도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습니다. 물론 저는 한의학이 비과학적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한의사들도 SCI저널에 논문을 내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2. 과학적 제도 설립의 어려움

    과학적 방법론에 익숙한 의사들이지만, 의사끼리 과학적이라고 공감하는데 그치면 병원 밖에서는 영향력이 없습니다. 과학적인 주장이 사회를 바꾸려면, 법과 제도를 정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컨센서스를 공유하게 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국민들이 컨센서스를 공유하게 해야합니다. 그래야 제도적으로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의사끼리 공감하고 컨센서스만 공유하면 거기서 더이상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정치인을 비난하고 관료를 비난하고, 정치인이나 관료나 결국 의사들보다는 공부 못하지 않았느냐며 국민들도 비난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끝내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의사들이 초음파도 보고 주사도 놓고 레이저도 쏘고 이제는 엑스레이도 쓰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과학적인 추계 기구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습니다. 추계기구가 과학적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론에 대해서 생각하면 결국 회의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의사들이 동의하기만 하면 그게 과학적인걸까요? 제대로 하려면 통계학자도 참여하고 순수과학자도 참여해야하는것 아닐까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의결권을 의사가 갖는게 가능할까요? 가장 중요한 결정권을 포기해야한다는 뜻인데 정치인이 그것을 포기하고 정치인들을 그 자리에 앉혀주는 국민이 그것을 허락할까요?

    지난 2년간 보사연의 의사 2만7000명 부족 보고서가 연구조작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대중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아닌 사람들에게 제 생각이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과학적이라는 말 자체가 허상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철학으로 뭉쳤던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따르던 비트겐슈타인 조차 '과학적'이라는 것의 실체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손꼽히는 비트겐슈타인 본인이 공과대학을 졸업한 이공계 출신이었음에도 말입니다.

    3. 그래도 추계위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개인적으로 추계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기존에는 연구보고서들이 제대로 된 평가 없이 무분별하게 정부 정책에 사용되던게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추계위가 있다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상당부분 개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사협회가 추계위 의결권을 가져오려고 많이 노력했음에도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추계위에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부분이었습니다. 장부승 교수가 일본의 시스템을 언급해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일본에서도 추계위가 의결권을 부여받지는 못 했기 때문입니다.

    추계위가 의대정원 증원에 사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실제로 추계위가 의대정원 조정에 레퍼런스로 강력히 작용할 확률은 굉장히 높습니다. 하지만 지난 2025년 의대정원처럼 정부에 의해 일방적인 정책 개진을 막아내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추계위는 사직 전공의들과 수업 거부를 지속하고 있는 의대생들이 많이 기대하던 법안입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에도 의협 추천 위원 과반과 의결권 부여라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단일대오 유지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의미있겠으나, 단일대오를 어떻게 이용해 전략적 목적을 달성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됩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