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고려대의료원이 2일 수도권 두 곳에 새병원을 건립하겠다고 밝히면서 의료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형병원들의 잇따른 수도권 내 분원 건립 추진으로 가뜩이나 위기에 몰린 의료체계의 붕괴가 가속화될 것이란 지적이다.
고대의료원은 이날 경기도 과천시와 남양주시에 ‘세상에 없던 미래병원’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초기 단계부터 지자체와 공동협의체 구성을 통해 도시개발계획 및 인프라, 관련 규제, 파급효과 등을 논의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의료원은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병원을 건립하겠단 청사진을 공개했다. 과천시에는 경기 남부권과 서울 강남권을 아우르는 위치 특성에 따라 고대의료원이 보유한 핵심 진료, 연구, 교육 기능을 집약시키고, 남양주시에는 지역 내 높은 의료수요 및 주변 인프라, 개발 가능한 여건 등을 기반으로 ‘메디컬 콤플렉스’를 만드는 식이다.
당초 고대의료원은 제4병원 건립지를 놓고 과천시와 남양주 왕숙지구를 저울질 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두 곳 모두에 병원을 건립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고대의료원 관계자는 “과천시와 남양주 중 어느 한 곳을 새병원 건립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 곳 모두에 병원을 짓는 것을 전제로 논의를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 '줄줄이'...지난해 최대치 '환자쏠림' 가속화 우려
고대의료원 외에도 대학병원들의 수도권 분원 설립은 줄줄이 예정돼있다. 현재 건립을 추진 중인 곳만 해도 인천 청라 아산병원(800병상), 송도 세브란스병원(800병상), 경기도 시흥 배곧서울대병원(800병상), 김포 인하대병원(700병상), 평택 아주대병원(500병상), 서울 위례 가천대길병원(1000병상) 등 최소 4600병상에 달한다.
여기에 대학병원 분원은 아니지만 서울 금천구에도 부영그룹이 81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2026년 완공 목표로 건립하고 있다. 한양대병원 역시 경기도 안산에 분원을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년 내에 수도권에서 최소 5000개 이상의 병상이 새로 생길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문제는 대학병원들의 수도권 분원 건립 행렬이 그렇잖아도 심각한 수도권으로의 환자쏠림을 심화시키고, 종국엔 지방 의료와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환자들의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추세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이 지난 9월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수도권 소재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한 지방 환자는 총 93만555명으로 전년도 83만5851명에 비해 11.3%나 늘었다. 이는 지난 2019년 92만306명을 넘어선 사상 최대치다.
이에 2021년 지방 환자가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 납부한 총 진료비도 2조7060억원으로 전년도 진료비 총액 2조4230억원 대비 11.8% 늘며 역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의협∙중소병원협회, 대학병원 행태 비판..."병상총량제 도입해야"
의료계는 대학병원들의 광폭 행보에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병상총량제' 등을 통해 무분별한 분원 건립에 제동을 걸어야 한단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대한의사협회 박수현 대변인은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건립은 환자 쏠림을 심화시킬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선 가령 실력이 뛰어난 흉부외과 교수가 지방으로 가더라도 환자가 없어 실력이 녹슬 수 밖에 없다”며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격차가 더 커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나마 지방에서 근무할 의료진들마저 수도권에 자리가 나면서 지방을 기피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중소병원협회 이성규 회장 역시 “대형병원들은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면서도 분원을 계속 늘리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그로 인해 중소병원의 인력난이 심해지고 자원에 대한 불필요한 중복 투자 등으로 지속가능성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전달체계 역시 대학병원들 위주로 재편됐을 때 큰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늦은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병상총량제 등을 통해 분원 건립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