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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 체벌’을 정당화하는 낙후된 정치문화

    정부는 현재의 사태가 국민 전체에게 가해지는 체벌적 함의를 진정 모르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원장·고려대 명예교수

    기사입력시간 2024-07-08 17:18
    최종업데이트 2024-07-08 17:18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유명 축구 지도자의 교육방식에 대한 ‘체벌적 요소’를 두고 큰 논란이 일었다. 사랑의 매란 이름으로 회초리를 맞고 자란 세대는 부정적 행동 교정에 대한 체벌을 당연시 여겨 왔다. 널리 알려진 중국의 문화혁명과 경극 배우를 중심 주제로 다뤘던 영화 ‘패왕별희’에서도 이미 세상이 크게 이름을 떨친 거물급 경극 배우로 성장한 과거의 제자가 스승 앞에서 스스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노출하며 노스승님에게 매를 요청하는 장면은 유교문화권의 적나라한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필자가 고등학교 재학시절 교육열이 과잉으로 넘치는 제2외국어 교사는 근무지가 자신의 모교라는 점을 강조하며 제2외국어 성적이 낮은 학생들에게 집단적 사랑의 매를 가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속칭 ‘빠따’를 친 것이다. 체벌 대상 학생 수가 아주 많아 매를 가하는 선생님도 힘들어 지쳐 보였다. 그럼에도 성적이 나쁜 동료 학생들에게 빠짐없이 매우 힘껏 신체적 고통을 주었다. 교사의 교육적인 매는 참교육의 하나로 정당화되던 시대였다. 

    지금 시대에서는 학생 체벌에 대한 허용은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도 학생 간의 체벌이나 일부 교사의 과격한 사랑의 매는 곧장 정보화시대 ‘희생의 제물’이 되기도 한다. 

    교사들은 학생에 대한 체벌 금지나 다른 위해 행위가 교육 현장에서 참교육이 사라지는 한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체벌에 대한 학부모의 개입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과거처럼 선생님에게 자식을 엄하게 벌하여 달라는 부모도 없어졌다. 그리고 교사에 대한 전통적이고 무조건적인 존경심은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학교 폭력과 병영 문화 등 우리나라 곳곳에 여전히 폭력과 체벌은 일상이기도 하다. 

    급발진과 역주행 정책에 망가지는 의료시스템 

    우리나라는 의료를 대상으로 형사처벌을 하는 나라다. 선진국 의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의사에게 최악의 의료환경으로 평가한다. 의료를 형사범죄화하는 우리나라는 도대체 무슨 법적 논리로서 처벌을 하는지 매우 궁금하다. ‘교통사고 특례법’이라는 의료와는 동등성 불가한 원칙을 근거로 내세우기도 한다. 체벌로 인해서 참교육이 사라진다는 주장이나 형사처벌의 결과로 필수 의료가 소멸되는 것은 얼핏 다른 사안처럼 보이나 분명 공통 요소도 보인다. 필수 의료 의사에게 부정적 의료 결과로 가해진 형사처벌은 인신구속도 가능한 사회적 체벌인 셈이다. 

    영국의사회는 몇 년전 의사를 대상으로 한 검찰 조사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였던 기억이 있다. 의사가 공포스런 환경에서 어떻게 소신 진료가 가능하겠냐는 것이 문제 제기의 핵심 내용이었다. 형사나 검찰 조사만으로도 의사가 느끼는 심리적 정신적 부담감은 분명 의료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없다. 심리적, 정신적 부담이나 압박은 곧 육체적 손상으로 연결된다. 형사처벌 국가에서 의사의 소신 진료는 실제가 아닌 이론상의 진료로 바뀐다. 의료의 불문율이 환자의 안전도 중요하나 의사 자신이 형사적 처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적 위험도를 낮추기 위한 방어 의료로 심각하게 변질되는 것이다. 

    공포와 협박, 필수 의료는 죽고 깃발만 나부껴  

    의사에게 가해지는 체벌인 형사범죄화는 직접적 신체의 손상이나 물리적 타격은 아니더라도 이보다 더 한 정신적 심리적 피해를 주고 있는데도 공권력과 대중은 의료의 결과가 좋지 않거나 사망, 불구의 경우 반드시 의사에게 상응하는 처벌적 조치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나라들은 현대 의료의 개념인 의료제도를 통해서 배상을 요구한다. 

    영국은 공공의료 중심 국가로 공공의료에서 발생한 의료분쟁의 배상은 NHS(국제보건서비스)가 출연한 NHS Resolution에서 담당하고 사전 조정이 주된 방식이고, 약 1% 정도만이 대부분 NHS가 승소하는 민사소송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OECD의 근간이 되는 유럽의 국가와 비하면 우리나라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높다. 

    OECD 의사 수 평균을 주장하는 나라에서 OECD의 규범이 아닌 의사에 대한 체벌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의 정부와 특히 법조계나 사회의 폭력 감수성이나 민감도, 그리고 수용도의 문제가 매우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분쟁에 대한 배상제도가 허술하여 결국 의사를 인질로 삼아 배상액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끔찍한 이야기도 거침없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요양기관을 강제로 지정·운영을 하고, 여기에 정부가 원하는 대로 원가 이하의 보험상품 구매를 강제화했다. 최소한의 기본 상도덕도 지키지 못하는 모순적 의료제도에서 배상까지 전적으로 의사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징벌은 필수 의료 붕괴에 대못질을 하는 모양새다. 요양기관 ‘강제 지정’을 했으면 배상만큼은 건보공단이 맡아야 최소한 상도의에 맞다고 본다. 의료제도(Healthcare System)라는 현대적 조직 의료(Organized medicine)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개입하는 기구나 기전이 너무 많아 결국 온통 규제와 행정적 처리에 과중한 업무가 부과된다. 

     의료의 전문직업성 하루아침에 양생되지 않아  

    여기에 다른 나라에서 보이지 않는 의료의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사법부의 개입으로 결정하는 의료의 형사범죄화 국가에서 의사가 느끼는 압박감과 체벌적 공포, 특히 수사기관의 압박감과 수치심은 필수 의료 기피에 대한 정당성을 명확하게 부여하고도 남는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체벌에 필수 의료는 기피의 대상이지 선망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정부는 필수 의료 붕괴가 의료정책의 실패임에도 비도적적 진료 등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 그대로 비열하면서도 사악한 용의주도함도 보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는 의료 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탁월성(Excellence)를 추구하는 의학교육에 대한 체벌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나라는 일제 잔재를 계승하는 후진적 의료정책과 발달지연적인 정치가 국민만 바라보고 국가 권력의 남용을 부추기며 전체주의 국가로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국민이 지지하는 선동적 정치는 국민에게 선사할 단기적 만족감 뒤에 결국 장기적 고통을 안겨줄 개연성이 매우 커 보인다. 정부는 현재의 사태가 결국 국민 전체에게 가해지는 체벌적 함의를 진정 모르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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