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우리나라 사회는 급속도로 추진된 고령화 사회에 대한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다. 일차의료를 강화하는 정책으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면서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만드는 방향이어야 한다."(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합류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이 향후 인수위에서 추진할 의료정책 개혁 방향을 공개했다. 우 소장은 인수위 사회복지문화 분과 자문위원으로 향후 의료계를 대표해 의료 정책의 길라잡이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의협 이필수 회장도 윤석열 당선인에게 우 소장의 인수위 합류를 적극적으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봉식 소장은 메디게이트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직 임명장도 받기 전에 인수위 합류 소식을 알리게 돼 조심스럽다고 전하는 동시에 잘못된 의료정책에 대해 뚜렷한 소신을 밝혔다.
우 소장은 "인수위에서 혼자 의료계의 판도 자체를 바꾸기는 쉽지 않고 장벽도 많이 있겠지만 향후 5년의 시간이 있으니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인수위 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부터 시작하려고 한다"며 "인수위 내에서 의료계를 대변할 수 있는 역할이 무겁겠지만 감당하겠다"며 입을 뗐다.
준비 없이 맞이한 초고령사회, 대형병원 위주 악순환 계속
그가 핵심으로 꼽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문제는 초고령사회에 대한 대비가 전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이 예견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의료비 증가 문제나 초고령사회에 맞는 감당 가능한 의료체계 개혁이 준비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 소장은 "초고령화에 대비할 수 있는 의료와 돌봄, 법과 제도 모두 미비 상태다. 이에 따른 제도적 문제와 의료비용 쓰나미가 곧 몰려올 것"이라며 "지금 상태로 가면 의료 시스템 자체가 위험하고 지속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우선 초고령사회에 대비하려면 의원급 일차의료기관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우 소장의 견해다. 워낙 40년 넘게 문제가 고착화됐기 때문에 단칼에 해결은 어려워도 차근히 방향을 틀어보겠다는 취지다.
우 소장은 "일차의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초고령사회에서 의료는 버티지 못한다. 그동안 자유방임형으로 아무런 계획 없이 상급종합병원에 환자들이 몰리고 대형병원들은 다시 지역에 분원을 끊임없이 설립하는 구조가 악순환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의료전달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재의 1차부터 3차까지의 피라미드식 대신 매트리스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접근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일차의료 강화 방안에 대해서도 그는 한국 상황에 맞는 일차의료 모델이 제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 소장은 "우리나라 일차의료는 시스템 왜곡이 심하다 보니 현실 적용이 어려워 유럽이나 미국식 주치의제도 도입이 어렵다"며 "전문의원 등 방안은 굉장히 지엽적인 대책이고 한국 상황에 맞는 전반적인 일차의료 모델이 나와줘야 한다. 지금까지는 대학병원 위주 정책이 많았고 일차의료 전반에 대한 정책 청사진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고령화 따른 의료비 증가 문제 심각…9년 만에 39% 상승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의료재정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건의료비는 1970년 2.6%(OECD 평균 4.6%)에서 2000년 3.9%(OECD 7.1%)까지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노인 인구 비율이 2010년 10.8%에서 2019년 15.7%로 증가하면서 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2010년 5.9%에서 8.2%(2019년)로 9년 만에 39%가 증가했다.
그는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노인인구 비율이 10%에서 15%였던 때가 1980년에서 1990년대였다. 그러나 일본은 의료비 증가가 6.4%로 일정하게 유지됐다"며 "노인이 늘어난다고 모두 의료비가 폭증하진 않는다. 고령화에 대한 준비가 돼야 재정 차원에서의 지속가능성도 보장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공공의대 확충 등 기존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 방향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우 소장은 "코로나19 초기에 대구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났을 때 민관 협력 모델을 통해 굉장히 효과적으로 감염병을 진화했다"며 "그러나 이를 두고 현 정부는 무조건 공공의료를 늘려야 한다는 식으로 확증 편향적 사고를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 의료의 강점은 세계적으로 칭찬받은 민관협력 시스템이다. 이후 공공의료로 대응한다고 하다 확진이 늘어나니 다 무너졌다. 공공의료가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가 대응하는 것"이라며 "팬데믹 상황이 어느 정도 종식되면 각 나라의 코로나 대응과 의료체계의 상관성을 연구소 차원에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