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치의 목표는 국민의 어려움과 고민을 덜어 드리는 데 있다.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더 많은 공공의 변화를 갖고 올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근본적인 역할은 의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대는 조금 바뀌었지만 하고자 하는 것들엔 변함이 없다.”
4월 총선이 어느덧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가 사회 각계각층의 인재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여당 비대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지아 의정부을지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다만 그는 정확한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한 교수는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한 재활의학과 전문의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전문의,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 장애인건강증진센터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의정부을지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보건기구(WHO) 건강노화 컨소시엄 전문위원, 국제 장기요양네트워크 전문위원, 국민통합위원회 자살위기극복특위위원장 등으로 활동해 왔다. 그는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조카로도 알려졌지만, 최근에 특별한 교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29일 한 교수를 비대위원으로 임명하고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앞둔 대한민국에 필요한 노인 보건정책들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한 교수와 서면인터뷰를 통해 고령화와 자살 문제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 이후 의대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에 대해서도 추가 질의를 통해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한지아 교수와의 일문일답.
전례 없는 고령 인구 증가세…건강노화 위한 보건시스템 갖춰야
-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고령화∙건강노화 분야 관련 일을 해왔다. 노화∙고령화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뭔가.
WHO에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고령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WHO에 의하면 2050년에는 고령 인구가 현재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놀라운 건 고령인구의 약 80%는 보건 제도가 취약한 저개발국에서 살아갈 것으로 예측된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UN은 2021년 12월 UN 총회에서 향후 10년을 UN Decade of Healthy Ageing(2021~2030)이라고 지정하고 고령화에 대한 국제기구, 국가, 국가내 부처 등 협력과 대응을 촉구했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WHO가 담당해 왔고 나도 처음에는 그 과정에 참여했다. 이후에는 건강노화 10년의 4가지 주요 분야 중 장기요양을 담당하면서 고령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 향후 의료비 급증을 막기 위해선 질병 조기 발견과 노쇠 예방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나이가 들더라도 만성질환의 수가 늘더라도 잘 관리를 한다면, 또 노쇠해지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건강하게 일상을 즐길 수 있다. 나이가 많다고 꼭 생물학적 나이가 많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노쇠하면 활동을 하지 못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여러 측면에서 증가한다. 돌봄이 덜 필요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실제 WHO의 ‘건강노화’ 개념은 질병에만 초점을 맞추는 대신에 우리의 내재역량을 유지하고 건강행태를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건강노화를 가능하게 하는 보건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건강검진체계는 질병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노쇠의 정도, 가속화되는 노화를 예방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노쇠와 가속화된 노화를 늦춘다면 돌봄으로 들어가는 비용, 또 노쇠로 인해 더 많아지는 건강 합병증들에 의한 의료비용을 낮출 수 있다. 노쇠와 내재역량을 볼 수 있는 노년 특화검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 우리나라 국민들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은 향후 꾸준히 증가하지만 두 수치 간 격차는 향후 더 벌어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히 소득 수준과 거주 지역에 따라 건강수명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인데 이에 대해선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지역간 건강격차, 소득 수준에 따른 건강격차는 이미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고, 이를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라고 한다. WHO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부서도 따로 있을 정도인데, 세계적으로 보건∙복지 제공의 형평성 차이에서 나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지역간 격차 문제는 지역완결형 의료시스템 구축이 중요한 요소다. 여기서 키워드는 네트워크와 연계다. 지역 내 대학병원, 지역거점병원, 또 의료기관들의 네트워킹을 통해 우선 기존 의료자원의 효율적 사용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최소한 공공성을 띈 의료기관은 환자 동의를 받아 전산을 네트워킹하고 불필요한 반복 검사, 병원 쇼핑을 줄여야 한다. 또 의사간 의뢰시스템을 병원 내에서 지역사회로 확대하는 혁신적인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소득간 격차는 건강행태와도 관련돼 있다. 보통은 소득이 적으면 건강행태도 더 취약하다. 노년기 노쇠 등 내재역량을 볼 수 있는 검진체계, 그리고 이와 관련된 건강행태 상담서비스의 활성화는 모두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보건서비스가 돼야 한다.
요양병원 질 관리 등 감독 강화…노인 삶의 터전도 다양화 필요
- 노인들은 익숙한 집과 동네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돌봄이 필요한 대부분의 노인들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게 현실이다.
치매의 경우만 봐도 속도를 늦추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익숙한 가족과의 만남, 신체활동인데 한국의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이러한 기본적인 부분들에 대해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WHO 장기요양네트워크 전문가들이 한국의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견학했다. 딱딱한 병원같은 환경, 가족사진 하나 없는 병실에 너무 놀라더라.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질 관리 부분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떠나서 한국의 노인들은 일상생활을 하기가 버거워지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사회적 입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들을 돌봐야 할 가족들이 모두 생업으로 바쁘기 때문이다. 이는 노인 당사자들에게도 가혹하지만, 자식들에게도 적지않은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준다. 또 1인 가구 증가하고 있어서 앞으로 요양원, 요양병원에서 노후를 보내는 형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결국 앞서 말했듯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질 관리는 물론 관리감독에 대한 제도적 강화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긴급돌봄, 일상생활 시 이동∙가사∙말벗과 같은 부분들을 제공하는 지역사회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건 아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부분은 국가 지원을 강화하지만, 소득수준에 따른 본인부담률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
현재 재택 또는 시설로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노년기 삶의 터도 다양화해야 한다. 개인 생활공간과 공동체 서비스 공간이 각각 보장되면서 동시에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세대상생주거타운’ 같은 새로운 개념의 주거지가 필요하다. 이번 정부가 집과 같은 환경의 요양시설과 재가의 중간형태의 임대주택 모형도 새로 도입하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 요양병원의 기능 재정립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나.
요양병원의 경우 요양시설과 분명한 차별점을 가져야 한다. 의료의 니즈가 높고 돌봄의 니즈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환자들, 이들을 장기간병 하는 가족들이 마음 놓고 안전하게 일정 기간 주기적으로 환자를 맡길 수 있는 제도 등이 필요하다. 지금은 아급성기 병원에 대한 중간 단계의 필요성이 추가로 나오고 있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기능을 논의하고 다시 정의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 자살률 1위 불명예, 尹 대통령 직접 관심에 향후 낮아질 것
-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다. 자살률이 여타 국가들에 비해 높은 이유는 무엇이고, 꾸준히 지적됨에도 자살률이 낮아지지 못하는 원인은 뭐라고 보나.
많은 이유가 있지만 자살이 개인적인 문제라고 여기는 인식이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에서 보듯 우리 문화에서는 자살이 선택지라는 인식이 있다. 유명 드라마중 자살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드물 정도다. 사회 지도자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재했던 것도 자살률이 낮아지지 못하는 이유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정신건강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서 향후에는 분명 자살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자살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해왔다. 어떤 성과들이 있었나.
많은 성과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8개의 자살과 관련한 상담 번호를 109로 통합한 사례다. 올해 1월까지 109를 홍보하고 100여명의 연예인들이 자발적으로 ‘백구’ 캠페인을 이어가는 등 짧은 시간동안 많은 성과가 있었다. 그 외에도 영상물등급에 ‘자해’라는 부분을 추가 등 보람 있는 특위 활동이었다.
- 정부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정신건강정책 혁신 방안에 대해 평가해달라.
한국의 어느 정부도 정신건강을 이렇게 중점적으로 다룬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고무적이다. WHO는 지난 1948년에 건강을 질병의 부재가 아닌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상태라 정의했다. 우리나라는 2023년이 돼서야 건강의 큰 축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사각지대였던 중독문제, 특히 마약중독의 관점을 처벌에서 질병으로 전환하고, 치료와 예방 정책들은 내놓은 건 전무후무하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마약중독치료와 재활이 각각 복지부와 식약처가 담당하다 보니 분절된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이 부분은 빠르게 시정됐으면 한다.
의대증원 단계적 방식 더 좋았을 것…필수의료 패키지 '실현' 안 되면 증원 소용 無
- 2025학년도부터 의대정원이 2000명 증원될 예정이다. 의료계가 반발하면서 정부와 의료계의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인데, 의대증원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
의대 증원은 필수의료 복원과 지역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 중요한 수단이고, 동시에 필요조건이다.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면 조금은 갑작스러운 증원 규모다. 단계적으로 증원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의사수요 관련 추정치는 예측모형을 사용해 추정한 것인데, 예측모형들은 변수가 많을수록 오류가 많아진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수요관련 추정치는 기술발전이나, 의료의 효율화 등을 고려하지 않은 인구학적인 변화만 변수로 한 추정치다.
기존에 비해 약 65%의 증원이기 때문에 큰 규모이긴 하다. 의과대학이 이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물리적 역량이 있는지 걱정이 많이 된다. 현재 의학교육 인증은 최소기준을 만족하면 교육부에서 학생이 50명이든, 100명이든 승인을 해주면 제도적으로 문제는 없다. 최소 조건만 만족한다면 학생 수의 상한선이 없는 셈이다.
다만 현실에서의 교육은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 의학 교육은 다른 분야처럼 강의실에서만 교육할 수 있는게 아니라 실습이 가능해야 한다. 해부학 실습, 특히 임상실습은 많은 숫자를 공장에서 찍어내는 배움의 방식이 아니라 소수가 소수에게 배워나가는 교육 방식이다. 의료는 생명을 다루고 시행착오가 있어서는 안 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당장 2025년부터 현재의 65% 증원이라 얼마 남지 않은 준비기간 동안 정부는 최대한 의과대학들이 준비할 수 있게 교수 충원, 시설 정비에 대한 비용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증원에 따른 재정지원 계획도 구체적으로 빠르게 명시해야 65%의 증원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진정성이 힘을 받을 수 있다. 또 그래야 의대정원 확대가 우리가 목표로 하는 국민증진을 위한 좋은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 정부가 지난 1일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어떻게 평가하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왜곡된 의료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첫째는 가장 중요한 국민 건강의 입장에서, 둘째는 국민 건강을 보살피는 의료인의 입장에서 살펴봤다고 생각한다.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를 사명감으로만 할 수 없는 현실을 알고 개선안을 고심한 흔적들이 보인다.
정부는 의료인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필수 및 지역의료에 대한 적정 보상을 위한 정책수가 및 지역 수가 개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강화, 수련의 질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 지역의료에 대한 대대적인 재정투자를 약속했다.
결국 필수의료 복원과 지역의료격차는 의사 증원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의료시스템의 여러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충분한 현장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특위 형태를 가동해서 정책을 구체화한다고 명시해 대화의 문을 열어놨다.
다만 5년간 '10조원+α'는 막대한 규모의 재정이다. 재원 마련에 대한 계획이 없어서 실현이 가능할지에 대한 걱정을 조금 하게 된다. 의사 수 확대와 함께 발표한 필수의료 강화 정책이 이행되지 않으면 증원된 의료인력이 필수의료로 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반드시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수반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