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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고령 사회의 경고음, 일본의 건강보험법 개정이 던지는 화두

    [칼럼] 김도훈 한국병원정책연구원 연구원

    기사입력시간 2026-06-19 14:03
    최종업데이트 2026-06-19 15:3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건강보험 수가 구조 혁신방안'의 핵심은 검사 수가를 인하해 마련한 재원으로 필수의료 영역을 메우는, 이른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의 재정 조정이다. 의료계의 일방적 희생이나 한정된 파이 쪼개기에 의존하는 이러한 방식이 과연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화와 재정 위기를 맞이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해 온 일본의 최근 입법 사례는 우리 보건당국이 추진해야 할 보건의료 개혁의 실질적인 방향성에 대해 몇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지난 6월 5일 공포된 일본의 '건강보험법 등 일부 개정 법률(2026년 법률 제31호)'의 주요 내용을 통해 우리 의료 개혁의 지향점을 객관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1.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의 조건: '공평한 부담'과 '재정 합리화'

    그간 "부담 능력이 있는 계층에게 더 걷고, 불필요한 재정 지출은 줄인다"는 가치는 글로벌 보건의료 개혁의 보편적인 과제였다. 일본의 이번 개정안은 이 원칙을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로 연결했다. 가장 주목할 대목은 '약제 본인부담 차등제(일부 보험외 요양)'의 도입과 자산가 고령자에 대한 금융소득 반영이다.

    의약품 처방의 효율화 유도: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OTC)과 치료 효과가 유사한 약제에 대해서는 약제비의 일부를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환자들의 무분별한 약제 이용을 억제하고 건보 재정의 누수를 막겠다는 취지다.

    '자산가 고령자'의 비례적 부담 적용: 소득 수치 자체는 적지만 자산이 많은 고령층에게도 청년층과 동일한 수준의 건보 혜택을 제공하던 기존의 방식을 수정했다. 상장주식 배당 등 실질적인 금융소득을 보험료 산정과 본인부담 비율 판정에 투명하게 반영하기 위해, 금융기관이 후기 고령자(75세 이상)의 금융소득 자료를 온라인으로 의무 제출하도록 법제화했다.

    세대 내 및 세대 간의 부담 공평성을 확보하려는 일본의 이러한 조치는 향후 한국형 건보 재정 구조 개편을 논의할 때도 정밀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

    2. 재정 효율화의 전제: 국고 보조와 적립금 활용의 병행

    한국의 보건의료 개혁 논의에서 아쉬운 부분은 재정 총량의 확대나 기존 자산의 유연한 활용에 대한 고민 없이, 의료기관 내부의 수가 조정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점이다. 반면 일본의 법률안 이면을 보면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재정적 유연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시적 국고 보조(공적 재정) 투입: 중소기업 직장인들이 가입하는 전국건강보험협회(협회건보)의 평균 보험료율을 인하하는 동시에, 건보 재정의 급격한 악화를 막기 위해 향후 3년간 국고 보조 특례 감액 공제액을 상향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개혁에 따른 재정 충격을 의료계나 가입자에게만 전가하지 않고, 공적 재정을 한시적으로 증액 투입해 완충지대를 만든 것이다.

    누적 적립금의 전용 허용: 지역건강보험의 재정안정화기금(누적 적립금)을 활용해 보험료 인상을 억제할 수 있도록 기금의 인출 및 전용을 과감히 허용했다. 곳간에 쌓아둔 여유 재정을 재정 위기나 보험료 폭등기에 유연하게 전용하여 제도 운용의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계산이다.

    3. 의료기관의 법적 책무가 된 '디지털 헬스케어(의료 DX)'와 '근무환경 개선'

    의료 공급 부문의 개편안 역시 현실적인 정책 수단을 담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단순히 의료진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봉사정신에만 기대지 않고, 의료기관의 업무 효율화와 근무환경 개선을 법적 책무로 명시하는 동시에 국가가 이를 재정적으로 직접 지원하는 구조를 구체화했다.

    지역의료발전기금의 활용과 정부 인증제: 지자체의 '지역의료·개호총합확보기금' 내에 병·의원의 업무 효율화와 환경 개선을 지원하는 새로운 사업 계정을 신설했다. 또한 개선 계획을 수립해 실천하는 병원에 후생노동성 대신(보건복지부 장관)이 공식 인증을 부여하고 마크를 표시할 수 있게 하는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했다.

    노력 의무의 법제화: 의료법과 건강보험법을 동시에 개정해 병·의원의 관리자와 요양기관은 환자 진료뿐만 아니라 '업무 효율화'와 '근무환경 개선'에 의무적으로 노력해야 함을 분명히 했다. 의사의 과도한 근무 시간이나 행정 업무의 과중을 방치하는 병원은 제도적 지원 대상에서 소외될 수 있음을 명시한 선언이다.

    4. 맺으며: 구조적 단계성을 갖춘 '연착륙 개혁'의 시사점

    보건의료 정책은 선언적인 구호보다 현장의 수용성을 고려한 정교한 타임라인이 성패를 가른다. 일본 정부가 제시한 개정안의 시행 일정을 살펴보면 정책의 연착륙을 위해 다각도로 배려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장기요양 환자의 가계 부담을 직접적으로 줄여주는 '본인부담 상한제(고액요양비)' 개정은 당장 올해 8월로 가장 빠르게 시행하되, 현장의 준비와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약제 본인부담 차등제’는 공포 후 1년, 임신·출산 급여체계 개편은 공포 후 2년, 금융소득을 추적하는 시스템 연계는 공포 후 5년이라는 단계적 타임라인을 두고 현장의 혼란을 조율하고 있다.

    "한국 의료를 살리겠다"며 구체적인 현장 시뮬레이션 없이 특정 시점을 발효일로 들이미는 우리의 거친 정책 기조와, 법안 통과 이후 수년에 걸쳐 제도의 성격에 맞게 연착륙을 시도하는 일본의 법률안은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우리 보건당국이 추진해야 할 의료 개혁 역시 일방적인 선언에 그치기보다는 현장의 예측 가능성을 존중하는 정교한 제도 설계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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