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국민 건강'이라는 목적 아래 대면 진료를 ‘보완’한다는 원칙을 제시했지만, 이미 비대면 진료의 산업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형태가 현장에 제대로 정착될 수 있을 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과 함께 비대면 진료가 왜곡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개최한 제4차 비대면 의료서비스 적용 전략 포럼에서 비대면 진료 도입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이날 좌장을 맡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김헌성 교수는 오래전부터 진행된 '비대면 진료' 논의가 왜 쳇바퀴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지에 대한 패널들의 의견을 물었다.
비대면 진료 산업적 측면 강조 의구심 '여전'…복지부 "대면 진료 보완"
먼저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최인순 본부장은 비대면 진료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비대면 진료에 대한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어떤 이해당사자들은 비대면 진료가 대면 진료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처럼 이해하고 접근하고, 또 어떤 이해당사자들은 대면 진료를 조금 보완하는 측면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비대면 진료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목적, 방향성을 먼저 합의해야 연구나 시범사업도 명확히 진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유석 교수 역시 "비대면 진료를 병원에 가는 것이 귀찮아서, 단순히 반복 처방을 받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환자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의료의 본질과 동떨어진 것이다. 결국 원격의료가 의료의 질을 높이고 환자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대면 진료를 보완하기 위한 원격의료가 돼야 하기에, 그 방향성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 차원철 교수도 "이해당사자마다 정의가 다른 것이 문제라고 본다"며 "그래야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이 줄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국회입법조사처 이만우 입법연구관은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려고 한다면 법률 통과를 전제로 해야 하는데, 그 입법 형식도 고민이 돼야 한다. 의료법 자체가 일종의 직역 중심법이기에 한 직역이 반대하면 상당히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이해관계자 사이의 합의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충기 정책이사는 "비대면 진료가 우리나라 의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활용되고 있느냐에 대해 의사들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의사들은 현재의 흐름이 의료 문제를 해결 하려기 보다는 산업적 측면이 더 강조돼 있다고 바라보고 있다"고 비대면 진료가 이익 창출의 도구로 활용돼 발생할 부작용을 우려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의료정책과 신현준 과장은 "정부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비대면 진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제도화되도록 만들어 나가야 하는 입장이다.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를 보완한다는 원칙에 따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제도화할 것이며, 다양한 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3분 진료 만연한 현실, 재원에 대한 문제 지적…비대면 진료 편법 발생 우려
이날 논의는 비대면 진료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먼저 김유석 교수는 "원격의료를 하려면 현재의 3분 진료로는 안 된다. 최소한 15~20분 이상의 진료를 하고 예약제를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1차 의료기관 현실을 봤을 때, 이것이 가능한 곳은 없을 것이다. 어떤 의원도 그렇게 환자를 봐서 의원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며 "실제적인 모델을 가지고 하나하나 구체화해 이것이 가능한지 실험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다른 나라들은 원격의료를 의료 취약지 해소를 위해서 주로 사용하는데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이 많고, 보건 지소와 보건진료소까지 있어서 의료기관 접근성이 굉장히 좋아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못 하는 취약계층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원격의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외국과는 다른 모델을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또 "외국은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고, 진료 횟수도 적어서 원격의료를 도입해 진료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저수가로 인해 해외에 비해 진료량이 굉장히 많다. 진료량이 많아야 수익을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에 대한 재원이 보장되지 않은 채 제도화되면 진료 시간은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편법만 난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즉, 비대면 진료 도입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대면 진료 보완을 통한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김유석 교수는 "우리나라는 짧은 진료 시간으로 대면 15분 진료 시범사업도 비용 보전을 하면서 진행되고 있지만 잘 안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15분, 30분 이상의 비대면 진료 모델을 만들었을 때 정말 제대로 작동할지, 환자 만족도가 향상되는지, 임상 지표가 늘어날 것인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며 "이런 부분이 정교하게 설계되고 입증돼야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처음에는 당연히 비급여로 대면 진료를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헌성 교수도 "결국은 돈 문제라고 본다. 지금 3분 진료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도 결국 돈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공감했다.
서울대병원 권용진 교수는 "일각에서는 비대면 진료의 도입이 비용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결국 원격의료도 시스템을 혁신하는 것인데, 모든 시스템 혁신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문제는 그 비용을 어떻게 투입할 것이냐의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15분 진료가 되려면 1시간에 4명씩 예약을 받아 8시간씩 일해 하루 32명을 진료하는 것이 되는데, 이것으로 현재 동네 의원이 버는 평균 수입을 보장할 수 있게 세팅하는 것이 과제다"라고 말했다.
김충기 의협 정책이사는 "코로나19 한시적 비대면 진료 상황에서 왜 의사들이 비대면 진료를 했느냐고 묻는다면, 의사들이 그것을 안 하면 진료 수익을 보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감염병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대면 전화 상담 등에 보상책을 지원해 줬다. 의사 입장에서는 당시 감염병으로 줄어든 환자의 숫자로 감소한 수익을 메꾸기 위해선 전화상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느냐의 부분은 상당히 어려움이 있었다"며 "비대면 진료가 과연 비용 효용성이 있는지를 입증하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 시 약 배송 당연…최저가 대체조제 도입해 중간 마진 없애야"
한편 이날 권영진 교수는 비대면 진료에서 약 배송 문제를 언급했다.
권 교수는 "높은 제네릭 의약품 가격 때문에 생기고 있는 유통 과정에서의 음성적 거래, 마진 이런 것들 때문에 약 배달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병원에서 원격 진료를 해도 약을 받으러 동네 약국에 가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환자 중심의 시각에서 보면 진료도 받고 약도 당연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권 교수는 "북유럽 중 몇몇 나라에서 도입한 최저가 대체조제를 도입해 중간 마진을 없애 버리면 약사, 의사 이해관계가 없어져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본다. 약 문제가 해결돼야 비대면 진료도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