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증상이 없는 심방세동을 방치하면 뇌졸중, 나아가 심부전에 이를 수 있어 치명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항응고제 처방률이 낮아 적절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개원가와 협력해 더 많은 환자가 진단받고 치료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학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한부정맥학회는 8일 서울스퀘어에서 심방세동 환자에 대한 항응고제 처방률 향상과 진료 시스템 구축 및 실행을 위해 '심방세동 환자의 의료기관간 협력 향상을 위한 공개 토론회'를 열고 개원가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심방세동 진단 및 치료에서 개원가의 현실적인 어려움으로는 ▲경제적 측면에서 비현실적인 심전도검사 수가 ▲법적 측면에서 측정업무를 임상병리기사만 할 수 있도록 하는 비현실적 규제와 오진 문제 ▲의학적 측면에서 자동판독 오류와 조기검진 효과 문제 등이 꼽혔다.
대한임상순환기학회 한경일 정책부회장(서울내과)은 주제발표를 통해 "우리나라 심전도검사 수가는 6400원, 환자부담금 3100원으로 너무 낮다. 미국은 300달러, 영국은 130달러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5.3달러로 심지어 터키와 태국, 헝가리보다 낮고 세계에서 꼴찌 수준이다"면서 "게다가 심전도검사 판독수가가 포함돼 있지 않아 열악한 환경이다"고 토로했다.
또한 "얼마전 X-레이를 잘못 판단해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X-레이 하나로 드문 병을 찾는게 쉽지 않고, 심전도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문제는 대학교수들도 몇십분을 봐야 한다"며 "우리나라 보험기준은 6000원에서 다 하라는 최소진료를 요구하지만, 법원 판단은 최선의 진료 기준을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개원가에서는 자동판독에 주로 의존하는데, 자동판독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한 부회장은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심방세동이 아닌데 심방세동이라 진단하는 'overinterpretation' 비율은 10~20%나 됐다. 반대로 심방세동이지만 이를 진단하지 못하는 'misinterpretation'은 11.3%였고, 특히 나이든 환자에서 빈번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로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심방세동을 발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에서는 이를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 부회장은 "예를들어 환자가 이를 기록해서 병원을 방문하면 의사가 판독을 해야하는데 여기에는 수가가 전혀 책정돼 있지 않다. 그렇다고 돈을 받으면 불법이기 때문에 의사가 공짜로 해줘야 하는 상황이다"면서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에서 이미 확진된 심방세동 환자 100명에 대해 애플워치 진단 정확도를 평가한 결과 34%에서는 진단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의사에게 보여주자 100% 진단할 수 있었다. 지금 단계에서는 의사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부정맥학회 정보영 학술이사(세브란스병원)는 현재 우리나라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위험도에 비해 의약품 사용 비율이 너무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 이사는 "한국인의 심방세동 유병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고, 2060년이면 전체 인구의 6%가 심방세동을 가지게 된다"면서 "CHA2DS2-VASc 점수에 따른 뇌졸중 위험을 보면 우리나라 환자가 해외보다 높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권의 문제인데, 고기만 덜 먹을 뿐이지 치료에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2015년 데이터를 보면 전체 심방세동 환자의 80%가 CHA2DS2-VASc 2점이 넘어 항응고요법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학병원뿐 아니라 개인병원도 포함해 환자 5명 중 4명은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면서 "그러나 항응고제는 실제로 20%밖에 안팔리고 있다. 지금보다 4배 더 팔려야 커버되는 수준이다"고 덧붙였다.
정 이사는 진단하고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대학병원에서, 중간에 유지치료하는 과정은 1차의료기관에서 하도록 역할을 분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심전도나 초음파 등 첫 검사는 대학병원에서 하고, 1개월 가량 추적관찰하며 용량조절 등을 마치면 개인병원에서 관리하다 1~2년 뒤 다시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형태로, 이는 1차의료기관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대한임상순환기학회 김한수 회장(21세기내과)은 "심방세동을 꼭 처음부터 3차의료기관에 봐야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의사들을 트레이닝해서 1차의료기관에서 하는 것이 더 비용효과적이지 않을까 한다"면서 "출혈성 뇌졸중보다 허혈성 뇌졸중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심방세동에서 NOAC이나 항혈전제가 충분히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차의료기관에서 관리한다면 치료 목표에 더 도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정 이사는 "결국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임상순환기내과학회가 출범할때부터 두 학회가 프로그램을 같이 짜고 교육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지난해부터 인증의 제도도 이야기하고 있다"며 "당장은 모든 개원가를 데리고 갈 수 없으니 특정 코스를 듣고 나면 NOAC을 사용할 수 있게 학회에서 인증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지역에 있는 3차의료기관에서도 환자를 전원할 수 있고, 학회는 리스트를 홈페이지에 공개할 수 있다. 그런 방안을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심방세동의 선별검사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지난해 미국예방서비스테스크포스(USPSTF)는 65세 이상의 무증상 성인에서 심방세동 진단을 위한 심전도 선별검사의 혜택과 위해를 평가할만한 근거가 아직은 불충분하다고 결론내렸다.
정 이사는 "심방세동은 진단 초기에 사망, 뇌졸중, 출혈 발생이 높다. 진단코드 들어가고 첫 1~3개월 이내 이벤트가 집중되는 만큼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하면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 "대한부정맥학회 지침에서는 65세 이상 인구에 대해 기회 검진(opportunistic screening)을 우선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부정맥학회 김진배 정책이사(경희의료원)는 "심방세동은 뇌졸중, 나아가 심부전 위험이 있어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그러나 증상이 없다 뇌졸중이 온 다음에야 심방세동을 발견하는 경우가 거의 1/3을 차지한다"며 "만성질환은 빨리 잡아내 일찍 치료하면 당연히 예후가 좋아진다. 고혈압도 국가검진에 들어가면서 인지율과 치료율이 높아졌다. 이는 국가에서 어떤 정책으로 집중적인 지원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에서 위암 발병률이 높아 내시경 검사가 건강검진 항목으로 편입됐는데,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한 스크리닝 효과에 대해서는 현재 근거가 없고, 다른 국가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며 "심전도 검사를 건강검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은 이런식으로 조금씩 환자들을 더 일찍 발견해 케어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의미다"고 덧붙였다.
대한부정맥학회 오용석 이사장(서울성모병원)은 "고령화 사회에서 심방세동 환자를 어떻게하면 뇌졸중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 좋은 약도 개발돼 있지만 여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못쓰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아직도 아스피린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오늘 토론회가 개원가에서 필요한 점, 학회에서 협조할 수 있는 점을 허심탄회하게 교류해 좀 더 탄탄한 협력구조를 만들고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한수 회장은 "심뇌혈관질환의 증세는 나이가 들어 나타나지만 실제 질병은 이른 나이에 시작해 1차의료에서 이런 환자들을 어떻게 보고 관리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실제 중요성에 비해 가장 관리가 잘 안되는 부분이 심방세동이다. 1차의료기관에서 할 일이 있고, 3차 의료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유기적으로 환자를 잘 케어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과정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