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보건복지부가 지역·필수·공공의료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까지 마련하며 지역의료 살리기에 나섰다.
한정된 재원과 인력으로 모든 의료기관을 지원하기보다 지방 국립대병원과 지역거점공공병원, 응급·분만·소아 등 필수의료 분야에 ‘선택과 집중’한다. 공공병원이 없는 지역에서는 민간 포괄2차 종합병원을 활용하고, 특별회계 가운데 약 3500억원은 시·도가 자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다만 의료계 패널들은 정부 대책이 의료공급 확대에 집중돼 있을 뿐 정책의 우선순위와 구체적인 성과목표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재정을 넘겨받을 지방자치단체가 실제로 지역의료를 기획하고 조정할 역량을 갖췄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 손영래 지역필수공공의료실장은 4일 영남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열린 ‘2026년 대한의학회 지역의료정책 심포지엄’에서 ‘지역필수의료, 중앙-지자체-의료기관 협력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를 주제로 정부가 추진할 지역·필수·공공의료 정책 방향을 밝혔다.
전담조직 신설…“공공·민간 따지지 않고 살릴 병원에 집중”
복지부는 최근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던 지역·필수·공공의료 업무를 별도의 ‘지역필수공공의료실’로 통합하고 인력을 확대했다.
기존에는 산모·신생아, 소아, 취약지 산부인과 등 연계성이 높은 업무가 서로 다른 과에 나뉘어 있었고, 의료인력과 의료기관, 건강보험 수가 정책도 종합적으로 조정하기 어려웠다.
손 실장은 “관련 업무가 한 조직으로 모이면서 한 명의 실장 아래 인력과 기관, 건강보험 수가를 함께 조정할 수 있게 됐다”며 “지난 20~30년간 보건의료정책의 제1 아젠다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였다면 앞으로 20~30년은 지역·필수·공공의료가 핵심 아젠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는 ‘선택과 집중’을 제시했다. 지방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중증진료 역량을 복원하고 지역거점공공병원을 육성하는 한편, 응급·분만·소아와 의료사고 안전망, 인력·재정 지원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공공병원만으로 지역의료체계를 구축하지는 않겠다고 강조했다. 전국 약 70개 중진료권 가운데 공공병원이 있는 곳은 40곳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손 실장은 “공공병원 중심으로만 가면 30개가 넘는 중진료권을 포기해야 한다”며 “지방은 공공이고 민간이고 따질 상황이 아니다. 지역거점공공병원과 포괄2차 종합병원을 결합하고, 선정된 거점이 무너지지 않도록 확실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력 유연화·의료사고 안전망 강화…시도에 3500억원 위임
지역의사제 등으로 신규 인력이 배출되기까지 5~10년 이상이 걸리는 만큼 기존 의료인력의 순환·파견·파트타임 근무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의료버스와 순회·방문진료 등 의료기관 밖 진료 규제를 풀고 참여 의료인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안도 논의한다.
손 실장은 “사람이 없어 죽겠는데 경직된 규제로 효율적인 인력 활용을 차단할 것인지 들여다보고 있다”며 “의료인이 없는 지역에서 진료하겠다는 의사가 있다면 처벌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분야의 의료사고 안전망도 강화한다. 손 실장에 따르면 정부가 보험료를 지원해 고위험 필수의료 사고 발생 시 최대 18억원까지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책임보험이 도입된다.
중대한 과실이 아닌 필수의료 사고는 환자와 합의해 손해배상이 이뤄지면 검사가 기소할 수 없도록 하고, 의료분쟁조정 절차가 진행되는 150일 또는 180일 동안 경찰이 의료인을 소환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관련 제도는 2027년 5월 시행될 예정이다.
손 실장은 “민사상 손해배상 재원을 충분히 마련하고, 합의와 배상이 이뤄진 사건은 형사절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양쪽 고리를 함께 끊어야 한다”며 “제도가 잘 작동하면 의료인의 형사절차 부담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약 1조2600억원 규모의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 가운데 약 3500억원은 시·도가 지역 상황에 맞게 사용하는 자율재정으로 편성된다.
손 실장은 “중앙정부가 크게 간섭하지 않고 시·도가 지역의료 문제를 분석해 계획을 수립한 뒤 필요한 분야에 재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지자체의 의료정책 기획·평가 역량과 책임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특별회계 가운데 약 5000억원은 기존 사업이 이전된 것이며, 실제 신규 또는 증액된 사업은 약 6000억원 규모라고 설명했다.
“좋은 얘기 판타지처럼…목표·실행 역량 안 보여”
정부가 전담조직과 재정을 마련했지만 패널들은 대책의 우선순위와 성과목표가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비판했다.
강릉의료원 최안나 원장은 “국립대병원부터 지역거점공공의원까지 모든 층위의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사람은 어디에서 나오느냐”며 “지역의사제가 시행돼도 실제 의료인력이 배출되기까지 최소 15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의 수도권 대형병원 선호와 과도한 의료이용을 그대로 둔 채 공급만 확대하면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정부 대책에는 좋은 이야기가 판타지처럼 펼쳐져 있지만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국민에게 어떤 의료 결과를 제공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며 “투입 목표만 있고 결과가 계량화돼 있지 않으면 돈은 돈대로 들고 실제로 무엇이 개선됐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도 자율재정에 대해서도 “돈을 준다고 과연 지자체가 지역의료를 살릴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공공과 민간을 나누지 말고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책임자를 정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울산의대 조민우 교수는 국립대병원 중심의 지원을 넘어 지역 민간병원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 교수는 “포괄2차 종합병원 약 190곳은 대부분 민간병원”이라며 “어떤 소유 형태나 지위 때문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공공의료체계 안에서 역할을 하도록 해 실제 지역 간 의료격차를 줄이는 결과로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치료가능사망률 격차를 줄인다는 큰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세부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며 “보건복지부 장관과 시·도의 책임, 중앙정부의 지원 역할을 명확히 하고 중진료권 단위에서 의료기관과 기초·광역자치단체가 협력할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