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고금리, 고환율, 저성장 등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로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R&D(연구개발) 투자 위축은 물론 영세한 바이오벤처들이 줄도산하는 위기에 처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벤처나 스타트업은 버티는 게 중요하고 캐시카우가 있는 제약사들은 변별력 있는 투자, 정부는 과감한 정책·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원희목 회장은 30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제약주권 확립과 제약강국으로 가야 할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현재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은 2022년 1630조원에서 연평균 6%씩 증가해 오는 2028년 2307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국, 중국, 일본 등은 정부차원에서 제약바이오 육성과 보건안보 강화를 위한 전략을 내놓고 있다.
실제 미국 정부는 2020년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초고속작전에 예산 14조원을 지원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바이오이니셔티브 행정명령, 필수의약품 생산 역량 강화, 의약품 공급망 다변화 등 2조7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도 건강중국2030, 중국제조 2025 등의 정책으로 1800조원의 산업 규모를 달성할 계획이며, 일본은 바이오전략 2030에 따른 컨트롤 타워 설치, 5년간 8조원 투입 등을 시행할 방침이다.
국내 제약바이오도 지난해 세계 3번째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모두 개발했고,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바이오인력 양성 허브로 지정받은 데 이어 국산신약 2개(총 36개) 개발 성공, 파이프라인 1883개 구축, 의약품 수출 10조7300억원, 기술수출 6조원 등 많은 성과를 기록했다.
수년간 외친 '컨트롤타워' 성과 못보고 퇴임 앞둔 원 회장 "정부 '제약바이오 육성' 약속 꼭 실천해야"
원 회장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의약품은 27개, 유럽 EMA는 22개에 달하는 등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성과가 이어졌으나, 아직까지 제약 주권의 핵심 지표인 자급률은 완제약의 경우 2011년 80%에서 2021년 60%로 급감했고, 원료의약품은 24%에 불과하다"면서 "국내 시장 점유율도 다국적 제약사가 매우 높은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다양한 요인이 있으나 정부의 제약바이오 투자와 지원 미흡에 있다. 실제 정부 제약바이오 지원 금액은 미국의 12분의 1에 불과하고, R&D 예산 1조8000억원 중 기업 지원은 14.6%에 그쳤다"면서 "특히 최근 2년간 코로나 백신, 치료제는 4127억원이었다"고 밝혔다.
원 회장은 "국산 혁신신약을 토대로한 K-브랜드 위상을 확보하고, 제약 주권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가장 먼저 '제약바이오산업을 국가 핵심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바이오헬스 글로벌 중심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약속대로 정부가 제약주권 확립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컨트롤타워'를 조속히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현 정부가 들어설 당시에 제약을 미래성장동력으로 선언했음에도 아직까지 이를 체감할 정책·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으며 보건당국과 건강보험공단 등 산하기관에서는 약가를 깎는 데만 혈안이라는 지적을 이어갔다.
조속히 제약바이오정책을 총괄하고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국무총리직속의 '컨트롤타워'인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를 설치하고, 바이오펀드 규모를 1조원대로 운용해 제약사들이 최종임상까지 완료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것을 강조했다.
"영업이익 나와야 R&D 재투자하는데, 약가만 깎는 건보공단…제약주권 지킬 약가 책정 필수"
R&D에 대한 투자 확대와 함께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창출을 위한 보험의약품 가격제도 개선도 제안했다.
원 회장은 "현재 정부의 R&D 예산 중 기업 지원은 15%에 불과하다.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개발 후기 단계(임상 2, 3상)에 대해 정부 R&D 투자를 확대해 상용화 가능성을 제고해야 한다"면서 "R&D 투자비를 회수하기 힘든 낮은 보상체계로 인해 신약개발 동기부여가 없는 만큼, 국내 등재 신약 가격을 글로벌 신약의 70~120%로 책정하고 신약가격 결정시 기준이 되는 대체약제는 특허 중인 신약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기업들은 영업이익률이 평균 6~7% 정도로 R&D에는 10% 정도 투자하는데, 적절치 않은 약가제도로 인해 R&D 투자 규모를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R&D 투자와 제약산업 육성, 제약주권 확립이라는 선순환을 위해서 반드시 국내 상황에 맞는 적정 약가 책정이 필수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블록버스터와 글로벌 빅파마 탄생 등 제약강국이 되는 것은 원료약, 백신 등의 낮은 자급률에서는 모래 위 성을 짓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며 "의약품 자급률을 제고할 수 있도록 국산 원료를 사용한 완제의약품에 대해 약가 우대와 세제 지원을 확대하고, 해외 전량 의존 원료를 국산으로 대체시 약가 차등제를 예외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불합리한 규제혁신도 조속히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중복적 약가 사후관리제도를 단순화하고 분산형 임상시험 제도를 확대하는 한편, 민간 주도의 협의체를 통한 허가심사와 제품화 관련 규제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이외에도 국산 의약품 품질을 제고하기 위해 스마트 공장 등 생산시설 고도화와 QbD 도입, 의약품 전주기 관리, 제조소 리스크 관리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어렵지만 바이오회사들 도산하지 말고 버텨라"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제도 개선, 자금 지원과 함께 제약바이오기업에도 당부의 메세지를 전했다.
원 회장은 "현재 고금리, 고환율, 저성장 등의 3재 악재로 글로벌 바이오 투자심리가 위축돼 있다. M&A는 2022년 기준 전년대비 절반 수준이고 자금 조달은 80%가 감소했다. 체감은 거의 100% 감소한 상황"이라면서 "위기감이 고조되자 IPO를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파이프라인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원 회장은 "어렵지만 일단 바이오벤처와 스타트업들은 버텨야 한다. 다시 펀드를 받을 수 있고 연구과제에 대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캐시카우로 매출이 나오는 기존 제약사들은 이 같은 경제 위기를 변별력 있는 투자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가능성이 높고 가치 높은 아이템과 프로젝트에 전략적으로 투자를 활성화할 때"라고 조언했다.
협회의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금이 필요한 곳과 줄 수 있는 곳, 정부와의 펀드 연결 등 상호 활발한 정보 교환을 통해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다.
원 회장은 내달 회장직을 물러나기에 앞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미 롤베돈, 대웅 나보타 등 미국시장에서의 국산신약 성과가 나오고 있고 유한 레이저티닙도 해외시장 진입을 앞두고 있다"며 "제약사들이 위기에 위축되지 말고 많은 바이오기업들과의 접촉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데 집중해보자"고 회원사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