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대법원이 환자에게 68회에 걸쳐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했지만, 암을 진단하지 못한 한의사의 행위가 합법하다는 최종 판결을 내려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는 지난 18일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관련 의료법 위반 재상고심 선고에서 '상고 이유 부적격'으로 상고기각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보조적 수단의 초음파 사용 보건‧위생상 위해 없다"…새로운 판단 기준 제시
해당 사건은 한의사인 A원장이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약 2년 동안 환자에게 초음파로 68회나 검사를 하고도 자궁내막암 진단을 놓친 사건이다. 이후 A원장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은 의료인이라 하더라도 면허된 의료행위만 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제27조 1항 위반으로 기소됐다.
앞서 1심인 2016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A씨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것은 면허 외 의료행위라는 판단에 따라 의료법 위반죄를 적용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했으나, A씨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A씨는 이후 항소를 기각한 2심 판결에도 불복해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갔으나, 대법원은 A씨의 의료행위가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려 해당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재심리하도록 파기환송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검찰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9부가 한의사 초음파 기기 사용을 무죄로 선고한 파기환송심에 불복해 이례적으로 재상고했다.
대법원은 ▲한의사가 진단 보조 수단으로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통상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한의사가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게 한의학적 의료행위 원리에 따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하다는 게 명백한지를 종합적으로 봤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판단 기준'을 고려해 사회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앞선 대법원 판결처럼 한의사가 한의학적 진료행위를 했고 이를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초음파 기기를 사용해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의협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정책 개선" vs 의협 "오진·치료기회 상실, 환자 피해 우려"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합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에 대한한의사협회는 즉각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과 관련한 소송이 완전히 종결됐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의협은 "사법부의 정의로운 법리와 판결에 따라 조속한 시일 내에 한의사의 모든 현대 의료기기에 대한 자유로운 활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정책과 제도의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한의협은 또 "국민의 건강증진과 진료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서둘러야 한다"며 "뇌파계와 X-ray방식 골밀도측정기까지 한의사의 사용을 허용하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X-ray와 관련된 법령도 신속히 개정해 줄 것"을 보건복지부에 요청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아연실색하는 표정이다.
의협은 "대법원은 국민건강을 위험에 빠뜨리는 또 하나의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말았다"며 "이번 대법원의 판단으로 인해 앞으로 면허 범위를 벗어난 한의사들의 의료행위가 범람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의협은 "의료법에서 당초 면허 행위를 구분한 목적은 오로지 국민건강 보호를 위해"라며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의 가장 큰 위해는 전문성과 숙련도를 갖추지 못한 자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오진과 치료기회의 상실"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초음파 기기의 사용은 전문성과 숙련도를 기르기 위한 이론적, 실무적 교육을 이수한 의사들이 다루고 있다. 따라서 단지 '초음파 검사는 무해하다'는 논리로 한의사들이 초음파 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비의료인도 초음파 기기를 '사용 가능하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의협은 "향후 수십 회 초음파 검사를 하더라도 이를 발견하지 못해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면 국민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것"이라며 "이를 초래한 대법원의 잘못된 판단을 강력 규탄하며 앞으로 이러한 일들로 인해 더 많은 피해가 양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