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의료계가 의사 3인 실형과 법정 구속 판결 사건에 분노했다. 그리고 또 다시 거리로 뛰쳐나왔다.
대한의사협회는 11일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대한민국 의료 바로세우기 제3차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12월 10일 문재인 케어와 한방 의료기기 사용 저지를 위한 1차 총궐기대회, 올해 5월 20일 문재인 케어 저지와 중환자 생명권 보호를 위한 2차 총궐기대회에 이어 3번째다.
이날 참석한 1만2000여명의 의사들은 부당한 의사 구속 판결을 넘어 불합리한 의료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한 목소리를 냈다. 의료계 대표자들은 고의가 아닌 의료행위에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의료분쟁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긴급 의료계 회의를 거쳐 '총파업' 필요성에 대한 동의를 얻었다고 밝혔다.
앞서 10월 2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가정의학과 전공의 등 의사 3명을 상대로 8세 어린이 환자의 X-레이상 이상 소견을 발견하지 못해 횡격막 탈장을 오진하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의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했고 곧바로 이들을 법정 구속했다. 의사 3명은 10월 29일 유족측과 합의해 형사 합의서를 제출한 데 이어 11월 9일 보석 허가 결정을 받았다. 이번 사건의 항소심은 16일 열린다.
"의사는 예비 범죄자가 아니다"…부당한 구속 판결 한 목소리
의협 대의원회 이철호 의장은 “의사가 전지전능한 신인가. 희귀한 증례라면 어느 의사도 쉽게 진단하고 치료하기 힘들다”라며 “이를 예상하지 못하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고 의사를 구속한다면 진료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의사들에게)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발생해선 안 된다. 이를 위해 국민들이 앞장서서 도와줘야 한다. 안전한 의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힘을 보태줘야 한다”라고 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 박홍준 회장은 “(법원은)의사들을 법정구속도 모자라 공동정범으로 보고 단체구속을 시켰다. 의사들이 범죄를 공모라도 했는가”라며 “이제는 기피를 넘어서 몰락하고 있는 외과계에 더해 의료 황폐화가 선고됐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심평의학에 이어 심판의학까지 진료현장을 옥죄고 있다”라며 “이 결과는 의사들의 진료현장 뿐 아니라 사회 전반, 국민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다. 개원의, 봉직의, 전공의 등이 모두 하나가 돼서 자율적인 진료환경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진단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구속이 된다면 어떤 의사가 진료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라며 “오히려 의료를 왜곡시키고 의사와 환자와의 갈등을 유발할 것이다. 의사들은 교도소에 가지 않기 위해 무조건 방어 진료를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대한민국은 의사를 더 이상 적대적인 감정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라며 “환자를 위해 필요한 필수 인력인 수술할 의사, 분만할 의사, 중환자실에서 근무할 의사들이 사라지고 있다. 국민 여러분이 이런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로 잡아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라고 했다.
경기도의사회 이동욱 회장은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적 대책은 의사에 대한 가혹한 처벌로 해결할 수 없다. 원인 분석과 재발방지를 위한 저수가, 노동착취 구조의 의료 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이번 사건에서 먼저 진행된 민사 판결에 따라 이미 피해보상이 이뤄졌다. 3명 의사 모두 초범인데 판사는 도대체 무슨 양형 기준으로 이렇게 형사처벌까지 가혹한 판결을 했는가”라며 “민사적 과실과 형사적 과실 판단은 분명 다른 것이고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들에 대한 반복적인 인신 구속 사태의 재발을 막아야 하고,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속 사건에 밀접했던 전공의와 관련 학회 적극 동참
전공의들은 이번 판결 사건이 수련 환경에 큰 짐으로 다가온다고 강조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이승우 회장은 “전문의가 되는 수련과정은 슬픔에 빠져 있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라며 “지금도 계속해서 밀려오는 중환자와 응급환자 최전선에는 전공의들이 밤을 지새우며 버티고 있다”라고 했다.
이 회장은 “100명이 넘는 환자를 한 명의 전공의가 담당하고 있다”라며 “환자 안전보다 외래환자 수, 입원환자 수, 수술 건수 등만 내세우는 부끄러운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 전공의는 항상 희생양이었다“라고 토로했다.
이 회장은 “언제 감옥에 끌려갈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지금 이 순간도, 홀로 버티고 있는 전공의들은 그저 환자 곁을 지켜내고 싶은 한 사람의 의사다”라며 “전공의가 안전하게 수련 받고 환자 안전이 지켜질 수 있는 안전한 의료 환경을 원한다”라며 “국민 곁에서 더 단단하게 생명을 지켜낼 수 있도록 간절한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밝혔다.
대한가정의학회 이덕철 이사장은 “고의성이 없는 진료 과정의 결과에 형사적인 책임을 물어 의료인을 죄인으로 구속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수련과정에 있어 아직 미숙한 전공의 입장을 잘 이해한 다음 내린 판결인지도 의구심이 든다. 이는 의료의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이런 안타까운 사건이 재발되지 않고 의료인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최선의 진료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의료 시스템의 개혁과 함께 의료분쟁특례법을 하루빨리 법제화하고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대한응급의학회 이경원 섭외이사는 “응급실이나 외래에서 한 번이라도 진료한 환자가 며칠이 지난 다음에 사망 등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면 민사 소송에서 손해배상을 해주고, 형사 소송에서 금고형을 받아 법정구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그런데도 이후 보건복지부가 행정처분으로 의사들을 면허정지나 면허취소시키고, 인터넷에서는 악성 댓글로 인격살인을 당할 수 있다. 의사들은 이중삼중사중으로 처벌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 나라에서 의사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 이사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의사들은 그동안 진료실에서, 응급실에서 환자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마음 졸이며 환자만 봤다. 하지만 이제 의사들은 이 땅에 국민과 의사가 어깨를 걸고 함께 하는 그날까지 의료 현장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총파업 필요성은 공감하나 시기는 아직…의협 집행부에 위임
이날 의료계는 총파업이라는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총파업의 시기와 방식을 확정하진 못했다.
최대집 회장은 “오늘 오전 11시부터 대한의사협회 상임이사회, 대의원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의학회, 대한개원의협의회 등과 함께 긴급 의료계 확대 연석회의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전국의사 총파업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다만 총파업 실행 시 시기와 방식의 결정은 의협 집행부에 전권을 위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의사들은 굴욕적인 삶을 버리고 당당히 우리 손으로 의권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라며 “의사들이 최선의 진료를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감옥에 갈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 의료제도를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2000년을 기억하는가. 잘못된 의약분업 강제시행을 막고자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그 뒤로 18년이 지났다”라며 “한순간에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의 희망 만들기가 시작되고 있다. 의사들의 결사적 투쟁이 다시 시작됐다”라고 했다.
이어 “의사들도 힘을 합치면 뭔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라며 “적당한 진료를 강요하는 의료구조를 개혁해 낼 수 있도록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을 반드시 이뤄내겠다. 또한 국민 건강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의사면허 박탈 법안과 한의사들의 의과의료기기 사용을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대표자 30명은 총궐기대회 행사를 마치고 청와대로 이동한 다음 신문고를 울렸다. 철창 뒤에 흰 가운을 입고 서서 마치 감옥에 갇힌 의사들의 장면을 연출했다. 광주광역시의사회 양동호 회장은 13만 의사들을 대표해서 ‘문재인 대통령께 다시! 말씀드립니다’를 낭독했다.
양 회장은 “의료는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에 직결된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인 ‘사람이 먼저’인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의료환경을 개선해 줄 것을 간곡하게 호소한다. 무너져가는 대한민국 의료를 하루 속히 바로 세워달라”고 말했다.
양 회장은 “지난 9월 28일 의정합의에 따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은 의·정간 충분한 논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가는 것으로 정책 변경이 이뤄졌다”라며 “함께 약속했던 다른 사항들(적정수가 논의, 일차의료 기능 강화, 의료인 자율규제 환경 조성 등)도 국민건강을 위해 조속히 이행돼야 한다. 정부는 국민 건강권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의 진료환경을 구축해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