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와 270조 내용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낙태 시술을 함으로써 의사가 처벌받는 조항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임산부의 낙태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의 직업의 자유와 전문성을 존중해 낙태를 처벌 대상으로만 규정한 형법 조항을 폐지하거나 개정해 낙태의 죄를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낙태죄 개정안, 다시 의사 처벌 조항 포함…헌재 판결에 위배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지난 15일 낙태죄 폐지를 골자로 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발의된 첫 법안이다.
이 대표는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전향적으로 확대하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한다”라며 “국회는 헌재 결정의 취지와 시대 변화에 부응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입법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개정안을 통해 현행 형법의 ‘낙태죄’를 폐지하도록 하고. 형법 27장 ‘낙태의 죄’를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의 죄’로 바꿨다. 또한, 기존 자기 낙태죄와 의사의 낙태죄를 삭제하고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의 죄’로 변경해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자 했다.
특히 이 대표는 “‘태아를 떨어뜨리다’라는 의미를 갖는 낙태라는 단어는 이미 가치판단이 전제된 용어로서 더 이상 우리사회에 존재하지 않도록 했다. 형법 개정안은 인공임신중절을 선택한 임부도, 시술한 의료인도 죄인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모자보건법의 경우 헌재 결정의 취지대로 임신 중기인 22주까지는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기존 사유 외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시켜 실질적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고자 했다. 또한 임신 14주까지는 임부의 요청만으로 다른 조건 없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대표는 “실제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도 3개월 내의 임신중절이 94%를 차지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기간 내에 임신의 중단과 지속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라며 “또한 이 시기 행해지는 인공임신중절은 의료적으로도 매우 안전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표의 개정안에는 다음과 같이 의사 처벌 조항이 포함돼있다.
제26조의2(벌칙) ① 제13조제2항을 위반한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과 제14조제3항을 위반한 의사가 임산부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제13조제2항을 위반한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과 제14조제3항을 위반한 의사가 임산부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과 제2항의 경우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倂科)한다.
제26조의3(벌칙) ① 제13조제2항을 위반한 자(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은 제외한다)가 임산부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제13조제2항을 위반한 자(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은 제외한다)가 임산부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제13조제2항을 위반한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과 제14조제3항을 위반한 의사가 임산부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과 제2항의 경우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倂科)한다.
제26조의3(벌칙) ① 제13조제2항을 위반한 자(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은 제외한다)가 임산부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제13조제2항을 위반한 자(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은 제외한다)가 임산부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안에서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의 처벌에 관한 조항은 의뢰한 자와의 상호 형평성이 어긋나고, 선의로 행한 의료행위에 뜻하지 않는 사고 또는 환자의 거짓 정보 제공이나 응급상황시 의사 등이 환자 건강 상태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수술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간과한 벌칙조항이다. 낙태죄 대한 헌제의 270조 내용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는 판결을 무시한 입법안 제출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정한 허용사유에 규정한 낙태 허용 사유에 사회경제적 이유를 명시해 22주 기간 내에서 낙태를 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의사의 수술 과정의 불가항력적인 상해와 사망에 대해 과실유무와 상관 없이 자격정지를 함께하는 벌칙조항을 신설하는 것은 낙태에 대한 처벌이 위헌이라고 판단된 상황에서 '시대착오' 적인 발상으로 해석된다.
낙태의 죄를 형법에서 처벌을 규정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규정으로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정한 허용사유는 낙태의 죄를 처벌하는 법률이 헌법의 정신에 위배돼 이를 삭제된다면 더 이상은 필요 없는 법률이라고 본다.
본질적으로 여성의 낙태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허용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 기준을 위반한 경우에 또 다시 낙태의 죄를 물어야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낙태 사유의 여성의 자주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침해를 위해 허용 사유를 만들고 이를 위반 하는 경우에는 처벌 규정을 만드는 법률 방식은 이미 실패한다. 다시 말해 법은 있어도 사문화된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과 같다.
낙태죄에 대한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와 270조 내용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 조항을 삭제하고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정한 허용사유도 삭제하면 된다. 낙태를 더 이상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규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사회경제적 낙태사유 담은 위기 임신 보호를 위한 특별법 추진해야
이제는 낙태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위해 낙태를 고민하는 임산부가 출산을 선택하도록 헌재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낙태에 대한 사회 경제적 사유를 넣고 국가가 구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위기 임신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낙태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위기 임신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는 위기임신의 범위는 헌재가 제시한 사회 경제적 낙태 사유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학업이나 직장생활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에 대한 우려,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안정한 경우, 자녀가 이미 있어서 더 이상의 자녀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 부부가 모두 소득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느 일방이 양육을 위해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 상대 남성과 교제를 지속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 계획이 없는 경우, 상대 남성이 출산을 반대하고 낙태를 종용하거나 명시적으로 육아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경우, 다른 여성과 혼인 중인 상대 남성과의 사이에 아이를 임신한 경우, 혼인이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태에서 배우자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 경우, 아이를 임신한 후 상대 남성과 헤어진 경우, 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이들 사유에 해당 되는 경우 1주일간의 낙태숙려 제도를 도입해 일정한 상담을 한 경우 수술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들 중 상담을 통해 낙태를 하지 않고 출산하기로 결정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지원 할 수 있는 범위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법률로 정해 낙태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낙태를 결정하는 경우라도 국가가 이를 안전하게 가능하도록 인공임신중절수술의 관리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
법률을 개정함에 있어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낙태의 죄를 부활시켜 의사와 임산부를 처벌하려고 하지 말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현행 모자보건법에서는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임신중절이 가능한 조항 또한 삭제돼야 한다. 강간의 경우는 입증책임을 완화해 ‘성폭력범죄 행위로 인해 임신했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임신부의 낙태에 대한 요청을 받은 의사라고 해도 신념과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해도 의료법상 진료 거부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도 필요하다.
약물에 의한 낙태에 관한 규정 또한 어느 정도의 기준이 마련돼야 혼란을 피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낙태 약물사용자 74명 가운데 53명이 약물로 인공임신중절이 되지 않아 의료기관 등에서 추가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무분별한 약물 낙태에 대한 구체적인 관리 방안도 개정안에 포함돼야 한다.
끝으로 낙태를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낙태죄 폐지 이후의 다양한 외국의 보완 정책을 배워야 한다. 독일의 경우 임신 갈등 상담 같은 제도가 있으며 비혼이든 기혼이든 자녀 출산 돌봄 가족을 지원하는 포용적 가족정책과 남녀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 및 취업 가족 생활의 균형을 맞추려는 가족정책의 전환기적인 시도' 등이 있었다. 이런 정책을 통해 낙태 증가를 감소시켰듯이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