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공공의료를 바라보는 여야의 시각차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당은 공공병원을 운영하며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명 '착한 적자'를 없애고 공공병원 확충을 위한 국비 지원 확대 등 전반적인 지원을 확대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반면, 야당 측은 공공병원의 운영 평가 결과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해 운영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25년까지 지방의료원 3개소 확대 예정…비용 추계는 2483억원
2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코로나19 장기화 사태를 겪으며 전반적인 공공의료 확대 기조는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까지 신축이나 이전 신축을 통해 지방의료원 3개소 이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지방 공공병원 확충을 위한 재원은 얼마나 들까. 국회예산정책처에서 최근 발간한 지방의료원 비용추계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의료원 1개소의 설립 추가재정소요는 2022년 991억원, 2023년 1492억원 등 2025년까지 5년간 총 2483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계됐다.
이는 신규 설치되는 지방의료원의 규모가 기존 지방의료원의 평균 병상 규모와 연구·진료·교육 기능이 가능한 규모 등을 감안해 400병상 규모로 가정했을 때 나온 수치다. 2020년도 기준 전국 34개소의 지방의료원(분원 제외)의 평균 병상 수는 283개이며, 이 중 인턴, 레지던트 수련병원으로 지정된 7개 병원의 평균 병상 수는 433개다.
다만 해당 추계는 건립비용에 따른 토지매입비 등은 포함되지 않은 결과로 토지매입비를 포함할 경우 지방의료원 설립에 따른 재정소요는 훨씬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 국비 지원 상황으론 충분한 지방의료원 설립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지방의료원 시설과 장비 현대화 국비지원 한도 금액이 신축의 경우 연간 165억원으로 지방비를 포함해도 총 330억원이다. 현재 상태론 이번 추계에서 산출한 지방의료원 설립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여당, 경제적 실효성보다 공공성 우선 정책 명확…“공공병원 확충 비용 확대”
이 같은 공공의료 확대 기조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은 공공병원 확충 과정에서 실효성보다 공공성이 우선시 될 수 있도록 정부와 발을 맞추고 있다.
전라권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공공의전원(공공의대) 설립에 속도를 내자는 일부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최근 더 눈여겨 볼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이 내놓은 일명 '공공의료3법'과 의사출신 이용빈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공보건의료법 개정안'이다.
우선 공공의료3법은 지방의료원 예비타당성을 면제하도록 하고 지방의료원을 비롯한 공공병원 확충 비용 분담금의 국비 비율을 높이는 등 방안을 담고 있다.
개정안들은 70개 중진료권의 지역 거점 공공병원에 대해 예타 면제를 우선 적용하고 국가와 지자체에 공공의료 수행기관에 대한 적자 보전을 위해 필수 경상비 등 지원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지방의료원을 비롯한 공공병원 확충 비용 분담금을 현행 국비 50%, 지방비 50% 구조에서 국비 분담율은 70~80%까지 높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는 보건의료노조와 합의 했던 노정합의 내용에 다수 포함돼 있는 내용으로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후보의 공공의료 강화 정책 방향성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후보는 공공의료 확대 정책에서 시장논리를 배제하고 향후 지방 필수 의료와 공공 의료의 확대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 확대를 예고한 바 있다.
지난 15일 이 후보는 경남 거창적십자병원을 찾아 "공공의료 확대엔 시장논리를 내세워선 안 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의료종사자들의 헌신에만 기대하며 헤쳐나갈 순 없다"며 "공공의료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이뤄내고 의료종사자 들의 처우도 개선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우선시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공공의료법 개정안은 공공보건의료사업의 원활한 추진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보건의료확충기금을 설치하도록 명시했다. 특히 법안은 기금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담배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 중 일부를 기금의 재원으로 확보해 공공보건의료 체계를 위해 기금이 운영될 수 있도록 했다.
주목할 점은 이번 개정안 발의에 여당 이외에도 여러 국회의원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공공의료 확대 기조를 강조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외에도 국민의힘, 정의당, 무수속 등 의원이 대거 참여한 만큼 법안 통과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국회 내 공공의료 강화 대책을 주도하고 있는 공공의료포럼 출신이다.
일각에선 이 같은 정책 방향에 더해 지방의료원의 절대적인 규모 자체를 키워 지방의 공공의료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정회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존 지방의료원 가운데 대부분 기관이 지역에서 거점의료기관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에 규모가 작다"며 "2019년 12월 말 기준 분원을 제외하고 34개 지방의료원 중 200병상 미만 기관이 9개, 200병상과 300병상 사이 기관이 19개로 전체 82.4%가 300병상 미만"이라고 말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규모가 작은 지방의료원을 300병상 이상 규모로 증축해 지역 거점의료기관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며 "지방의료원의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지역주민에게 양질의 필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제대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당, 운영 효율화 방안도 중요…지방의료원 민간위탁 운영도 방안
반면 야당은 공공병원의 운영 효율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방의료원의 공공성을 높이는 사업도 중요하지만 이들 의료기관의 의료 서비스 질 개선도 시급하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방의료원 ‘운영평가’를 실시하고, 평과 결과가 좋지 않은 의료원의 경우 운영상태를 진단하는 ‘운영진단’을 시행한다. 그러나 문제는 결과 공표 규정은 의무조항이 아니며 낮은 등급의 평가를 받는 의료원의 서비스 질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복지부 지방의료원 운영평가 결과에 따르면 C등급 운영진단 평가 결과를 받고도 3년 연속 등급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종성 의원(국민의힘)이 지난 24일 발의한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방의료원 운영진단 결과 공표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종성 의원(국민의힘)실 관계자는 "매년 지방의료원의 평가가 좋지 않음에도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운영진단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지방의료원과 복지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개선안을 모색하고 국민들에게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인 '문재인 케어'의 실패를 보완하고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을 위해 불확실한 정부지원 규모를 최소화하도록 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현행 건강보험법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등을 위해 정부가 당해연도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일반회계 14%, 건강증진기금 6%)의 금액을 건강보험 재정에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 금액을 ‘예산의 범위 내에서 해당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 14%에 상당하는 금액’으로 규정하고 있어 정부가 재량껏 매년 법정지원율보다 낮은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이종성 의원은 개정안을 통해 불확실한 정부지원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지원액 편성시 ‘당해년도 예상수입액’에서 ‘전전년도 건강보험 지출액’을 기준으로 지원금을 정하도록 했다. 또한 지원액 규모에 대한 정부의 편의적 재량을 없애기 위해 ‘상당하는 금액’을 ‘해당하는 금액’으로 바꾸고, ‘예산의 범위내’를 삭제했다.
연세의대 장성인 예방의학과 교수는 "의료의 지역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선 지방의료원의 민간위탁 운영을 통한 효율성 높이기 등 방안이 필요하다"며 "상대가치점수 구조에서 지역 수가 구조를 형성하거나 취약지역이나 기피과 등의 유지비용 지원 등 방안도 모색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