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윤석열 정부가 제2의 반도체로 바이오헬스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각종 규제 체계를 전면 재설계하고 디지털·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 구축 등 법·제도·인프라 구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3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주력산업으로 가기 위해선 정부 역할이 가장 중요한만큼, 업계에서는 정부의 의지 표명과 전략 마련에 대해 크게 환영하면서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8일 보건복지부는 청와대 범부처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윤 대통령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을 보고 받은 후 정부의 과감한 혁신과 투자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신시장 창출 전략은 ▲의료·건강 돌봄 서비스 혁신 ▲바이오헬스 수출 활성화 ▲첨단 융복합 기술 연구개발 강화 ▲바이오헬스 전문인력 양성 및 창업 지원 강화 ▲법·제도 인프라 구축 등으로 구성됐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관계부처 일동은 '규제혁신으로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로 도약'을 목표로 '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국민의 생명·안전을 최우선에 둔 불명확한 규제개선 추진하고, ▲기업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네거티브 규제시스템으로 전환하며, ▲특히 바이오헬스는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는 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고 규제 영향이 큰 중점 분야를 대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기술 발전 경향,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합동연구를 기반으로, ▲혁신적 의료기기, ▲혁신·필수 의약품, ▲디지털 헬스케어, ▲첨단재생의료+첨단바이오의약품, ▲유전자검사,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등 '6대 핵심기술'과 인프라 관련 규제를 개선하기로 했다.
일환으로 올해까지 복지부가 디지털치료기기(디지털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방안(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복지부의 약가고시 전 식품의약품의 품목허가(120일)와 심사평가원의 급여평가(150일), 건보공단의 약가협상(60일) 등 210일이 걸리는 등재제도를 병행하는 시범사업도 일부 약에 대해 적용할 예정이다.
복지부와 질병청은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필수의약품에 대해 적정 약가 보상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신설하고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한편, 복지부와 식약처가 올해 비대면 임상시험(분산형 임상시험, DCT)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복지부는 올해 안에 적정 약가 보상을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등 관련 규정을 개정해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를 보완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암, 감염병 등 사회적 가치가 큰 난제에 대해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한국형 ARPA-H 프로젝트(미국 보건고등연구계획국)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바이오헬스 전문인력을 양성하며, 바이오디지털 전환을 위한 범정부 거버넌스인 '디지털·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를 구축하고 근거법도 제정할 방침이다.
오는 2027년까지 연매출 1조원 이상인 블록버스터급 신약 2개가 개발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기존 발표대로 2030년까지 국가신약개발사업에 2조2000억원을 지원한다. 정부는 제약업체의 글로벌 진출 지원을 위해 1조원 규모의 메가펀드(K-바이오백신펀드) 조성을 추진 중이다. 정은영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한국도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가질 수 있는 국가로 성장하고 있다"며 "현재 5~6개가 유력한 품목인데, 이 중 5년 내에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헬스업계 관련 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큰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윤 정부 출범 전부터 '컨트롤타워'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온만큼, 이번 전략 발표에 대해 큰 관심과 지지를 표명했다.
지난달 퇴임한 원희목 전 회장은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국무총리 직속의 컨트롤타워인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가칭)를 설치하고 혁신신약에 대한 합리적인 약가 보상, 메가펀드 조성 등을 강조해왔다. 노연홍 신임 회장도 대통령 주재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전략 회의' 참석한 것은 물론 2일 취임사를 통해 지속적인 혁신과 협력을 통해 제약 주권 확립과 제약강국 실현 목표 달성을 약속했다.
특히 협회 측은 이번 정부 발표에 크게 환영하는 모양새다. 관계자에 따르면, 산업계의 숙원 과제였던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의 통합 컬트롤타워인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 계획을 공식화하고,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후기 임상까지 투자하는 메가펀드를 조성, 제약바이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육성을 위한 마중물을 마련키로 한 것에 대해 크게 환영한다고 전했다. 또한 "제약바이오 전문인력 양성과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 한국형 ARPA-H 프로젝트 도입 계획 등을 밝힌 것은 제약바이오산업을 한국의 미래핵심산업임을 재확인하고, 본격 육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협회는 지속적으로 회원사인 제약사들의 노력과 투자만으로는 제약강국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미국 정부가 2020년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14조원을 들인 '초고속작전'을 언급하면서 정부의 과감한 결단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 역시 "협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정부의 과감한 투자를 이야기해왔다. 제약사 등 산업계는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만큼 과감히 혁신하고 투자하고 있는데,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하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다"면서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이번 전략 발표가 매우 의의가 있다. 앞으로 실제 추진한다면 국내 제약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전기를 맞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도 2022년 1630조원에서 연평균 6%씩 증가해 오는 2028년 2307조원에 이를 제약바이오시장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 정부차원의 제약바이오 육성과 보건안보 강화를 위한 전략들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최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표한 '바이오헬스 산업의 주력산업화를 위한 생태계 구축' 보고서(홍미영, 김주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바이오헬스산업 특성상 장기적 투자가 필수며 선진국간의 자본·기술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정부가 정책수요를 반영해 역할을 정립한 후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보고서를 통해 "주력산업은 생산, 부가가치, 수출 등의 규모가 크고, 전후방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커 미래 성장 잠재력과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산업으로, 산업성과, 역동성, 혁신성, 경쟁력, 파급효과, 성장성 등이 주요 지표"라며, "국내 주력산업의 대표 사례는 자동차, 조선, 반도체, 통신기기(휴대폰, 이동통신), 철강 등으로, 이들 산업은 민관 공동,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 기반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오헬스산업이 주력산업으로 발전한 곳은 세계 의약품 산업을 선도하는 미국, 스위스와 최근 급격한 산업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 등이 있다. 이들 국가의 발전 모델 특징 등을 살펴본 결과 민간 주도 생태계가 활성화된 미국과 스위스의 경우 규제 및 제도 완화, 기업 인센티브 제공 등 원활한 신기술의 산업화나 이미 형성된 산업 생태계의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주를 이뤘다"며 "특히 미국 NIH는 국가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 기초연구, 혁신적 아이디어 기반의 고위험 연구 등 민간기업의 시도하기 어려운 분야의 연구를 적극 지원했다"고 밝혔다.
반면 민간 주도 성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중국은 정부가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신약개발 R&D와 산업화를 육성하는 등 정부 주도의 산업육성 정책을 시행해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부연했다.
즉 바이오헬스 주력산업화를 위해서는 산업 고유의 특성과 산업영역별 발전단계를 파악한 후 산업 전반의 가치사슬단계별 정책수요를 바탕으로 정부 역할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구진은 "바이오헬스 산업의 주력산업화 수준은 하위권인만큼, 현시점에서 바이오헬스 산업의 발전단계와 속도를 고려해 정부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원천기술 투자 확대와 기술사업화 촉진 등 벤처캐피털 활성화, 규제완화 등 성장기 초기 사이에 해당하는 정부지원 모델을 적용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정부-민간 역할 분담과 세분화된 기술영역, 기술가치 단계에 따른 수요를 파악해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의약품의 경우 민간에 대한 기술협력자 역할 모델을 도입해야 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은 국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산업화 초기에 있어 산업 활성화 지원 모델이 필요하다"면서 "바이오헬스 전반에 대한 R&D 투자, 해외시장 진출 지원, 전임상·임상 인력 양성 등을 추진하고, 생산, 판매, 수요 등 여러 가치사슬에서 복합적인 지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