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내년부터 시행되는 수술실 CCTV법에 대한 의사들의 거부감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들은 법의 취지였던 의료진의 불법행위 예방 달성보다 그로 인한 진료 위축, 외과계 전공의 수급 타격 등 거시적 해악이 더 클 것이라고 바라봤다.
11일 의학계에 따르면 단국의대 가정의학교실 정유석 교수, 인제의대 마취통증의학교실 연준흠 교수, 단국의대 마취통증의학교실 강봉진 교수팀은 최근 한국의료윤리학회지 제25권 제3호에 ‘수술실 CCTV법 시행을 앞둔 수련병원 의사들의 견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대학병원 전문의와 수련의 155명을 대상으로 ▲수술실 CCTV 의무화법 조항에 대한 만족도 및 불만족 사유 및 ▲수술실 CCTV법의 효용성 및 제한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해 의료진들의 견해를 살폈다.
그 결과 응답자들은 수술실 CCTV법에 대한 가장 큰 우려를 묻는 질문(복수 응답 허용)에 ‘고위험수술 회피, 방어진료 조장’ 63.2%(98건),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 53.5%(83건), ‘학생, 전공의 교육의 질 하락’ 28.4%(44건), ‘의사·환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24.5%(38건), ‘외과계 전공의 수급에 타격’ 9.7%(15건), ‘새로운 수술 방법 등의 발달에 지장’ 5.8%(9건)로 응답했다.
수술실 CCTV법안에 대한 전체적인 견해에 대한 질문에는 ‘무조건 폐지’ 62.6%(97명), ‘미비점을 보완 후 시행’ 35.5%(55명), ‘현행대로 시행’ 1.9%(3명)로 응답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외과계는 117명으로 일반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흉부외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비뇨의학과, 이비인후과, 안과, 구강외과, 마취통증의학과를 포함했고, 내과계는 32명으로 피부과, 응급의학과, 내과, 가정의학과, 핵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신경과, 직업환경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인턴, 일반의를 포함했다.
수술실 CCTV법 자체에 대한 불만족 77.6%…예외 조항 '모호성' 우려도 커
먼저 수술실 CCTV 설치법안의 만족도 및 불만족 사유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가 및 지자체가 CCTV 설치 등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에 대한 평균 만족도는 10점 만점의 2.65점으로 매우 낮은 편으로 나타났다.
불만족 사유로는 ‘수술실을 CCTV로 감시한다는 법안 자체가 불만족’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77.6%(118명)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설치비용을 국가 및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다는 문구가 모호하며 강제화하려면 의무지원이 마땅함’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43.4%(66명)였다.
또 ‘환자 또는 환자의 보호자가 요청하는 경우 환자의 수술 장면을 CCTV로 촬영해야 한다’는 조항에 대한 평균 만족도도 10점 만점에 3.1점으로 낮았다.
불만족 사유로는 ‘의사의 동의도 받아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57.3%(86명)였고, ‘원론적으로 모든 수술 장면의 촬영에 반대’라고 답한 응답자가 56%(84명)였다.
개정 의료법은 환자나 보호자가 동의해도 ▲수술이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응급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 위험도 높은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에 따른 수련병원 등 전공의 수련 등 그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3가지 상황에서는 의사가 촬영을 거부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담고 있다.
이 조항에 대한 의사들의 평균 만족도는 4.04점으로 다른 질문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다만, 응답자의 76.4%(113명)는 ‘‘전공의 수련 목적 달성에 현저한 저해 우려’라는 문구의 내용이 해석 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불만족 사유를 밝혔다. 또 응답자의 64.9%(96명)는 ‘‘위험도 높은 수술’의 범위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응답자의 53.5%(79명)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응급수술’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개정 의료법에서는 또 의료기관의 장에게 촬영한 CCTV 영상정보가 분실·도난·유출·변조 또는 훼손되지 않도록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기술적·관리적 및 물리적 조치 등에 대한 의무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 조항에 대한 응답자들의 평균 만족도도 2.83으로 낮았다.
불만족 사유로는 ‘의료인에게 해킹 등에 대한 보안 책임을 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응답자의 75.3%(113명), ‘보안과 그 유출에 대한 책임은 국가나 지자체가 져야 한다’ 70.7%(106명)가, ‘해킹 등 환자 비밀보장 우려 때문에라도 촬영 자체에 반대한다’ 60%(90명)로 나타났다.
가장 큰 우려는 '방어진료 조장' 63.2%…의사 62.6% '무조건 폐지' 원해
응답자들은 수술실 CCTV법의 효용성 및 제한점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해당 법안의 제정된 이유이기도 했던 대리수술, 유령수술, 성추행 등 의료진의 불법‧탈법 행위에 대한 예방 가능성에 대해 10점 만점에 평균 4.54점을 줬다. 응답자의 18.7%(29명)가 ‘거의 도움이 안 됨’을 뜻하는 1점을 줬다.
또 응답자들은 수술실 CCTV법이 의료소송에서 상대적 정보 약자인 환자의 알권리 확보에 도움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10점 만점에 평균 3.99점을 줬으며, 응답자의 21.4%(33명)이 ‘거의 도움이 안된다’를 의미하는 1점을 줬다.
특히 응답자들은 수술실 CCTV법이 시행되면 의료진의 방어진료, 소극진료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어진료에 대한 환자 피해 정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1점(거의 피해 없음)~10점(매우 심각한 피해) 중 평균 점수 8.36점을 줬다.
수술실 CCTV법과 의료분쟁에 대한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7.4%(89명)가 ‘매우 늘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다소 늘어날 것’이라고 답한 비율도 23.9%(37명)으로 게 나타났다.
수술실 CCTV법으로 전공의나 학생 교육에 대한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6.2%(103명)가 ‘매우 악영향이 클 것’이라고 답했고, 24%(37명)은 ‘다소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60%(93명)은 해당 법안으로 외과계 전공의 지원자가 ‘매우 급감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29.7%(46명)은 ‘다소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술실 CCTV법에 대한 가장 큰 우려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복수 응답 허용에 따라 ‘고위험수술 회피, 방어진료 조장’ 63.2%(98건),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 53.5%(83건), ‘학생, 전공의 교육의 질 하락’ 28.4%(44건), ‘의사/환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24.5%(38건), ‘외과계 전공의 수급에 타격’ 9.7%(15건), ‘새로운 수술 방법 등의 발달에 지장’ 5.8%(9건)로 응답했다.
수술실 CCTV법안에 대한 전체적인 견해에 대한 질문에는 ‘무조건 폐지’ 62.6%(97명), ‘미비점을 보완 후 시행’ 35.5%(55명), ‘현행대로 시행’ 1.9%(3명)로 응답으로 나타났다.
법 부작용으로 환자의 피해로 귀결될 가능성↑…분쟁조정법 등 제도 개선 보완 필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다수의 의료진은 수술실 CCTV 법에 대해 불만족하며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또 법안으로 인해 환자 측에서 기대하는 불법행위 예방, 알권리 충족 등의 효과가 달성될 확률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연구팀은 “향후 이들 의료인과의 소통에 나서서, 간극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한데, 법안의 공익성과 형평성 및 침해 최소성 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 이는 62.6%의 의사들이 법 폐지를 요청하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특히 연구팀은 어린이집 CCTV 설치법 사례를 소개하며, 해당 법 시행 이후 보육교사들의 심적 고통과 위축된 훈육 등 달라진 교육 현장의 모습 등 부작용이 의료현장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법안의 부정적 영향들인 진료 위축, 전문 직업적 영역에서의 자율성 침해 등에 대해서는 더 높은 수준으로 우려를 표현하고 있었다. 즉 환자의 권리 보호가 중요하지만, 의사의 임상적 자율성이 훼손됐을 때 의도치 않게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집도의의 책임하에 수련의에게 수술의 일부를 맡기는 일은 도제식 교육의 일부로 관행적으로 용인돼 왔다. 법안으로 인해 이런 교육이 위축된다면 환자뿐 아니라 의료계 전체에 해로운 일이 된다. 외과계 전공의들의 지원이 더 줄어들어 가뜩이나 부족한 외과의사의 수급에 문제가 생기는 것 역시 환자의 피해로 귀결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들어 한국의 의료영역에 법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더 근원적이어야 할 윤리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의료계는 뼈를 깎는 질책과 반성의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대리수술, 유령수술, 성범죄 등 사건·사고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에도 그동안 사회가 납득할 만한 자정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결론적으로 “신설 법안의 우려되는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 의료분쟁 시 원활한 해결을 선도할 수 있는 보험제도나 분쟁조정법 등 제도를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과 함께 법에 따른 감시 이전에 신뢰에 바탕을 둔 윤리적 가치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반성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