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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가능하지 않고 의료의 질을 떨어트리는 건강보험 저(底)부담 정책

    [칼럼] 정재현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부회장·바른의료연구소 기획조정실장

    기사입력시간 2021-12-01 10:12
    최종업데이트 2021-12-01 10:24

    한국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
    ①우리는 바른 의료를 누리고 있는가
    ②의료보험의 정의와 역사
    ③지속 가능하지 않고 의료의 질을 떨어트리는 저부담 정책 

    3. 대한민국 의료보험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1) 3저(底) 구조 – 저(底)부담, 저(底)보장, 저(底)수가
     
    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저(底)부담 정책

     
    대한민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정부 주도하에서 국민 소득 수준이 미치지 못함에도 급하게 도입됐고, 보험 대상자도 소득 수준에 비해 빠르게 확대됐다.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미치지 못함에도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했으므로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들이 의료보험 강제 가입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하려면 의료보험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던 외국에 비해서 보험료를 낮게 책정할 수 밖에 없었다.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을 낮춰서 보다 많은 국민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정부의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저(底)부담 정책은 필연적으로 저(底)보장과 저(底)수가를 불러 올 수 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이후 문제 발생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저(底)부담에 익숙해진 국민들은 몇 천원의 의료보험료 인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상당수 국민들이 의료보험료를 더 낼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의료보험료 인상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의료보험료는 저렴해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이 깊이 박혀 있는 상황에서 적정 수준으로의 보험료 인상은 당연히 국민들의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낮은 보험료 덕분에 현재도 우리 국민들은 의료를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하고 있고, 이는 통계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주로 2019년 통계를 분석해서 발표)를 보면 보건의료부문 서비스 및 재화에 소비된 국민 전체의 1년간 지출 총액을 의미하는 대한민국의 경상의료비는 201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8.2%로 OECD 평균(8.8%)에 비교해서 다소 낮았다.
     

    경상의료비는 의료보험료 지출 이외에도 의료 관련 지출 전체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의료보험료 이외 추가 지출까지 포함해도 아직까지는 OECD 평균보다 의료 관련 지출이 적다고 볼 수 있다. 지출은 적지만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접근성을 통해서 월등히 많은 의료 이용량을 누리고 있고(2019년 국민 1인당 의사 외래 진료 횟수 연간 17.2회로 OECD 국가 중 전체 1위, OECD 평균은 6.8회), 각종 건강 관련 지표들에서도 OECD 최상위 순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봤을 때 대한민국 국민들은 ‘저비용 고효율’의 의료를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에 의해 강제로 유지되고 있는 지금의 ‘저비용 고효율’ 의료 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의료비 지출이 OECD 평균보다는 낮다고 하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의료 관련 비용 지출은 현재도 적지 않으며 실제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건강보험과 관련해서만 저(底)부담을 하고 있을 뿐 실제 국민들의 의료비 및 사보험 부담은 적지 않다. 또한 현재의 건강보험료는 준조세의 성격을 띄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고, 재산 및 소득 수준에 따라서 보험료를 누진 적용하기 때문에 고소득층의 보험료 부담은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현 시점에서의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OECD 평균보다 약간 낮지만 2014년 6.5%에서 2019년 8.2%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같은 기간 OECD 평균이 8.7%에서 8.8%로 0.1%만 증가한 것만 보더라도 엄청나게 빠른 증가 속도이다. 따라서 현재의 경상의료비 증가율이 유지되면 조만간 대한민국의 경상의료비는 OECD 평균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저비용 고효율’ 구조에서 바로 저비용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② 건강보험의 질을 떨어뜨리는 저(底)보장 정책
     

    OECD 보건의료통계를 보면, 보험제도의 보장률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지표인 경상의료비 중 정부 및 의무가입제도 비중에서 대한민국은 2019년 기준 61.0%로 OECD 평균인 74.1%보다 낮았다. 대한민국보다 이 비중이 낮은 국가는 멕시코, 그리스, 칠레, 포르투갈뿐으로 대한민국의 보장률이 전 세계적으로도 현저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상의료비 전체 규모는 이미 OECD 평균에 접근하고 있는데 보장률이 낮다는 말은  단일공보험 제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의료 재원에 대한 정부의 공적 지출이 미비하다는 뜻과 함께 건강보험 제도만으로는 충분히 국민들의 의료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로 인해 경상의료비 중에서 가계직접부담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D 평균이 19.8%인데 반해 대한민국은 30.2%로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2014년 33.9%에 비하면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계직접부담 비율이 높기 때문에 국민들은 의료비로 인한 가계부담 위험을 낮추기 위해 실손보험 등 사보험에 적극적으로 가입하고 있다. 2020년 신용정보원 가입자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들의 실손보험 가입자는 39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의 75%가 넘는 국민들이 실손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68%를 기록했던 실손보험 가입률이 4년 동안 꾸준히 더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가입자 연령을 50대 이하로 낮추면 가입률이 80%를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통계. 자료=한국신용정보원

    그런데 문제는 건강보험 보장률은 답보 상태에 있는 상황에서도 국민들의 진료비와 건강보험의 급여 지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OECD 발표와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에 63.4%를 기록했던 건강보험 보장률은 문재인 케어가 시작된 지 1년 이상 지난 2019년에도 64.2%에 불과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건강보험 재정 지출은 48조2000억원에서 70조9000억원으로 급격하게 늘었고, 흑자를 유지하던 재정도 2019년부터 적자로 전환됐다. 그리고 같은 기간 건강보험 지출액 증가만큼은 아니지만 국민들의 건강보험료 부담액도 계속 증가해 2015년 직장가입자 10만510원, 지역가입자 8만876원이었던 세대당 건강보험료 부담액은 2019년 직장가입자 12만152원, 지역 가입자 8만6160원으로 늘어났다.
     

    결국 매년 국민들의 건강보험료 부담은 늘어나고, 건강보험 재정은 적자 전환되면서 재정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정작 문재인 케어 등 보장성 강화 정책을 펼쳐서 달성하고자 했던 건강보험 보장률의 상승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건강보험이라는 단일공보험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률로 인해 국민들은 의료비로 인한 가계재정 파탄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강제로 징수당하는 건강보험료뿐만 아니라 실손보험 등의 사보험에도 가입해 이중지출을 감수하면서까지 위험 부담을 낮추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③ 저(底)보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
     

    그렇다면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급격히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보장률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이유를 알아야 현재 단일 공보험 체계인 건강보험 재정비와 완전히 새로운 보험체계 추진 중에서 선택해 국민들의 부담은 줄여주면서도 가장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보험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보장률이 오르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급격한 고령화 진행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고령화 진행은 전 세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15.7%로 향후에도 계속 증가해 2025년에는 20.3%에 이르러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고령자의 경우는 비고령자에 비해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 이용 및 의료비 지출이 늘어난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드러나는데, 2018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건강보험 상 1인당 진료비는 448만 7000원, 본인부담 의료비는 104만 6000원으로 각각 전년보다 32만 5000원, 3만 1000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지금의 고령화 속도가 유지된다면,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늘어나도 보장률을 올리기에는 역부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령사회 또는 초고령사회에 대처가 가능하면서도 보다 유연성 있는 보험 제도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지금처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보장률이 오르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의학의 급속한 발전 때문이다. 아직 인류는 정복하지 못한 질환들이 많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특정 질환에 대한 치료법이 있는 경우에도 보다 더 효과적이면서도 경제적인 치료법들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지금 현재도 새로운 의학기술이나 약제들은 쏟아지고 있지만, 이러한 의학 발전의 속도를 건강보험이 따라가면서 이를 급여 기준에 반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신 의학 기술이나 약제 중에는 반드시 환자들에게 적용돼야 하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비급여 의료 행위는 현실적으로 사라질 수도 없고, 사라져서도 안 된다.
     
    모든 비급여 의료를 금지시킬 수도 없고, 모든 비급여 의료를 건강보험에 포함시켜 급여화시킬 수도 없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의학 기술과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다. 그리고 국민들은 점점 건강과 의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새로운 치료법이나 약제들의 신속한 도입을 원하고 있다. 따라서 마치 모든 비급여를 급여화해 비급여를 없애 버릴 것처럼 홍보하던 문재인 케어는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를 지금 전 국민이 알게 됐고, 고통 역시 분담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으면서도, 언제든 협의와 조정이 가능한 유연한 보험 체계가 필수적이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보장률이 오르지 않는 세 번째 이유는 국민 개개인의 다양한 의료 이용 요구를 획일적인 건강보험이 충족시켜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자 살아온 환경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건강과 의료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르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다양하면서도 정밀한 검사를 받고 가격과는 상관없이 가장 최고의 치료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비용과 효과를 따져가면서 가장 적정한 수준으로 의료를 이용하기 원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다면 굳이 의료를 이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건강과 의료에 대한 개인의 요구 조건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보험의 보장 내용이 너무 부족하게 보일 것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 건강보험은 보험료만 많이 뺏어가는 불필요한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문제는 건강보험의 급여 기준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준이 획일적일 수 밖에 없고, 이러한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많든 적든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은 건강보험 가입이나 보장 내용과 관련해 어떠한 선택권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선택권을 인정해주지 않으니 국민들은 건강보험이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자신의 의료 이용 요구를 사보험을 통해서 충족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듯 획일적인 단일공보험 체계에서 국민들의 보험료 이중지출은 필연적이다. 국민들의 보험료 관련 이중지출을 없애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보장내역을 선택할 수 있는 형태의 보험 체계가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보장률이 오르지 않는 네 번째 이유는 건강보험의 방만한 운영과 잘못된 의료정책으로 인해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재원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의료보험은 국가가 주도해 만들어지고 변화해 왔기 때문에 보험자인 의료보험 공단간의 진정한 경쟁은 없었다. 다만 2000년 이전에는 직장 의료보험과 지역 의료보험이 분리돼 있어 보험자들의 경영 실적이나 업무 성과 등이 비교가 됐기 때문에 운영을 방만하게 하게 되면 실적과 성과로 드러날 수밖에 없어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모든 의료보험 공단이 건강보험공단 하나로 통합되면서 약하게라도 남아 있던 경쟁이나 견제 구조가 사라지게 됐고, 이로 인해 건강보험 공단의 방만한 운영은 거의 매년 질타를 받고 있다. 2019년 건강보험 재정이 3조 9000억의 적자를 기록했을 때도 임원들에게 3억 600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한 사실만 보아도 건강보험의 방만 운영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정부가 주도해 강제가입과 강제지정을 법제화시켜 운영하는 공보험 제도는 필연적으로 정부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언제든 이용될 수 있다. 특히나 대한민국처럼 공보험 제도가 하나의 보험자만 두고 있는 단일공보험 제도라면, 정부가 의료보험을 언제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쉬운 구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은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의 도구로 악용돼 온 흑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흑역사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문재인 케어’다. 비급여의 급여화를 통해서 보장률을 상승시키겠다는 정책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불필요한 재정 낭비를 통해서 건강보험 재정만 적자 전환 시켜버린 이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현재 건강보험은 위기에 빠져있다. 이러한 사례만 보더라도 의료보험은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이용할 수 없도록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고, 한 국가의 보건의료 정책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매우 신중하고 중립적으로 결정돼야 함을 알 수 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