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대법원이 한의사 초음파 검사를 허용한데 이어 뇌파계 검사를 허용한 판결을 내리자, 의료계가 환자에게 미치는 위험성을 우려하며 경고하고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의과의료기기인 EEG(뇌파계)를 사용해 보건복지부로부터 한의사 면허 자격정지처분을 받은 한의사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면허자격정지처분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자격정지처분을 취소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뇌파검사를 사용한다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다며, 대법원이 한의사 EEG 사용을 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이 지난해 12월 22일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단하지 않은 판결에 이어 이번 뇌파계 사용에 대한 판결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노출되고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정사회를위한의사들의모임(공의모)은 이날 즉각적으로 성명을 내고 “EEG는 쉬운 검사가 아니다. EEG의 시행과 해석은 굉장히 어렵다. 그렇기에 6년간의 의과대학 정규교육을 마쳤다는 이유로 EEG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는 없다”고 했다.
공의모는 “EEG를 시행하고 결과에 대해 해석까지 하기 위해 6년간의 의대 정규교육 외에도 5년간 인턴과 신경과 레지던트 수련을 받으며 수많은 환자들을 겪어야한다. 의사들이 신뢰하는 EEG 해석 결과는 이런 전문가들이 내놓은 결과”라고 했다.
공의모는 특히 한의학은 현대의학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며,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의모는 “현대의학은 고대 그리스의 4체액설과 사혈요법등 비과학적인 의료들을 귀납법 등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폐기시키고 진리를 탐구하며 발전해왔다”라며 “반면 한의학은 음양오행론, 기 등 동양철학을 근거로 과거의 선배들이 행해오던 의료를 연역적으로 무비판적으로 현대에까지 이어져왔다. 한의사들은 '투명인간이 되는 법' '사랑의 묘약 만드는 법'이 담겨있는 동의보감의 내용들을 한의학을 근거로 비판할 수 있는가”고 지적했다.
이어 “2013년 한 방송에서 체질에 안 맞는 약재가 닿으면 팔이 내려간다는 유사과학을 시연한 한의사가 한의사 사회 내부에서 비판을 받았음에도 올해까지도 여전히 의료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라며 “한의사가 EEG를 시행하면 진료실에서 이런 설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나”고 되물었다.
공의모는 “이번 재판에서 EEG를 시행한 한의사는 EEG를 잘못된 용도로 사용했다. EEG를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는 EEG가 필요없다는건 의사들에게 상식이며 세계신경학연맹 등 외국의 수많은 신경과 학회들도 EEG를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소용 없다고 지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것은 한의학에 현대의료기기가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의사가 되고 싶은 것 뿐이다. 그러기 위해 한의사들은 환자의 안전과 위해에 상관 없이 현대의료기기 허용 판례를 늘리고 싶어한다”라며 "지난 12월 한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68회 이상 실시하고도 자궁내막암을 발견하지 못해 치료시기를 놓쳐 현대의료기기인 초음파 사용으로 고소당한 사건에서 한의사에게 초음파 검사를 허용하는 판결이 나오자 한의사협회가 환영의 뜻을 표했다"고 덧붙였다.
공의모는 “현대의학은 한의학과 철학적, 과학적 원리가 다르며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허용은 환자에게 위해를 끼친다. 판사 본인의 가족이라도 뇌파검사를 한의사에게 받도록 할 것인가. 재판부는 더이상 한의사를 의사로 만들지 말라”고 강조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뇌파계를 한의학적 원리와 접목된 의료기기로 인정해 한의사가 뇌파계를 사용하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참담한 심정이다. 향후 국민건강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학회는 "면허정지 처분을 취소하면서 용도·원리가 한의학적 원리와 접목된 의료기기는 허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취지에 대해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은 공감할 수 없다"라며 "독일의 생리학자이자 정신과의사인 한스 베르거가 1924년 처음으로 사람의 뇌파계를 기록했다. 전기생리학을 기반으로 한 뇌파계가 한의학적 원리와 접목됐다는 근거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의사들의 뇌파계나 초음파 사용은 스스로 한의학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무시당한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한의학에서 언급조차 없으며, 한국어 이름조차 아닌 서양 학자의 이름을 딴 파킨슨(Parkinson)병을 한의원에서 진단한다는 자체가, 뇌파계를 이용하든 하지 않든 웃지 못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의사회와 학회는 "의료행위는 인간의 생명, 신체 또는 일반 공중위생과 밀접하고 중대한 관계가 있다. 의료법은 의사와 한의사가 각자 면허를 받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어느 쪽이든 무면허 의료행위가 된다"라며 "법치주의 국가에서 기존의 법과 체계를 무시하는 판결이 반복된다면, 이는 국민건강의 문제와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번 판결을 보면 마치 의사들이 뇌파계를 이용해서 치매나 파킨슨병을 뇌파계로 진단해온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했다.
의사회와 학회에 따르면 치매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병력이다. 치매의 중등도를 평가하기 위해 뇌MRI를 촬영해 해마 등의 위축을 관찰하고, 신경인지기능검사(SNSB,CERAD등)를 통해 심각도를 판단한다. 파킨슨병의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고 운동증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PET영상을 이용해 조기 진단에 도움을 받지만, 뇌파계는 파킨슨의 진단과 무관하다.
의사회와 학회는 "파킨슨병의 진단은 고도의 전문지식과 다년간의 경험이 필요하므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조차 파킨슨이 의심되면 신경과 의사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한의사가 뇌파계로 진단을 내렸을 때, 환자가 느낄 절망감 및 다른 의료기관에서 처음부터 진단절차를 밟아야 하는 사회적 비용 손실이 크다"고 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는 파킨슨 질환과 치매를 다루는 유관 전공과로, 국민의 건강을 씹던 껌 정도로 사소하게 생각하는 법원의 판결에 우려를 표했다.
의사회는 "이번 판결은 뇌파 검사로 파킨슨과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는 것과 한의사(Herbalist & Acupuncturist)들이 뇌파 검사를 해도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법원은 뇌파 검사가 누르기만 하면 원하면 물건을 얻을 수 있는 자판기처럼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며 "그러나 뇌파 검사는 의사들 중에서도 신경 관련 전공자 일부만이 시행할 수 있는 특별한 검사로, 결과의 분석에 따라 치료방향이 달라지는 매우 섬세한 검사"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소송의 시작인 ‘뇌파 검사로 파킨슨질환과 치매를 진단한다’는 내용자체가 한의사(Herbalist & Acupuncturist)의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라며." 뇌파 검사로 파킨슨질환과 치매를 진단한다는 발상이 크게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사회는 "현대적 의료기기를 원리와 작동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의사(Herbalist & Acupuncturist)에게 맡기는 것은 법원이 양심을 내버린 것이다. 뇌파 검사가 현대적 개념에 의해 설계됐으므로 그 해석과 치료 역시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시행돼야 한다"라며 "뇌파 검사로 파킨슨질환과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고 믿는 수준의 한의사(Herbalist & Acupuncturist)에게 맡겨진 뇌파 검사의 해석과 치료의 위험성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한의사(Herbalist & Acupuncturist)들이 뇌파 검사를 시행하겠다는 것은 이윤추구 이외에 어떤 이유도 변명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의사회는 "비극적인 판결을 비판하고 규탄한다고 환자들이 건강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판결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판결에 참여한 법관들은 앞으로 발생할 희생자들에게 속죄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