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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름과 등을 준비하지 않으면 서울이 우한처럼 폐허가 될 수도 있다

    서울 인구 1000만, 우한 1100만...폭발적 환자수 증가로 의료 인프라 마비 막아야

    [칼럼] 배진건 배진(培進) 바이오사이언스 대표·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

    기사입력시간 2020-02-28 06:57
    최종업데이트 2020-02-28 06:57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21세기 대유행병의 출현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아직 '코로나19(COVID-19)'가 변곡점을 지나지 않았지만 중국 우한(武漢)을 폐허로 만들고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5년 안에 또 올 것이다. 왜 5년인가?

    사스(SARS)는 2002년부터, 메르스(MERS)는 2012년, 코로나19는 2019년에 발병했다. 지구적으로 따져보면 10년에서 7년으로 변종 바이러스 출현이 잇따른다. 이 세 가지는 RNA 바이러스인 단일 염기서열이라 돌연변이가 더 빠르다. 한국은 2015년 메르스가 발병한데 이어 2020년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했으니 5년까지 좁혀졌다. 지구가 비행기로 점점 더 연결되기 때문에 감염 속도는 더 빠를 수 있다.

    코로나19의 감염 전파 위험도를 중국과 세계 각국이 비행기 연결을 계산해 예상한 것이 실제적인 예다. 정부가 준비한 이름대로 4년 후면 ‘코로나23’ 이고 5년이면 ‘코로나24’가 (확률적으로 아마도 중국에서) 다시 대한민국을 찾아올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준비가 곧 대비책이다. 유대인의 결혼 풍습은 신랑은 신부로 삼을 여자의 집에 가서 신부의 아버지에게 값을 치른 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신부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1~2년 정도 준비가 되면 신랑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밤중에 신부를 데리러 가서 신부와 함께 준비한 집까지 돌아와서 혼인잔치를 7일 동안 베푼다. 신랑이 어느 날 밤중에 올지 모르기 때문에 신부는 항상 기름과 등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 신랑 집까지 가는 길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은 우한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서울에게 이번 우한이 폐허가 되는 것 같은 그런 일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생각이 들지만, 서울과 우한은 닮은 점이 많다. 먼저 2020년 1월 서울의 인구 수는 1000만명이고 우한은 인구는 1100만명이다. 또한 우한에 있는 병원은 7500병상이지만 서울 빅5의 병원은 1만병상이다. 우한의 병상 수가 적어서 바이러스 확진자들을 처리 못했다고 그저 단순하게 넘길 수 없다.

    우한에 위치한 병원들의 수준이 서울보다 낮다고 착각할 수 있다. 2월 12일 자 로이터 통신은 'Coronavirus outbreak begins to disrupt booming China drug trials'라는 기사를 실었다.

    미국의 임상통계 사이트인 ‘GlobalData Plc’에 의하면 우한에서 현재 진행되는 다국적 임상이 500여 건이라고 한다. 10년 전 다국적 글로벌 임상의 10%가, 지금은 20%로 우한의 의존도가 더 높아진 것이다. 후베이성과 수도인 우한이 완전히 봉쇄된 상황에서 글로벌 임상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기에 다국적 제약사들의 중국 전략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기사다.

    우한에 위치한 병원들의 수준은 글로벌 임상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병원들이지만 왜 문제가 됐나? 폭발적인 코로나19 환자수의 증가 때문에 의료 인프라 마비가 온 것이다. 이것이 우리 현실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구가 갑자기 신천지 때문에 우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는 모델이 됐다. 대구의 모습을 보며 서울이 우한처럼 폐허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병원이 코로나19로 마비되면 일반 다른 병을 지닌 환자들의 피해가 걱정이다. 전문가들은 보건소와 지방의료원 같은 국공립 의료기관을 한시적으로 코로나19 전담 진료기관으로 지정해 일반 병원과 이원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외질환을 연구하고 있는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앞에서. 사진=배진건 박사 제공  

    이런 우려에서도 대한민국의 바이러스와 전쟁 준비는 이미 2004년에 시작됐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IPK)가 2004년 4월 과학기술부(지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MSIT)의 지원을 기반으로 감염병 연구의 산실인 프랑스 'The Institut Pasteur'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간의 협력을 통해 설립됐다. IPK는 글로벌 공중보건 이슈인 소위 'Neglected Disease(소외질환)'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왜 소외질환인가? 인플루엔자,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등 가난한 나라에서 자주 일어나는 글로벌 감염병이기에 돈 많은 부자들의 병에 관심을 쏟는 글로벌 다국적 제약사가 연구를 안 하는 질병이라 ‘Neglected Disease’이다. 실상은 ‘Neglected Disease’라는 말조차 쓰기를 꺼려한다. 

    이미 IPK는 소외질병을 소외하지 않고 전 세계 5개 대륙 33개소의 'Institute Pasteur International Network'의 회원으로 국제적인 감염병 연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파스퇴르연구소 국제 네트워크는 루이 파스퇴르의 사명과 미션을 중심으로 공통의 문화와 가치를 공유하는 글로벌을 이미 묶은 연구 네트워크다. 바이러스는 국경이 없으니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 전략이다.

    이렇게 소외질병에 대한민국이 횃불과 기름을 2004년부터 준비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독립된 비영리 법인 IPK는 프랑스와 대한민국이 양국 간 서명한 10년 동안 MSIT와 경기도로부터 지원을 잘 받아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문제는 협력기간이 끝난 2015년부터다. 정권이 바뀌고 MSIT 정책자들이 바뀌니 소외질병보다는 글로벌 제약사처럼 돈을 벌 수 있는 신약개발로 가야 된다는 정책 변화다. 잘 구축된 신약개발 플랫폼과 신약후보물질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하나만 성공해도 자립할 수 있고 돈 벌 수 있다는 악마의 유혹에 빠진 것이다.

    그 결과물로 처음 10년처럼 재정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고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연구소로 축소시켰다. 이런 상황 아래서 오래 근무한 첫 외국인 소장에 이어 후임 외국인 소장들로 이어 가다가 우여곡절 끝에 2017년 국제적인 경력의 첫 한국인 소장이 부임했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자라도 충분한 재정적인 지원없이 비영리 법인 IPK를 제대로 이끌고 갈 수가 없다.

    소외질병과 신약개발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는 없다. 다국적 제약사가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정부가 비영리 법인에 대한 확고한 이해 없이는 바이러스나 소외질병 공격이 들어올 때 준비가 되지 않는다. 한 달에 최소한 10억의 횃불과 기름만 준비해도 연구소가 운영되며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가 IPK의 감사 역할을 하는 2015년 한국에 메르스 사태가 왔다. 그 때 IPK는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전문 지식을 제공했고 또 생물안전3등급실험실(BSL3)에 구축된 연구소만의 독자적인 스크리닝 기술을 이용해 보건당국이 사전 승인한 치료 물질을 시험했다. 지난 칼럼에 소개한 우한바이러스연구소(WVI)처럼 이번 코로나19도 어떤 물질이 효과적일까 연구할 충분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를 또 찾아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대한민국에 바이러스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위해 최첨단 방법을 연구하는 국제적인 연구기관 하나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IPK 외에 또 다른 기관이 존재하는가? 돈만 대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여기 저기서 들린다.
     
    찾아보니 진원생명과학만 바이러스와 전쟁을 준비하는 유일한 바이오텍 회사다. 진원생명과학은 에볼라, 메르스와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DNA백신을 개발해, 3개 모두 임상연구 단계에 진입했다. 그러나 DNA백신이 RNA백신이라는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기에 힘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설립된 지 오래되고 상장된 회사이고 무엇보다 부자들의 병에 비해 소외질병이기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서울처럼 우한의 역사적인 면모도 무시할 수 없다. 고도(古都) 우한은 중국의 격변기 때마다 모습을 나타냈다. 우한은 청(淸)조를 타도한 1911년 10월 10일 신해혁명의 도화선이 된 우창 봉기의 진원지다. 그만큼 우한 시민은 필자의 친구 진스크립트(GenScript)의 Dr. Zhang처럼 자긍심이 높고 자존심이 높다. 그러나 그것으로 바이러스의 공격에 고도를 지킬 수는 없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횃불과 기름을 준비한 현명한 다섯 처녀처럼 대비책은 준비다. 의료시스템이 붕괴된 후베이성에 중국 사망자 96%가 집중됐다. 서울이 우한처럼 폐허가 될 수도 있다. 5년 안에 다시 다가올 바이러스를 맞이하기 위해 대한민국이 꾸준히 연구하고 투자해야 한다. "Chance favors only the prepared mind." 파스퇴르 박사가 남긴 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