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20일에 열린 제2차 전국의사 궐기대회는 지난해 12월 10일 제1차 궐기대회와 프로그램이 완전히 같았다. 다만 이번 궐기대회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의 신생아 사망사건에 따른 의료진 구속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중환자 생명권 보호’ 목적이 추가됐다. 교수 직역의 참여 여부가 관건으로 보였다.
이에 따른 프로그램 초안은 9일 의협 상임이사회 때 나왔다. 초안의 격려사에 신동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회장의 이름이 있었다. 신 회장은 그동안 의협회장 후보자 정견발표회를 따로 마련하고 준법투쟁을 연구하는 등 의협과 교수들이 함께 하는 방향성을 고민해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내용의 격려사를 준비하고 있는지 신 회장께 확인했다.
신 회장은 “격려사 진행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11일 오후 대전에서 예정된 정기총회에서 결정하기로 했다”라며 "집행부에도 그렇게 이야기했던 만큼 초안이라도 격려사 명단에 넣은 것은 맞지 않다"라고 했다. 신 회장은 “총회에 최대집 의협회장과 방상혁 상근부회장 등 임원진 4명이 자발적으로 오기로 했는데, 이 때 이야기를 듣고 논의하기로 했다”라고 했다.
12일 오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신 회장은 “최 회장은 갑자기 다른 일정으로 바쁘다며 총회에 오지 않았고 방 부회장 혼자 왔다”라며 “교수들에게 사전에 이야기를 해놨는데 약속을 어겼다”라고 했다. 신 회장은 또한 “의협이 교수들의 협조를 바란다는 발언 외에 궐기대회와 관련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라며 “의협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다 보니, 교수들 간 궐기대회 참여나 격려사와 관련한 논의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협 관계자는 “신 회장은 당일 오지 못하는 사정이 있어서 격려사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라며 “장성구 대한의학회장이 격려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시 장 회장께 질문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답을 받았다.
궐기대회를 2~3일 앞둔 시점에 의협 관계자는 “장 회장은 사정상 격려사를 못하게 됐고 의학회 부회장이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궐기대회 당일 교수들의 격려사는 전혀 없었다. 의협 측은 “교수들이 아무래도 신분상 부담을 느껴 격려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궐기대회 이후 의협 측은 “교수들이 많이 참여한 데 의미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도 “교수들이 격려사를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교수 직역이 집행부에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의협 대외협력이사인 강남세브란스병원 병리과 홍순원 교수가 궐기대회 공동사회를 보기도 했고, 수가협상단에 참여하는 보험이사는 연준흠 상계백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교수협의회나 의학회에서 “교수들이 궐기대회에 참여하는 건 둘째치고 격려사까지 할 명분이 약했다. 문재인 케어를 저지한다는 것은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의협이 교수들의 권익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라며 "이런 절차가 빠진 채 의협의 주장에 교수들이 따라가는 구조라면 동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지난 11일 의협이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던 건강보험 개혁안인 ‘더뉴건강보험’도 집행부 상임이사회에서 필요성에 대한 언급만 하고 지나갔을 뿐, 어디서도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뉴 건강보험은 건강보험 재정 확대에 따른 건강보험 내실화와 실손보험 축소, 국민 보장성 강화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이는 평소 의협의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주장과 흐름을 같이 했다. 의협 관계자는 “여기서 총론만 정한 것이고 각론은 회원들을 비롯해 정부, 시민단체와 정하면 된다”라고 했다. 하지만 회원들은 “총론도 이대로 따라도 될지 아무런 논의조차 없었다”고 지적했다.
14일 의협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과 간담회를 진행한 날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날 의협 관계자는 당시 홍 대표를 만난 직후 “민주당에 대화를 요청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한국당에서만 연락이 왔다“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당은 의협과 홍 대표가 만난 날 의협으로부터 공문을 받았다고 했다. 의협은 적어도 양측에 동시에 공문을 보낸 다음 민주당 비판을 공론화했어야 맞다. 회원들로부터 보수단체 활동을 해오던 최대집 회장의 성향이 취임 이후에도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올 법 했다.
의협은 궐기대회 참여자 수를 5만여명으로 터무니 없게 부풀렸다는 의혹이나 보수단체 사람들을 집회에 동참시켰다는 논란도 낳았다. 급기야 23일 오전 10시 기자들에게도 의협 집행부 첫 정례브리핑을 한다고 하고선 의협에 채용하는 변호사 면접을 봐야 한다며 한 시간 넘게 나타나지 않았다. 의협의 한 출입기자는 기다리는 중에 '의협 첫 브리핑부터 늦장…신뢰는 어디로'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의협 집행부 초기다 보니, 많은 회원들이 가급적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의협 집행부가 계속해서 작은 절차를 무시하고 회원들의 신뢰를 쌓는 노력을 소홀히 한다면, 자칫 작은 틈이 커져서 큰 균열을 만들 수 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 따르면 한 번 유리창이 깨진 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유리창이 깨지는 일이 일어난다.
이번 40대 의협 집행부는 어느 때보다 의료계의 위기의식과 기대감 속에서 탄생했다. 사소해 보이는 절차라도 회원들에겐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하면서 회무를 이어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