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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의 감옥에 갇힌 의학: '의료사고' 프레임을 해체하라

    [칼럼] 김화랑 이학박사

    기사입력시간 2026-08-06 13:09
    최종업데이트 2026-08-06 13:09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언어라는 집, 그리고 인식의 감옥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1947년 발표한 논문 「휴머니즘에 관하여(Brief über den Humanismus)」에서 제시한 명제다. 근대 형이상학이 언어를 단순히 인간의 생각이나 외계의 사물을 전달하는 도구로 취급한 것과 달리, 하이데거는 인간이 언어라는 구조물 안에서만 세계를 인식하고 실재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이 언어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구축해 놓은 언어의 지평이 인간의 사유와 존재 방식을 규정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회가 특정 사태를 지칭하기 위해 선택한 단어는 그 사회의 법적 처리 방식과 정서 반응, 나아가 제도 형태를 결정짓는다. 오염되거나 정교하지 못한 언어가 공론장에 매립될 때, 대중은 현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언어가 만든 인식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명제는 보건사회학과 의료법학의 영역에서도 유효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거세게 흔드는 필수의료의 해체와 의료 분쟁의 사법화 역시 이러한 언어 왜곡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사용하는 '의료사고'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잘못 설정된 언어 프레임이 어떻게 실재를 왜곡하고 사회혼란을 양산하고 있는지, 그 기원을 해부할 필요가 있다.

    'Medical Accident'라는 비표준 용어의 출처

    국제 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나 미국 의학한림원(National Academy of Medicine; NAM) 등 글로벌 환자안전학 및 보건행정학 규범에서 'Medical Accident'라는 표현은 공식 학술용어로 사용되지 않는다. 전문적인 가이드라인과 논문에서 이 용어는 사실상 배제되어 있다. 국제 학술계가 이 표현을 기피하는 이유는, 'Accident'라는 단어가 가진 모호성 때문이다.

    이 단어는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운 나쁜 불상사'라는 인상을 주어 시스템적 개선의 의지를 약화시키거나, 반대로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 여부와 상관없이 발생한 모든 악결과(Bad Outcome)를 하나의 둔탁한 범주로 묶어버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에 따라 환자안전 국제분류체계(International Classification for Patient Safety; ICPS)는 책임의 소재와 원인의 성격을 정교하게 구별하는 세분화된 표준 용어들을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왜 '의료사고'라는 명칭을 전면에 내세우게 됐을까. 이는 근대 사법체계 이식 과정에서 일본의 법률용어인 '의료사고(医療事故)'를 비판 없이 수용한 역사적 맥락에 기인한다. 특히 한국의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에서 '의료사고'를 "의료행위로 인하여 환자에게 발생한 상해·사망·장해 등의 결과"로 정의함으로써, 과실 유무와 무관한 포괄적·결과론적 용어가 법률용어로 자리잡았다. 원인과 책임을 가리는 학술적 개념이 들어설 자리에, 결과만을 따지는 정서적 언어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개념 구분: Error·Negligence·Malpractice

    의학적 개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행위의 성격과 법적 책임을 기준으로 개념을 엄격히 획정해야 한다. 보건의료학 및 법학에서 정립된 개념은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구별된다.

    첫째, 의료오류(Medical Error)는, 계획된 의료 행위가 의도대로 실행되지 않았거나, 목적 달성을 위해 잘못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 '행위 자체의 착오'를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용량 계산 실수나 처방전 입력 오류 등을 포함하며, 실제로 환자에게 손상(Harm)이 발생했는지 여부와는 독립된 개념이다.

    둘째, 의료과실(Medical Negligence)은, 해당 임상현장에서 동종 분야의 평균적인 전문의가 기울여야 할 '주의기준(Standard of Care)'을 다하지 않은 법적·윤리적 위반 행위다. 의학지식 미비·주의 산만·절차 생략 등이 이에 해당하며, 이는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의 성립을 위한 핵심 요건이 된다.

    셋째, 의료과오(Medical Malpractice)는, 주의의무 위반, 즉 과실(Negligence)이 직접 원인이 되어 환자에게 신체적·정신적 손상이나 사망이라는 실질적 피해(Harm)가 발생하고, 그 인과관계가 법적으로 입증된 상태를 뜻한다.

    이 세 개념은 엄연히 다른 층위를 갖는다. 모든 오류(Error)가 과실(Negligence)이 되는 것은 아니며,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환자의 악결과와 직접적 인과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과오(Malpractice)로 성립하지 않는다.

    과실 없는 악결과: 부작용·합병증·특이반응·위해사건

    문제는 의료진이 최신의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주의기준을 100% 준수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 심각한 손상이나 사망이라는 악결과가 발생하는 경우다. 인간의 신체는 공장에서 규격화되어 생산되는 공산품이 아니며, 인체의 생리학적 반응에는 통계적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다.

    과실 없는 악결과는 현상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별된다.

    – 부작용 (Side Effect): 약물을 투여하거나 치료를 시행할 때, 원래 목적한 주된 치료 효과 외에 '구조적으로 덤으로 따라오는 알려진 생리 반응'이다. 감기약을 복용했을 때 졸음이 오거나, 암 치료를 위해 항암제를 투여할 때 탈모가 일어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는 의학적으로 사전에 예견되어 있으며, 치료의 이점이 위험보다 클 때 감수하고 진행하는 정상적 과정이다.

    – 합병증 (Complication): 질병 자체의 경과나 침습적인 수술·시술 과정에서 '통계적으로 일정 비율 반드시 발생하는 차순위 질환이나 이상 상태'다. 아무리 오염을 차단하고 완벽하게 암 수술을 마쳤다 하더라도, 환자의 면역력 감소나 미세 혈관 상태에 따라 수술 부위 감염이나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침습 행위가 갖는 본질적 위험이다.

    – 특이체질 및 특이반응 (Idiosyncratic Reaction): 표준 용량의 약물을 투여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음에도, '환자 개인의 독특한 유전적·면역학적 특성으로 인해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반응'이다. 평생 알레르기 질환이 없던 환자가 정상적인 항생제 주사를 맞은 뒤 순식간에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사망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현재의 의학 수준이나 사전 검사로는 예측 및 회피가 불가능하다.

    – 비예방가능 위해사건 (Non-preventable Adverse Event·Incident): 환자의 원인 질환이 아닌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유해한 결과 중, 현재의 의학 기술 수준과 임상 지침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던 손해'를 포괄하는 환자안전학상의 상위 개념이다. 앞서 언급한 부작용·합병증·특이반응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형법학에서는 이를 '허용된 위험'으로 설명한다. 신체를 절개하고 약물을 투여하는 의료행위는 본래 상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할 수 있는 침습성을 띤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생명 연장과 치료라는 목적을 위해, 법 질서는 의료행위에 내재된 위험을 사전에 허용한다. 즉, 과실 없이 발생한 합병증과 특이반응은 형사상 범죄가 성립하지 않아야 하며, 의료진의 민사상 책임 역시 면제되는 영역이어야만 한다.

    한국 사회의 인식론적 병리: 'Accident = Malpractice'와 사법의 남용

    그러나 한국 사회의 언어 지형에서 이러한 정교한 구별은 완전히 휘발된다. 한국인의 대중적·사법적 세계관 안에서 '의료사고(Accident)는 곧 의료과오(Malpractice)로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악결과가 발생하면, 과정상의 과실 유무를 불문하고 '의사가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법적·정서적 규탄이 즉각 작동한다.

    이런 인식론적 병리는 압도적인 사법 통계로 입증된다. 한국에서 의료진을 상대로 제기되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 형사고소 및 기소 건수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기형적으로 높다. 일본·독일·영국 등 법치주의 국가들과 비교하더라도 한국 의사가 형사고소를 당하는 비율은 수십 배에서 수백 배에 달한다. 해외 선진국에서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은 음주수술 과실·성범죄·의도적 위해(Intentional Harm) 등 중대한 범죄행위에 국한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불가항력적 합병증이나 특이반응으로 인한 사망 사건까지 형사기소의 대상이 된다.

    이는 현대 환자안전학의 대전환을 이끈 미국 의학연구소(Institute of Medicine; IOM, 의학한림원의 전신)의 1999년 보고서 「To Err is Human(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의 핵심 경고와 전면 배치된다. 이 보고서는 의료오류와 악결과를 개인이 처벌받아야 할 '죄'로 접근할 경우, 의료진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오류와 부작용을 은폐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렇기에, 원인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시스템 구축(System-based approach)은 오직 비처벌적 보고 문화(No-blame Culture)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과실 없는 'Accident'까지 'Malpractice'로 응징하는 사법 프레임에 갇혀, 시스템 개선의 기회 자체를 스스로 박탈하고 있다.

    일본 법제의 정교화와 한국과의 결정적 격차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에 '의료사고'라는 법적 명칭을 이식해 준 원류인 일본은 과연 이 개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은 실무적·법적 개혁을 통해 이미 이 모호한 프레임을 파기했다.

    일본 역시 과거에는 과실 유무와 상관없이 의료행위 중 발생한 모든 인적 불상사를 '의료사고'로 뭉뚱그려 지칭하는 행정 관행을 유지했으나, 이로 인한 사법화의 폐해를 인지하고 2014년 '의료법(医療法)'을 대대적으로 개정했다. 2015년부터 시행된 일본 의료법 제6조의10은 법적 '의료사고'의 범위를 '제공한 의료에 기인한 환자의 사망 또는 사산 중, 의료를 제공하기 전 사망·사산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엄격히 한정했다.

    2015년 10월부터 시행된 일본의 '의료사고 조사제도(医療事故調査制度)'에서 반드시 보고하고 조사해야 하는 '의료사고'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 사망 또는 사산: 상해나 부상은 제외되며, 오직 환자가 사망하거나 사산한 경우만 해당한다.
    – 의료 기인성: 해당 의료기관이 제공한 의료 행위(치료·검사·투약 등)에 기인하거나 기인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망 또는 사산한 경우에만 해당한다.
    – 예견 불가능성: 의료를 제공하기 전에 담당 의사나 의료진이 환자의 사망 또는 사산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야 한다.

    일본 법제의 핵심은 '사전 예견성'을 통해 불가항력적 악결과를 법적 의료사고의 정의에서 원천 배제했다는 점이다. 수술 전 환자에게 통계적 사망 위험이나 합병증 가능성을 미리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 상태에서 실제로 그 합병증이 발생해 환자가 사망한 경우, 일본 법제상 이는 더 이상 '의료사고'로 성립하지 않는다. 당연히 국가적 의료사고 조사나 형사처벌 단계로 넘어가지도 않는다.

    반면 한국은 1980년대 일본의 과거 행정 지침에 불과했던 포괄적 개념을 2012년 '의료분쟁조정법'에 법률로 고착화시킨 뒤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한국 사회와 법률은 여전히 상해·장애·사망 등 모든 악결과를, 환자와 환자 보호자의 '기분 나쁜 결과'로 받아들여, '의료사고'라는 하나의 거대한 가마솥에 쓸어 담는다. 단어의 출처였던 일본은 이미 10년 전 법을 개정하여 알려진 합병증 등을 사고의 범주에서 분리해 냈는데, 한국은 일본이 버린 옛 언어의 껍데기에 갇혀 불가항력적 불운마저 의사의 형사범죄로 환원시키는 원시적 사법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이론: 방어진료와 필수의료의 해체

    불가항력적 악결과마저 형사처벌과 거대한 손해배상 위험으로 귀결되는 사회 구조는 의료진의 행동 양식을 비틀어놓는다. 게임이론 관점에서, 기대 손실이 무한대에 가까운 환경에 놓인 행위자, 즉 의사의 합리적 선택은 '위험에 대한 완전 배제'다.

    첫째, 의학적 필요를 초과하는 불필요한 검사와 투약을 중첩하는 '과잉 방어진료'가 일상화된다. 이는 국가 전체의 건강보험 재정을 고갈시키고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킨다.

    둘째, 보다 치명적인 귀결은 '고위험 필수의료 인프라 해체'다. 뇌혈관외과·중증외과·심장혈관외과·응급의학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아무리 최선의 진료를 다해도 합병증과 사망이라는 악결과가 높은 확률로 발생하는 분야다. 

    합병증을 '과오'로 단죄하는 사회에서 이들 과목을 전공하는 것은 개인의 인생을 버리는 불합리한 도박이다. 이미 젊은 의사는 고위험 필수의료를 이탈하여, 악결과로 인한 사법적 리스크가 거의 없는 성형·피부·미용 등 비급여 영역으로 대거 이동한다. '의료사고'라는 모호한 단어로 의사를 처벌하려 했던 징벌 프레임이, 역설적으로 국민 자신의 생명을 지켜줄 의료 안전망을 스스로 파괴하는 비극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의료사고'라는 단어의 폐기와 프레임의 재구성

    언어가 인식을 규정하고, 인식 구조가 사회적 제도를 결정한다는 하이데거의 지적은 옳았다. 우리가 '의료사고'라는 모호하고 결과론적인 단어에 갇혀 있는 한, 필수의료의 해체와 무모한 사법적 소모전을 끊어낼 방법은 없다. 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이 단어를 제도권과 공론장에서 전면 폐기하는 해체 작업에서 시작돼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체 정착시켜야 할 언어 체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과실 여부 미정의 모든 유해한 사태는 '의료사고' 대신 '의료 위해사건(Medical Adverse Event)'으로 중립적으로 명명해야 한다. 

    둘째,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발생한 확률적 악결과는 '불가항력적 합병증(Unavoidable Complication)' 또는 '불가항력적 부작용(Unavoidable Side Effect)'으로 분명히 규정하여, 과오의 영역에서 엄격히 분리해야 한다.

    셋째, 현재 법률용어로써 사용되고 있는 '의료사고'를 폐기하고, 주의기준 위반이라 입증된 피해에 한해서만 '의료과오(Medical Malpractice)'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언어를 바로잡는 일은 단순히 용어를 정비하는 작업이 아니다. 의료의 불확실성을 과학적으로 인정하고, 의사 개인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우는 야만에서 벗어나, '객관적 원인 규명 시스템'으로 이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잘못된 언어의 집을 허물고 정교한 개념을 다시 세울 때, 비로소 의학은 본래의 자리를 찾고 국민의 생명권 또한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