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료기관 종별 폭행 발생 비율이 의원급이 1.8%인데 비해 병원급이 11.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병상 수가 많은 병원일수록 폭행 빈도가 많았다.
응급실 내 의료인 폭행 사태가 최근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에서 규모가 큰 의료기관일수록 폭행사건 발생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현장 전문가들 재정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주취자 등에 대한 진료거부권을 인정하고 의료진 치료비용 대지급 등 특단의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폭행 비율 50~100병상은 6%인데 300병상 이상은 39% 달해
제주한라병원 김원 부원장(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11일 오후 '안전한 응급실 진료환경 개선방안 모색 국회토론회'에서 응급실 폭행 현장상황 통계를 공개했다.
경찰에 접수된 응급실 범죄는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2009년 42건에서 2018년 490건으로 10년 새 11.7배나 늘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실태조사결과를 봐도 지난 1년간 폭행을 경험한 응급실 의사는 18.1%, 폭언을 경험한 이들은 83.5%나 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규모가 큰 의료기관일수록 폭행사건 발생 비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대한응급의학회지에 실린 경희대학교병원 이경원 응급의학과 교수 연구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폭행발생 비율은 1.8%인 것에 비해 병원급 폭행발생 비율은 11.8%나 됐다.
병상 규모별로 보면 50병상 미만의 폭행 발생 비율은 2.3%인데 반해 50~100병상은 6%, 100~300병상은 12.4%로 증가했고 300병상 이상은 39%에 달했다.
폭행 발생 원인은 의료기관 종별로 차이를 보였다. 병원급은 환자 또는 보호자의 음주 상태로 인한 폭행이 45.8%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의료진의 진료 결과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범행 비율이 20.3%, 대기시간 및 순서 불만이 5.7% 순이었다.
의원급의 경우 의료인 진료 결과 불만으로 인한 범행 비율이 35.6%로 가장 많았고 음주상태에서 이뤄진 폭행 사건 비율이 22.2%, 의료기관 진료비용 불만(8.9%)이 그 뒤를 이었다.
유형별로 봐도 병원급은 일반상해(32.2%), 진료방해(31.4%), 협박(18.6%), 폭언(11.9%) 순으로 범죄 사건이 많았지만 의원급은 폭언 비율이 78.7%로 절대 다수였고 일반상해와 협박이 각각 6.4%로 나타났다.
반면 사건 발생 후 가해자 미처벌 비율은 의원급이 훨씬 높았다. 2019년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뤄진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방안 실태조사'에 따르면 폭행 사건 미처벌 비율은 의원급이 86.5%나 됐고 병원급으 71.4%였다.
폭행에 대한 신고는 병원급이 36.7%, 의원급이 34.4%였으며 고소 비율은 병원급이 9.9%, 의원급이 0%였다.
김원 부원장은 "병상 규모가 클수록, 병원급에서 폭행 발생 비율이 높다. 특히 폭행 피해자 유형을 보면 응급의학과 의료진이 62%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보호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전진료 재정지원 강화하고 주취자 진료거부권 주장
이날 토론회에선 응급실 폭행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해결책도 제시됐다. 구체적으로 사전 예방을 위해 보안인력 재정 지원, 신고의무화, 주취자의 심신장애자 불법 규정 원천 미적용 등이 대안으로 꼽혔다.
의사 출신인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사전 예방적 측면에서 응급의료기관에 상황 예방과 대응을 위한 경찰력 상시 배치가 필요하다. 청원결찰이 배치되면 인건비 등의 비용을 의료기관이 부담해야 한다"며 "공공적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적절치 않고 현재와 같이 응급의료관리료만으로는 내원 환자 수에 따라 충당이 되지 않을 수 있어 국가나 지자체 분담으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발생한 피해에 대해선 신속한 회복을 위해 당사자의 청구가 있을 때 국가나 지자체가 우선적으로 치료비용이나 수리비용을 대지급한 후 대지급자가 가해자에게 구상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가해자가 손해배상을 거부하거나 무자력이어서 피해 의료진이 신체적 상해에 대해 자기 부담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김원 부원장도 "현재 의료법과 응급의료법에 산재한 폭력 관련 법률을 특정범죄 가중처벌죄로 옮겨 강력히 처벌하도록 해야 한다"며 "특히 환자가 주취자 혹은 응급의료법 위반자인 경우 응급의료제공 거부권을 인정하고 주취자는 심신장애자 불벌 규정을 '미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미적용 한다'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병원협회 조인수 경영부위원장은 "응급실 주취 폭력이 50% 가까이 된다. 이외 진료결과 불만이나 대기시간에 의한 폭력은 시스템 상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주취 폭력만이라도 근절할 수 있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며 "현재 보안인력들도 전문성이 부족하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도 없다. 권한도 전혀 없어서 멱살이라도 잡으면 바로 구치소로 간다. 교육 시스템과 권한 강화,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응급의학회 정성필 학술이사는 영국의 사례를 들며 현재보다 더 큰 범주의 폭력 방지 법제화를 주문했다.
정성필 학술이사는 "영국의 경우 비상 근무자에 대한 폭행법에 의해 근무중인 의료진을 폭행한 경우 최대 12개월의 징역형에 처하는데 이는 기존 형량의 2배 수준"이라며 "응급의료법 개정에 멈추지 않고 보건의료 직장폭력 방지법이라는 큰 범주의 법제화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현황 파악을 주기적으로 하고 신고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 폭력을 개인에 초점으로 바라보지 않고 환경적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응급실 서비스 디자인 등 환경에 대한 분석과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간호계는 폭력 발생 위험이 높은 환자를 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 같은 환자에 대해 경찰의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병원응급간호사회 이지향 감사(삼성서울병원 파트장)는 "정신과 환자나 위험물건 소지 환자 등에 대한 의료진의 위험 공유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고 직원을 보호할 수 있도록 엄격한 시설 기준이 필요하다"며 "특히 주취자, 탈원 환자, 행려환자 등에 대해선 신고 발생 시 경찰의 적극적인 지원과 대처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보안요원이 난폭환자를 제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