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학과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A씨는 B의료기관으로부터 교통사고로 인한 입원환자 진료의뢰를 받고 영상촬영과 판독업무 등 진료를 실시했다. 다만 진료를 의뢰한 B의료기관의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심사청구가 늦어지자 A씨가 직접 수행한 진료에 대해 심사청구를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심평원은 A씨가 심평원 공고 조항에서 정한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청구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심사 자체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에 A씨는 답답한 마음에 심평원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청구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보험회사 등에 진료수가 지급을 청구했다. 해당 사건에서 A씨의 진료수가 지급 청구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0일 A씨가 보험회사 측에 직접 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청구한 '자동차보험진료수가지급' 소송에 대해 원심을 받아들여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진료실시 의료기관이 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직접 청구할 수 없도록 정한 심평원의 공고 조항의 효력 여부였다. 해당 공고가 실질적으로 진료실시 의료기관이나 보험회사 등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적절한 것인지가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심평원 제2013-85호 공고에 따르면 입원환자의 진료를 다른 의료기관에 의뢰한 경우에는 진료를 의뢰한 의료기관이 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청구해야 하고 진료를 실시한 의료기관은 별도로 진료수가를 청구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심평원은 이 공고 조항을 들어 진료 의뢰 의료기관 측인 A씨의 수가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해당 공고 조항을 심평원이 일방적으로 만든 내부 규정으로 봐야하며 현행법에 적합하지 않다고 봤다. 그 이유는 관련 법령인 국토교통부에서 고시한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심사업무처리에 관한 규정에서 찾을 수 있다.
해당 고시 11조와 12조는 의료기관의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청구 업무와 심평원의 심사 업무의 편의와 효율성을 증진하려는 취지에서 통일적인 서식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 전부다. 다만 그 서식에 따른 청구서 작성요령 자체는 서식 사용방법에 관한 해설일 뿐,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율하는 법규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즉 보험회사로부터 자동차보험진료수가의 심사와 조정 업무 등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지위에 있는 심평원에게 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청구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제한하는 법령상 또는 계약상 권한을 부여하는 현행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심평원은 의료기관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없음에도 내부 공고 조항을 이유로 타 의료기관에 진료를 의뢰한 진료의뢰 의료기관만이 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진료실시 의료기관은 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청구할 수 없도록 정해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청구권자를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은 "이 같은 행위는 현행법령의 문언적 의미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일 뿐 아니라 사위 법령이나 업무위탁계약에 근거하지 않은 채 자신의 업무 편의와 효율성을 위해 일방적으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며 "진료실시 의료기관이나 보험회사 등에게는 해당 공고가 구속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전했다.
진료를 직접 실시한 의료기관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진료실시 의료기관은 직접 보험회사 등에게 자동차 보험진료수가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며 "이와 같은 직접 청구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 진료실시 의료기관이 이미 취득한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청구권을 행사할 다른 적절한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