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최지민 인턴기자 고려의대 본2] 비대면진료를 이용한 환자 중 탈모·피임약·성병치료 목적이 상위권을 차지한 가운데, 비대면진료가 단순히 환자의 ‘시간 아끼려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의료정책연구원은 7일 대한의사협회(의협)회관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의 문제점’을 주제로 제43-6차 의료정책포럼을 개최했다. 가톨릭의대 내분비내과·의료정보학교실 김헌성 교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서 한국건강보험(건보) 데이터를 활용해 진행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수행 실적 평가 연구 결과를 설명하며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대면진료의 법적 근거가 되는 의료법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입법예고에는 6400건이 넘는 반대 의견이 게재됐고, 의협은 6월 26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상태가 심각한 환자의 문제를 방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2008년부터 약 15년간 비대면진료를 해왔기 때문에 비대면진료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라며 "하지만 현재의 법률안은 무리수가 있어서 15년간 쌓아온 근거 기반 진료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릴 것 같다”라고 발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시행된 ‘한시적 비대면진료 허용방안’에는 ‘국민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감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기관 이용의 한시적 특례를 인정한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라며 “건강관리 목적이 아니라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비대면진료에 관심 있는 환자 1500명, 의사 300명, 약사 100명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 연구 결과를 설명하며 “경증 질환, 만성 질환 뒤를 이어 가장 많이 진료받은 질환이 탈모였다”라며 “탈모약, 피임약, 성병 치료제 등 병원에 오기 까다롭다고 여긴 환자들이 주로 처방을 받은 게 아닐까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의사들은 시진·청진·촉진·타진이 필요하지 않은 만성질환 관리 목적으로 비대면진료를 이용했지만, 약사는 49명(49.0%)이 미용 목적으로 이용했다고 응답했다”라며 “환자 중에서도 125명(8.3%)은 미용, 55명(3.7%)은 성병치료를 위해 비대면진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환자의 이용 동기와 관련해서는 “65.0%가 시간 절약, 10.9%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들었다”라며 “이는 근거 기반 진료 취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또한 “서울 소재 의료기관에서 비대면진료를 받은 환자의 37.2%가 타 지역 거주자로 나타났다”라며 “지방 환자들이 특정 병원을 지속적으로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행위는 결국 의료 질서도 무너뜨리고 건강 관리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비대면진료는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는 환자들에게 근거 기반으로 제공돼야 하지만, 단순히 병원 오기 싫어하는 환자들이 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나의 건강을 위한 선택이라는 환자 의식 수준의 제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비대면진료 이용 환자 중에는 10세 미만과 50세 이상이 많다”라며 “특히 10세 미만은 시진·청진·촉진·타진이 꼭 필요한 영역인데, 일부 의료진이 초진임에도 이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플랫폼뿐 아니라 의협도 자정 작용이 필요하다”라며 “윤리적 문제는 없을 수 있지만, 다양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플랫폼 기준에 대해서는 “진료 목적에 따라 디바이스나 플랫폼을 구분해 선택해야 한다”라며 “미국 비대면진료 가이드라인에는 플랫폼도 다루는 질환을 특정해 정체성과 전문성을 유지하라고 권고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원칙적으로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라며 “1차의료기관 의사들이 비대면진료 경험이 부족하므로, 대학병원 내 헬스코디네이팅 센터를 두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임상적 가이드라인이 행정적 가이드라인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김진숙 전문연구원은 전진숙 의원의 법률안에 대해 “21대 국회서 발의된 최혜영 의원안보다 논의 수준이 후퇴했다”라며 ▲대면진료 원칙 삭제 ▲전화를 통한 진료 전면 허용 ▲지나친 초진 대상자 확대 ▲재진 대상질환 확대 ▲국가 배상 및 비용 지원 삭제 ▲플랫폼 관리 중 기능·적정성·우수성에 대한 인증 규정의 임의성 ▲플랫폼 관리에 대한 의협 역할 부재 ▲디지털 양극화에 대한 해결방안 부족 ▲플랫폼 유료화 등 문제들을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특히 지나친 초진 대상자 확대에 대해 “18세 미만 소아청소년 800만 명과 65세 이상 환자 1000만 명이 진료 대상에 포함됐고, 휴일·야간 진료가 불가피한 환자도 초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전국민을 초진 대상자로 확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또한 플랫폼 관리에 있어 의협의 역할이 배제됐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외국 사례를 보면 의료 행위 간섭 및 침해 단속, 진료 적합성에 대한 기준을 대부분 의사협회에서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률안에서는 의협의 역할이 담겨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유효성을 임상적 유효성과 정책적 유효성으로 나누어 볼 때, 비대면진료는 대면진료와 동등한 임상적 유효성이 있지 않으며, 정책 목표가 의료 접근성 해소에 있음에도 진료는 비대면으로 하고 의약품 배송은 하지 않는 점에서 효과가 의문스럽다”라고 평가했다.
김 연구원은 “최근 5년간의 비대면 진료 형태를 보면 환자 문진만으로 상태를 파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어렵고, 안전성에 대한 검증 결과도 제시되지 않았다”라며 “정부는 의료사고가 5건 있었다고 발표했지만, 질환, 사유, 결과에 대한 정보는 모두 미공개 상태”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NECA 연구에서도 입원 또는 응급진료로 이어진 사례가 유의하지 않다는 결과만 제한적으로 공개됐을 뿐이며, 단순히 응급실에 가지 않았다고 해서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 사례를 보면 소아, 고령층, 임산부 대상 비대면진료에서 사망, 진단 지연, 오진 사건이 계속 보고되고 있으며, 비대면 진료 관련 의료소송의 66%가 오진 때문이었고, 대부분 초진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단순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가 많았다.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를 포함한 여러 과에서 진단 실패나 의료사고로 인한 법적 분쟁이 발생했고, 이 중 16건(40%)은 법정 밖에서 합의됐으며, 평균 배상액은 약 52만 달러(약 7억 원), 총 배상액은 1245만 달러에 달했다”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학계에서 지적한 비대면진료의 위험성도 짚었다. 그는 “미국 소아청소년과학회 학술지에 따르면, 코로나19 시기 소아 비대면진료는 진단 정확도 저하와 치료 지연으로 질병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고, 일본 도쿄의학사에서는 소아 신경영역 비대면진료의 표준화·안전성·전문가 교육 부족이 의료사고 위험을 높인다고 경고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2023년 의협이 실시한 소아청소년과의사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대면진료 실시율은 57.1%에 불과했으며, 이 중 61.1%가 안전성 문제로 실시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도 소아 급성기의 위험성 과소평가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했다”라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이 소개한 한 21년차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복통과 같은 비정형 증상을 주소로 내원했을 때 뇌수막염이나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인 경우도 있다”라며 “모호한 증상은 대면진료가 필수”라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비대면진료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면진료를 원칙으로 하고, 비대면진료는 보조 수단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라며 “그 이후에 국가의 피해보상 체계, 의사의 진료 거부권, 서면 동의 요건 등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불편하더라도 안전성이 더 중요한 것이 의료다. 의료 서비스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만큼,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의료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