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뇌출혈로 사망해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면 병원들이 필수증증질환 응급환자 대응을 위한 유휴 수술장, 중환자실 등을 둘 수 있도록 지원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에 근무 중이던 간호사 A씨는 지난 24일 새벽 뇌출혈이 발생했다. 당시 병원 응급실로 이동했으나 응급 수술을 할 인력이 없어 결국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됐고 끝내 사망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인력과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하자 크게 논란이 일었다. 재직자들이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앱 ‘블라인드’에서는 병원의 대응을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울아산병원 측은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행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이 같은 일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내 대형병원들의 경우 수술장, 중환자실, 수술에 필요한 인력 등이 평상시에도 90% 이상 ‘풀 가동’되고 있다며 이번 사건도 그런 영향이 있었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수술장∙중환자실 항상 꽉 차 있어...평시에 비워둘 수 있게 지원해야
대한뇌졸중학회 배희준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은 “지금 대부분의 상급종합병원은 24시간 응급 수술이 가능하지 않은 체계다. 설령 인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술장과 중환자실이 다 차있기 때문”이라며 “응급환자, 필수증증환자에 대한 치료가 24시간 가능하려면 평소에 (수술실, 중환자실을) 비워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사한 경우로 배 이사장은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중요성이 부각된 음압병실의 사례를 들었다. 평시에 음압병실을 비워둬야 감염병 발생에 즉각적 대응이 가능하듯이, 응급 체계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 이사장은 “응급 체계라면 1년에 365일 중 적어도 350일 정도는 대응이 가능해야 한다고 본다”며 “그러려면 수술실, 병실을 비워놓는 것은 물론 온콜로 대기하는 인력들에 대해 적절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단순히 병실료 지원 수준으론 안 된다. (수술실∙병실을) 비워놓을 때 재료비를 제외한 비용들이 다 나가는 것을 고려해 평소 한 명의 환자를 수술하거나 중환자를 돌볼 때 나오는 수입의 50% 정도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초대형 병원 환자 쏠림 문제...적정 건수만 하도록 규제∙지원 필요
일부 병원들에 지나치게 많은 환자가 몰리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단 지적도 나왔다. 소위 초대형 병원들은 전국에서 몰린 환자들로 인해 다른 병원들에 비해 연간 수술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응급 환자 발생시 유연한 대응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수도권 소재 한 대학병원의 신경외과 교수는 “해당 병원도 최선을 다했을텐데 안타깝다. 고인에게 애도를 표한다”며 “역설적으로 병원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제 때 수술을 받지 못한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초대형 병원들은 저수가 상황에서 인프라와 인력에 투자한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빈틈없이 수술 스케줄을 잡게 되고, 환자들은 중증도와 무관하게 무조건 큰 병원으로 향한다. 정작 고난이도 혹은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들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는 이유다.
이 교수는 “뇌 수술의 경우 10~20시간 하는 경우도 있는데, 1년에 그렇게 많은 수술이 행해지는 병원들의 경우 새벽에도 수술이 잡혀있는 경우가 많아 의사들도 힘들 수밖에 없다. 이는 환자 안전과도 직결되는 부분”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곪을대로 곪은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병원에 환자가 과도하게 몰리지 않도록 규제 하되, 병원들이 그렇게 해서 적정한 건수의 고난이도 수술만 하더라도 수익 보전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간단한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은 더 작은 병원이나 환자가 사는 지역의 상급종합병원 등으로 돌아가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