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정부의 심사체계 개편에 대한 윤곽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27일 건강정책심의위원회에서 향후 5년에 걸쳐 현재의 건강보험 심사·평가체계를 환자 중심, 의학적 타당성 중심, 참여적 운영방식 중심, 질 향상 중심의 가치에 따른 단계적 개편 등 ‘가치에 기반한 (value-based) 심사·평가체계’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심사체계 개편안은 전문가나 전문학회가 심사에 대거 참여해 의학적 판단을 존중하도록 했다. 또한 건강보험 가입자 등의 목소리가 심사제도 운영·개선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가칭)심사제도 운영위원회’도 신설한다. 의학적 판단을 심사하는 심층심사기구(Peer Review Committee, PRC)와 전문분야심의기구(Super/Special Reivew Committee, SRC)를 두고 그 상위에 시민단체, 가입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Top Review Committee, TRC)를 두는 구조다.
이에 대해 의협 최대집 회장과 변형규 보험이사는 28일 기자회견에서 심사체계 개편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 회장은 "의협이 협의체 회의에서 특별한 반대 의견을 보이지 않다가 뒤늦게 반대한다"고 지적한 서울의대 김윤 교수를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협의체 구성원인 김윤 교수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과 심사체계 개편안의 의미를 간단히 들어봤다.
의협, 회의 잘 끝내고 나가서 강력 반발 황당…소수세력에 의한 의협 입장
-당시 회의에 참여한 이후에 페이스북에 의협 이사가 밥 잘 먹고 회의에 잘 참석했다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강하게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의협이 정말 그랬나.
19일 (심사체계 개편 협의체 3차) 회의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위원회의 다른 위원들에게 전해듣기로는 의협의 변형규 보험이사가 TRC 등에 문제제기를 했으나 당시 심평원의 충분한 설명이 있었다고 한다. 의협 외에 다른 의료계 단체는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고 심평원 입장에 동의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TRC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했다.
당시 변 이사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보이긴 했다. 하지만 점심 때 밥을 잘 먹고 헤어졌는데 저녁에 갑자기 의협이 회의장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는 등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 그렇다면 협의체 회의 와서 회의했던 사람들은 다 바보가 된 것인가. 의협 대표가 마음만 먹으면 회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인가. 의협이 회의가 끝난 이후에 결론을 뒤집는다고 회의를 다시 소집할 수 있는가. 의협이 회의장 외에서 문제제기한 것을 다시 논의해서 위원회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것인가.
의협이 당시 회의장에서 안 된다고 이야기했으면 됐을 일이다, TRC가 절대 안 된다고 해볼 수 있고 시범사업인 만큼 다양한 형태로 운영해볼 수 있다. 의협의 행태는 회의가 다 끝나고 다른 모든 위원들을 뒤통수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협 측은 심사체계 개편 회의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고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지난 19일 회의에서 청구명세서에 진단명이나 과거력 등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고 비판했다.
회의자료는 논의 과정에서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다. 다만 이전의 회의 내용에서 무엇이 변경됐는지가 중요하다. 단순히 내용이 많이 수정됐다는 비판으로는 곤란하다. 의협 측은 당시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고 무엇을 반대하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협이 가장 크게 비판했던 TRC는 맨 처음 회의자료에서부터 이미 들어있었다.
-최대집 회장은 회원 권익을 해치는 등의 발언을 하거나 정책을 제안한다는 이유로 김 교수를 윤리위원회에 제소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윤리위원회에 제소한다면 어떤 점이 비윤리적인지 설명을 해야 한다. 최 회장만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을 윤리위원회에 세우면서 발언 기회를 줘야 한다. 윤리위원회 제소에 대한 합리적인 답변이 있어야 한다.
가령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에 1000여명의 개원의가 지원했다. 그렇다면 1000여명의 의사는 왜 참여하는 것인가. 이 제도에 참여하는 것이 의사 권익에 반하는 것인가. 대한병원협회는 심사체계 개편 시범사업에 참여할 것이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의사 이익에 반하는 것인가.
게다가 의사의 이익에 반한다는 것과 비윤리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다르다.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특정 개인을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것 자체가 비난하는 것이자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의협이 심사체계 개편안 등 정부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현 의협의 태생인 전국의사총연합을 중심으로 의협에 대한 강한 비판이 있다고 들었다.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이나 심사체계 개편에 동의한 것이 그 이유라고 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의협은 다수의 회원 의견이나 의료계 다수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장외에 있는 소수 세력에 의해 의협 입장이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의협은 막후정치 세력에 의해 결정을 자꾸 뒤집으면서 외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이는 의협이 의사단체로서의 신뢰성과 공신력을 떨어트리는 행위다. 회원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의료계, 심사체계 등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의협 외부에서 변화 계기 있을 것
-의료계가 심사체계 개편 논의구조에 참여해야 하나.
이번 심사체계 개편안은 그동안 심사체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심평원 직원이 아니라 지역에 있는 의사들이 심사하는 구조다. 일종의 자율심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제도를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 의협이 빠진 다음에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비판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좋은 제도를 만들기 어렵다.
-TRC에 가입자단체가 참여한다고 밝혔다. TRC의 역할은 무엇인가. 가입자단체가 심사에 참여하게 된다는 우려가 있다.
TRC는 일종의 심사체계에 관한 심의를 하는 조직이다.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것은 건정심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이유다. TRC는 심평원 심사의 외부감시가 가능하도록 만든 조직이다. TRC는 심사체계를 관리 감독하는 위원회일 뿐, 심사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 있는 의사나 병원들이 어떻게 심사하는지 모른다. 지역에 따라 심사기준이 다르거나, 심사기준이 바뀌어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의료계는 그동안 급여기준과 심사기준 공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기구가 바로 TRC다. TRC를 통해 심사체계가 어떻게 운영되고 심사 기준은 무엇인지 외부에서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심사 관리체계를 만드는데 시민단체나 가입자단체도 참여해야 한다. 의사나 병원이 심사체계를 알아야 하는 것만큼 환자나 가입자도 마찬가지로 심사체계를 알아야 한다.
-의협이 정부 정책의 핵심 파트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의료계 정책파트너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의협 내부에서 정책적 대안이 있는 전문가단체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의협 집행부를 구성하는 개원의 중심의 조직 구조에서는 전문가 조직이 생기진 못할 것이다. 대한의학회도 마찬가지다. 최근 의학회 집행부가 바뀌면서 의협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심사체계 개편 협의체 회의에 참석한 의학회 대표가 우리는 무조건 의협 입장을 따른다고 했다. 이것도 의학회가 의협과는 다른 전문가 집단으로 자리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의협은 외부적으로 어떤 정치적인 압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면 누가 의협 집행부와 대화를 나누려고 할 것인가. 이런 상황을 볼 때 의협 외부에서 어떤 변화의 계기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조만간 의협이 바닥을 치는 날이 올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