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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의료 정책이 부족한 대한민국

    [의대 신설 주장의 폐해와 부작용]⑩ 정재현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부회장·바른의료연구소 기획조정실장

    기사입력시간 2022-10-03 07:50
    최종업데이트 2022-10-03 07:50

    반복되는 의대 신설 주장의 폐해와 부작용  
     

    2020년 의료 파업의 주된 원인이 의대 정원 증원 반대였을 정도로 의료계의 반대가 거세지만, 국회와 정부는 여전히 의대 신설 주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서 여야가 발의한 의대 신설 법안은 8건에 달하며, 새 정부 들어서도 의대 신설이 주요 국정과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커졌다. 의료계는 의대 신설에 대해 막대한 예산 낭비는 물론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의료계 주요 오피니언리더들과 함께 반복되는 의대 신설 주장의 폐해와 부작용을 낱낱이 파헤쳐본다. 

    ①안덕선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교수 최소 110명 확보, 500병상 부속병원 예산 지원 부당"
    ②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 "불 보듯 뻔한 의대 신설 실패 책임은 누가 지나"
    ③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 "의사수 부족 아닌 과잉…‘공공’ 내세운 ‘포퓰리즘’ 의대신설법안"
    ④이태연 대한정형외과의사회장 "일본은 의대정원 축소...의대 신설 주장, 백년 앞을 내다본 것인가"
    ⑤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정원 50명 미만 미니의대 18개교...기존 의대 교육 내실화부터"
    ⑥주신구 대한병원의사협의회장 "의대 신설 수천억 계획하면서...의사는 제일 싼 비용으로 유지"
    ⑦문석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지역 필수의료 공백 여전, 국민에 부담만 초래"
    ⑧최운창 전라남도의사회장 "전문가 의견 무시하고 근거도 없이 오로지 정치인들의 업적을 위한 것"
    ⑨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공공의대·공공병원 설립 주장, 김일성의 철 지난 선전과 같다"
    ⑩정재현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부회장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의료 정책이 부족한 대한민국"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의사를 비롯한 의료 인력의 과잉과 부족 여부는 단순히 외국과의 인력 수 비교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필요 의료 인력 규모를 정할 때는 의료접근성, 의료이용량, 의료의 질, 의료전달체계의 구조, 수가 수준, 보험 체계, 의료인 면허 체계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반영돼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의사 수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최고의 의료접근성과 의료이용량, 의료의 질을 가지면서도 최저의 수가를 보유한 나라에서는 각 의료 관련 지표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변했을 때 의사 및 의료 인력의 증가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질 지를 평가해봐야 한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접근성과 의료이용량을 유지한 채로 의사 수가 현재 보다 더 늘어나게 되면, 대도시를 중심으로 접근성과 이용량은 더욱 증가하게 된다. 접근성과 이용량이 증가한다는 말은 국민 의료비의 증가를 의미하며, 이는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의사 수가 늘어남에도 의료접근성과 의료이용량도 감소시키지 않고, 국민의료비 증가와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막는 방법은 전세계 최저 수준인 의료 수가를 더욱 낮추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현재보다 수가를 더 낮추면 거의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파산할 것이기 때문에 이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정부가 국민의료비 증가나 건강보험 재정 파탄으로 인한 여론 악화를 정치적으로 원할 리도 없다는 점이다. 결국 의사 및 의료 인력 확대 정책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부는 국민들의 의료이용 제한(본인부담금 증액, 개인별 이용가능 의료기관 지정 등), 병의원 개설 기준 강화 등의 강력한 규제 정책을 펼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의사 수가 늘어나면 국민들이 의료를 이용함에 있어 현재보다 더 어렵고 불편해지며, 비싸질 것이라는 점을 솔직하게 말하고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의료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 중에 의사 수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들의 지식 및 숙련도, 의료 시설 및 장비 확보 정도, 의료 접근성, 중증질환 치료율 등 다양한 요소들이 의료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의사 수에서 OECD 최저 수준을 보이지만, 의료의 질을 대변하는 각종 건강 지표에서 세계 최상위 수준을 보인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가진 우리나라 의사들의 업무량이 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수준이 현재보다 낮으면서 업무량도 외국 평균 수준으로 낮아져서 의료의 질이 지금보다 하락한 상황이어야 한다.
     
    의사 업무량을 줄이는 것은 의사들도 원하는 방향이지만, 현재는 업무량을 줄이기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의사들이 높은 업무량을 감수하는 이유는 저수가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저수가 정책을 유지하는 한 업무량을 줄이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의사 수만 늘어나게 되면 과다 경쟁이 발생해 불필요 의료 수요 창출 등의 부작용이 생기게 되고 이는 곧 의료 질의 저하로 이어진다.

    결국 저수가 개선 등을 통한 의사 업무량의 감소 없이 이뤄지는 의사 수의 증가는 오히려 의료 질의 저하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하고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나라보다 의사 수가 많고, 의료 선진국이라고 알려졌던 많은 국가들의 실패가 주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이후 새롭게 의료 시스템을 개혁해 나가야 할 시점에 다른 국가들에서 실패한 정책을 답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입맛에 맞는 통계만 취사선택해서 정책의 명분으로 사용하는 행태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제대로 된 의료 정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OECD 통계가 보여주는 대한민국 의료 현실을 정확히 분석하고, 단순히 통계를 평균 수준에 맞추려는 노력보다 대한민국의 현실에 맞는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만 먹으면 전문의를 예약 없이 당일에 만나볼 수 있는 나라가 의사가 부족한 나라인가? 빅5 병원이나 일부 명의로 알려진 의사가 아니라면 어떠한 수술도 숙련된 전문의에게 일주일 안에 받을 수 있고, 언제든 당일 응급수술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의사가 부족한 나라인가? 야간이든 휴일이든 아파서 응급실에 가면 언제든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가 의사가 부족한 나라인가? OECD 평균에 비해 2배 이상의 의료를 이용하면서도 장기 대기나 지연이 없는 나라가 의사가 부족한 나라인가? OECD 평균 수준의 의사 및 의료 인력 수를 원한다면 OECD 평균 수준의 수가, 의료접근성, 의료이용량, 의료의 질 수준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인들은 OECD 평균보다 우월한 지표는 손대고 싶어하지 않고, 의사 수만 늘려서 보다 많은 의사를 값싸게 이용하고 싶어한다. 정부는 의사 수만 늘리면 이것이 가능할 것으로 여기지만, 현실은 절대로 정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와 국회는 의대신설 및 의대정원 확대 정책의 실효성과 부작용을 냉정히 평가해 의료 인력 수급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저수가의 정상화, 부실한 의료전달체계의 개선,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 등을 통해 왜곡된 의료 이용과 공급을 정상화 시킨 상태에서 필요한 의료 인력을 산출해 의료 인력들이 효율적으로 분산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의료 정책은 곧 국민의 안전 및 생명과 직결돼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국회는 지역구 표를 얻기 위해 무분별하게 발의하는 의대신설 법안을 철회하고, 정부는 주먹구구식 의대정원 확대 정책을 폐기해 올바른 의료 인력 수급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