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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분쟁, 시행령만 잘 만들면 해결된다”는 착각

    [칼럼] 성남시의사회 김경태 회장·대한의사협회 감사

    기사입력시간 2026-09-01 12:36
    최종업데이트 2026-09-01 12:36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두고 의료계 일각에서는 한 가지 기대가 있었다. 법 자체에 아쉬움이 있더라도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잘 만들면 실제 의료현장에서 발생할 문제를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였다.

    대한의학회가 관련 연구용역을 맡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런 기대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지난 7월 29일 대한의학회가 산하 26개 전문과목학회에 배포한 안내문은 오히려 이 법의 근본적인 한계를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대한의학회 스스로 “법률 자체를 개정하지 않는 이상 하위법령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연구용역을 통해 시행령과 시행규칙, 가이드라인을 아무리 정교하게 마련하더라도 법률 자체의 구조적 문제까지 고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행령은 법률이 위임한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개정법은 의료인의 형사책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특례를 마련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수준의 형사특례를 적용받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은 결코 낮지 않다.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 해당해야 하고, 의료사고 발생 후 7일 이내 설명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또한 12대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지 않아야 하고 손해배상금도 전액 지급해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가장 강력한 수준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

    물론 이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모든 형사적 보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와 합의·조정이 성립한 경우 적용될 수 있는 반의사불벌 특례와 일정한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서 중과실이 없는 경우의 형 감경·면제 등 단계별 보호장치가 존재한다. 그러나 의료현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핵심은 여전히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의 범위와 ‘12대 중대한 과실’의 규정이다.

    특히 12대 중과실의 범위와 판단기준이 실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어떻게 해석될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의료는 동일한 질환이라도 환자의 상태와 응급성, 의료기관의 인력과 시설, 당시의 임상적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사후적 결과를 기준으로 의료진의 판단을 폭넓게 중과실로 평가한다면, 의료인을 보호하겠다던 형사특례가 오히려 또 다른 사법적 불확실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더구나 설명의무와 형사특례의 관계 역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의료사고 직후 의료진은 환자의 치료와 사후조치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요건이 형사특례 여부를 좌우한다면 제도의 취지와 실제 작동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생길 수 있다.

    이 문제를 단순히 시행령 문구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의 구체적인 범위처럼 하위법령에 위임된 사항은 시행령을 통해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 자체에 규정된 형사특례의 기본 구조와 중대한 과실의 범위 등은 다른 문제다.

    대한의학회의 연구용역 역시 12대 중과실에 대한 심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의 범위 등을 제안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제안과 가이드라인이다. 실제 하위법령을 제·개정하는 주체는 정부이고, 법률 조문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곳은 결국 국회다. 법률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연구용역이나 시행령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환자단체의 우려 역시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형사특례가 의료인에게 지나치게 폭넓은 면책을 제공할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 환자의 피해구제와 알 권리는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환자 보호와 의료인 보호를 서로 대립하는 가치로만 바라봐서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

    의료사고 피해자에게는 신속하고 충분한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동시에 고의나 명백한 중과실이 없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보다 조정·중재와 배상을 중심으로 해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환자에게는 신속한 피해구제를, 의료인에게는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의료분쟁 제도개혁의 목표가 돼야 한다.

    특히 “일단 시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고치자”는 접근은 위험하다. 의료분쟁과 형사책임은 단순한 행정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의 진료행위와 환자의 생명·안전, 의료인의 형사책임이 직접 맞닿아 있다. 응급·중증·분만·수술처럼 위험도가 높은 의료현장에서는 법률의 작은 불확실성 하나가 의사의 진료 선택을 바꾸고 결국 방어진료를 부추길 수 있다.

    필수의료 현장의 의사들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면책이 아니다. 선의로 최선을 다해 진료한 의료인이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만으로 형사피고인이 되는 현실을 합리적으로 개선해 달라는 것이다. 의료진이 중증환자를 앞에 두고 치료의 필요성보다 형사처벌 가능성을 먼저 계산해야 한다면 어떤 제도를 내놓더라도 필수의료를 살리기 어렵다.

    시행일인 2027년 5월 27일까지 남은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의 범위가 현실적인지, 12대 중과실의 범위와 판단기준이 지나치게 넓거나 불명확하지 않은지, 설명의무와 형사특례의 연계가 의료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하나하나 다시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행령으로 고칠 수 있는 문제와 법률을 다시 개정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시행령은 법률을 넘어설 수 없다. 잘못 설계된 법을 시행령으로 완벽하게 고칠 수 있다는 기대부터 버려야 한다.

    의료분쟁조정법의 목적이 진정 필수의료를 살리고 의료인의 과도한 사법 리스크를 줄이는 데 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낙관론이 아니다. 시행령으로 보완할 부분은 최대한 보완하되, 법률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시행 전에라도 과감하게 다시 고쳐야 한다.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만든 법이 오히려 필수의료 의사들에게 또 하나의 족쇄가 돼서는 안 된다. 이제는 ‘시행령만 잘 만들면 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쳐야 할 것이 시행령인지, 법률 자체인지부터 다시 냉정하게 따져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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