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의 2024년 예산이 야당의 제동에 삭감된 가운데 대통령실과 여당,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까지 나서 예산 감액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정부가 지난 2월부터 발생한 의료 공백에 최소 4조원이 넘는 혈세를 투여하고 있지만 내년도에도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이 있다.
정부는 예산 삭감 시 의료대란이 우려된다며 예산 증액을 촉구하고 있지만, 야당과 의료계는 정부만이 현 의료공백을 멈출 수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2일 의료계에 따르면 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정부 예산 677조4000억 중 4조1000억원을 감액하는 예산안을 처리했다. 수정 예산안의 핵심은 정부 예비비를 절반으로 삭감하는 것과 대통령실과 감사원, 검찰, 경찰의 특수활동비 전액 삭감 등이다.
특히 정부는 애초 예비비를 4조 8000억원 편성하고 그중 2조 6000억원은 재난대책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했는데, 민주당은 그중 1조 6000억원만 재난 대책 예비비로 활용할 수 있게 감액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역대 정부에서 예비비는 1조5000억 원 이상을 사용한 예가 없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무려 4조8000억 원이나 편성했다. 이게 말이 되냐"며 과도한 예비비 편성을 비판했다.
정부가 이처럼 예비비를 과도하게 확보하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정부는 의료 공백에 따른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난 3월부터 예비비를 투여해 총 2040억원의 예비비를 지출했다.
올해가 다 가기도 전에 정부가 마련한 예비비가 바닥났지만 30조원에 가까운 세수 결손으로 의료공백 지원에 추가 예비비를 배정하지 못하면서 정부는 지난 9월 24일 국무회의에서 지자체 재난관리기금을 비상 진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특례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지난 2월부터 9월까지 투여된 재난관리기금은 484억원이며, 특례 신설로 정부가 9월 이후 지자체에 분담을 요청한 금액은 총 1712억원에 달한다. 즉 향후 투입될 재난관리기금은 2196억원인 것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655억원, 경기도 344억원, 대구 100억원, 부산 92억원 순이다. 이렇게 확보한 재난관리기금은 상급 종합병원 등 27개 의료 기관과 응급실 비상 진료 인력 채용, 의료 기관 의료진 야간·당직·휴일근무수당 등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사용된다.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예비비 삭감을 꼬집으며 “예비비 삭감으로 국가의 기본적 기능 유지에도 지장을 초래하게 됐다”고 반발했고,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도 “재난 재해에 대해 적기 대응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내년도에도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는 의료대란이라는 '재난'을 막대한 정부 예산으로 틀어막을 셈인 것이다.
정부의 세금 투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10월 25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회의를 열고 지난 2월 20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비상진료체계 건강보험 지원 약 2000억원을 '비상진료 심각 단계' 해지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현 의료공백 사태가 해결되기 전까지 매월 2000억원의 건강보험이 투여된다는 뜻이다. 이와 별도로 정부는 수련병원에 건강보험 선지급금 1조 5000억원을 지급한 상황이다.
현재까지 투여한 예비비 2040억원과 재난관리기금 2196억, 매월 투입되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 약 2조원과 건강보험 선지급금 1조 5000억원 등으로 합치면 적어도 4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을 앞둔 의료 개혁 관련 예산도 만만치 않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은 이미 시행 중인데 복지부는 향후 5년간 정부 예산 10조, 건강보험 재정 20조원을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가운데 정부는 예산을 삭감한 야당을 탓하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2일 서울본관브리핑실에서 열린 ‘야당 단독감액안 정부입장 합동 브리핑’에서 "비상진료체계 유지 예산과 응급실 미수용 문제 해소를 위한 응급의료체계 강화 예산 등이 반영되지 않게 돼 의료공백에 따른 국민의 불편과 어려움이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며 "복지부는 국민의 삶의 질과 건강을 제고하기 위한 예산이 충실히 논의돼 반영되기를 희망한다"고 야당에 예산안 조정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 관계자는 "현 의료대란이 왜 일어났나. 전공의들이 왜 수련병원을 박차고 나갔나. 모두 정부가 일방적으로 잘못된 의대 정원 증원 정책, 의료 개혁을 밀어붙였기 때문이 아닌가. 현재까지 쏟아부은 천문학적 액수의 혈세는 정부가 무리하게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하지만 않았어도 결코 쓸 필요가 없는 돈이었다"고 지적했다.
해당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현 정부 예산으로는 내년도 의료대란을 결코 막을 수 없다. 국민 혈세를 국민적 동의도 없이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언제까지 펑펑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 지 의문"이라며 "지금 당장이라도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중단하면 예비비도, 재난지원기금도, 건보재정도 모두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은 논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고, 결국 반쪽짜리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한 달도 못 채운 채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2일 "한 달도 못 갈 협의체에 왜 야당을 동참시키지 못해 안달이었는지 의문이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으면서 국민 질타는 어떻게든 피해 보려는 얄팍한 꼼수였나"라며 "의료대란은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의 독선과 불통이 만들어 낸 사회적 재난이다. 또한 지난 3월부터 의료 공백 사태 수습을 위해 날린 건보 재정이 2조 원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은 응급실 뺑뺑이를 돌고 있고,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인력들은 과다한 업무에 지켜가고 있다. 대한민국이 어렵게 쌓아 올린 의료시스템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직접 국민께 사과하고, 의료대란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자들을 경질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