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규제 혁신을 발표한 '첨단·혁신의료기기'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첨단·혁신의료기기의 원활한 해외 진출을 위해 시장 진입 전에 일부 제품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예비분류’ 코드로 넣는다면 수출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와 학계, 산업계 등은 이같은 내용으로 7일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과 관련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는 지난 7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해당 내용에 맞춰 정부가 학계와 산업계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마련됐다. 이날 회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관계자로부터 회의록을 전달받았다.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안전성 우려가 적은 의료기술(의료기기)은 선(先) 진입 후(後) 평가 방식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대폭 혁신한다고 밝혔다. 특히 체외진단검사 분야의 신의료기술평가를 사전평가에서 사후평가로 전환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다음 즉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험급여 등재과정에 진입한다. 이에 따라 기존에 390일 걸리던 체외진단 기기 인허가가 80일로 단축된다.
인공지능(AI), 3D 프린팅, 로봇 등을 활용한 미래유망 혁신·첨단의료기술은 최소한의 안전성을 검증해 우선적으로 시장진입을 허용한다. 그 다음 임상현장에서 3~5년간 사용해 축적된 풍부한 임상 근거를 바탕으로 재평가를 한다. 의료기기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통합심사 전담팀’을 구성한다. 식약처는 의료기기 허가 단계에서 혁신·첨단의료기기가 개발과 동시에 신속하게 허가하는 ‘신속 허가 가이드라인’을 구축한다. 심평원은 ‘의료진의 편의 및 생산성’을 증진시키는 의료기술에 대해 예비분류 코드를 발급한다.
복지부는 연구결과 축적이 어려운 혁신·첨단 의료기술에 대해 문헌 근거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혁신·첨단 의료기술의 잠재가치를 고려한다. 이를 통해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별도 평가트랙을 운용한다. 심평원은 기술혁신·개량 치료재료에 대한 가치평가 제도 개선으로 적정 보상체계를 마련한다. 환자 안전에 기여하고 기술혁신 평가를 인증했다고 판단하면 기술혁신 가치를 상향 조정한다. 심평원은 유망기술과 근거개발 장려가 필요하면 기술 개발 노력에 대한 가산제도를 신설한다.
이날 회의록에 따르면, 복지부는 아직 의료진의 편의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제품에 대한 ’예비분류 코드‘ 부여가 산업계의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될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밝혔다. 예비분류 코드는 보험수가를 별도 받지는 못하지만, 해외시장에서 국내 보험 등재 여부를 확인할 때 활용하는 일종의 가상 코드를 말한다.
이에 대해 의료기기 기업은 ’예비분류 코드‘가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수출용허가증을 활용한 해외진출은 수출국의 국내판매 실적 요구에 따라 크게 효용성이 없다. 국내 제조업체가 수출국에서 판매가능한 가격협상의 수단이 되려면 ’예비분류 코드‘에 더해 적정 수가책정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현재 ’예비분류 코드‘부여의 개념은 별도의 행위코드가 없는 첨단기술에 대한 분류를 목적으로 한다. 별도의 가치 부여는 아직 미정”이라며 “8월 중순 심평원의 계획안을 함께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혁신·첨단의료기기의 명확한 개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복지부는 “혁신·첨단의료기기의 범주는 정해진 것이 없다"라며 "복지부는 일단 의료진의 편의와 생산성을 증진시키는 제품에서 '혁신의료기기'로 칭하고 혁신의 범위에 첨단, 융복합, 사회적가치 증대 등을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기기산업협회는 “일부 의료기기만 신의료기술평가 없이 시장진입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첨단·혁신의료기기에 대한 전체적인 개념 확대가 필요하다"라며 "로봇, 3D프린팅, AI 등 기술 적용 첨단의료기기에 대한 가치인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학계는 "혁신·첨단의료기술을 정의하려면 예시된 인공지능(AI) 외의 다양한 범위를 전체적으로 살펴봐달라"고 요청했다.
복지부는 혁신·첨단의료기기의 정의에 대해 식약처의 인허가단계 부터 지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는 “산업계가 이해하는 혁신·첨단 의료기기의 개념은 합의된 기준에 따라 지정돼야 한다. 해당 의료기기에 대한 급여, 비급여 등 적용에 대해서는 확정된 사항이 없다”고 했다.
체외진단 분야 허가 기간을 390일에서 80일로 단축할 방침에 대해 의료기기산업협회는 “요양급여 대상 여부 확인과 보험급여 등재 이후의 절차를 생략한 기간인 허가만에 소요되는 기간으로 발표됐다”라며 “보험급여 등재 후 시장진입이 가능한지, 시장진입과 함께 보험등재가 동시에 검토되는 것인지, 검토 기간 동안 비급여 적용하는 것인지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발표 내용은 최대한 조기진출이 가능한 일정으로 표기됐다. 체외진단 분야는 대부분 기존기술로 판단한 다음 식약처 통합심사 등을 활용해 식약처 허가절차가 끝나면 곧바로 시장진입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감염병 관련 체외진단 의료기기 조기진입 사례 등을 전체 분야로 확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다만 새로운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현재와 같이 신의료기술평가가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이밖에 학계는 의사·병원의 의료기기 연구와 사업화 역량 강화를 위해 학계는 복지부, 식약처, 심평원 등이 갖고 있는 규제절차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전문가 육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건의가 나왔다. 또한 정부기관 간의 서로의 규제의 틀을 비하하지 않고 소통해 시너지효과를 기대한다고 했다.
의료기기협회는 “체외진단분야 사후평가나 혁신·첨단의료기술 재평가 방침은 내용이 중복되고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라며 “별도로 명확한 구분이 가능하도록 추가 의견을 제시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은 “혁신·첨단의료기기, 혁신형기업 인증 등에 국내 제조시설이 있을 때로 한정한 포함돼야 한다”라며 “규제완화가 의료기기 수입 제품의 무분별한 공급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건의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 식약처, 심평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등 관계 부처는 세부 추진과제 마련을 위해 고심 중”이라며 “산업계, 학계 등과의 꾸준한 소통을 통해 세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