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업계가 1등급 의료기기에서 전기안전법과 의료기기 허가 절차에서 안전성을 확인하는 것이 이중규제라는 불만이 나왔다. 또한 CT, MRI 등의 장비에 이상이 없는데도 이상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일부 특수의료장비 품질관리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최근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통해 지난 11일 협회 대회의실에서 국무조정실과 ‘규제개선 현장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는 정부가 올해 하반기 ‘신산업 현장애로 규제혁신’ 4차 회의 핵심테마 중 하나로 ‘의료기기’를 지정함에 따라 진행됐다.
간담회에는 의료기기산업협회 이경국 회장, 이선교 전문위원, 나흥복 전무, 국조실 남형기 규제혁신기획관, 류동희 팀장, 박광훈 사무관을 비롯해 의료기기업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산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메드트로닉코리아, 올림푸스한국 등 8개사에서 참여해 각종 규제에 대한 애로점을 밝혔다.
의료기기업계는 먼저 ‘1등급 의료기기, ‘전기생활용품안전법(전안법)’ 적용대상서 제외’를 요청했다. 전안법은 공산품과 생활용품의 특정 품목을 판매하려면 안전기준을 지켰는지 검증하는 공급자적합성확인 서류(KC 인증서)를 받아 비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전안법이 의료기기 등급별 특성을 반영하지 않아 중복규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협회 임민혁 대변인은 “의료기기협회는 의료기기법에 따른 의료기기 품목은 등급에 따라 허가, 인증, 신고로 구분해 관리한다. 전안법에서 ‘허가’ 대상 의료기기만 전안법에 따른 안전인증 등의 면제 대상으로 규정하고 ‘인증 및 신고’ 대상 제품에 대해서는 따로 명시하는 부분이 없어 산업계에 혼선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한 업체 관계자는 “1등급 의료기기는 의료기기법 시행규칙 등에 의해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한 제품이지만 전안법 면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이중규제가 되고 불합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기법이든 전안법이든 전기제품이면 전기안전을 확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의료기기는 의료기기법으로 안전성 확인을 일원화하거나, 전안법 조항을 수정·보완해 이중적 규제요인을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CT, MRI 등 급여화에 따른 ‘특수의료장비 관리기준 개선’ 역시 긴급하게 검토될 사안으로 지적됐다. 이 안건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지난 1월 10일 고시되고 다음달 11일 본격 시행되는 ‘특수의료장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 개정안에 따른 것이다. 개정안은 노후화된 의료장비가 의료현장에서 사용되지 않도록 품질검사기준을 정비하는 등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보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부적으로 CT, MRI의 촬영 단층면 간격기준이 두부의 경우 MRI의 절편(section) 간격 기준이 2.5 mm 이하에서 2.0 mm 이하로 촘촘해진다. 장비의 성능 사양에 관한 기준을 신설해 영상해상도 및 검사 속도 등을 검사과정에 반영했다. MRI는 영상해상도에 영향을 미치는 테슬라 지표를 넣었고, CT는 검사 속도 향상에 영향을 미치는 촬영 채널수 지표를 신설했다.
임 대변인은 “개정된 규정이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건의가 많다. 제품의 영상품질과 성능에 문제가 없음에도 장비의 개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등의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최신의 제품이라도 품질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임 대변인은 “병원에서 업계로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검사를 하지 못하거나 이상이 발생해도 해당 제품을 사용할 수 없다. 애꿎은 화살이 전부 의료기기업계로 향하고 있다”라며 “특수의료장비 관리기준을 명확히 하고 제품에 이상이 없는데도 이상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이밖에 산업계는 임상의무화 확대 제도와 체외진단 분야 신의료기술 선진입-후평가 등에 대한 산업계 우려도 전했다. ‘임상의무화 확대’는 지난달 29일까지 식약처가 행정예고한 ‘의료기기 허가·신고·심사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고시안에 관한 것이다. 식약처는 본질적 동등성 인정제도 개선을 목적으로 기술문서 검토 대상 품목을 지정·공고해 의료기기 허가 시 임상자료의 제출 대상 및 그 범위를 명확하게 정하고, 임상자료 제출 대상의 경우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산업계는 △심사인력 부족 등으로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KGMP) 심사 지연 △독점화로 인한 사회적 부담 증가 △국제조화 측면에서 허가심사체계 역행 △의료기기 임상시험의 어려움 및 비용 부담 △산업 경쟁력 약화 등을 우려, 사전·사후관리의 균형을 통해 전주기 안전관리체계를 기반으로 안전성을 강화하는 등의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안건 내용을 이해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들은 논의한 안건들을 관계부처와 검토한 후,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 심의 안건으로 올리기로 했다. 규제개선 안건이 수렴되면 업계, 민간전문가, 관계부처가 모여 심층토론을 하게 된다.
이경국 협회장은 간담회에서 ”산업계를 대표해 규제와 산업 진흥의 균형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에서 조금 더 헤아리고 판단해 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남형기 규제개혁기획관은 ”신 의료기기가 등장하는 가운데 기존 법과 제도가 신산업에 저해되는 게 없는지 업계 의견을 청취하고 검토해서 애로가 해소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신설규제 심사를 담당하는 곳에 관련 내용을 넘겨 세심하게 살피고, 필요하면 산업계 의견을 다시 한번 개진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정부는 규제개혁 추진방향에 따라 신산업 현장의 규제애로 사항을 발굴하고,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를 운영해 규제 해소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지금까지 총 225건의 규제애로 사항을 검토했으며 207건을 해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