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침몰하는 소청과를 겨우겨우 지탱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정부의 지원을 호소했다.
소청과 의사들은 전문의들의 희생으로 겨우 진료대란을 막고 있는 상황임을 알리며 이대로 가다간 소아청소년 건강안전망이 붕괴될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의 속도감 있는 정책 지원을 촉구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대한아동병원협회가 16일 대한의사협회 대회의실에서 '소아청소년 건강안전망 붕괴위기 극복을 위한 합동 기자회견'을 통해 소아청소년과 진료 붕괴 위기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김지홍 이사장은 "인구의 17%인 소아청소년의 필수 진료를 담당하는 소아청소년과 3차 수련병원의 전문 인력 부족으로 중환자 진료와 응급진료의 축소 및 위축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라며 "소아청소년의 건강 사회 안전망이 위협받는 위기 상황을 직감하고 있음을 알리고자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지홍 이사장은 "소청과는 소아 진료의 특성상 많은 시간이 투여되고 업무 강도도 높은 데 비해 비정상적으로 낮은 보장성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40% 가량 진료량이 격감해 이미 일차진료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노동 집약적인 필수 진료과에 대한 보상 지원 정책의 변화가 없고 중환 진료에 따른 의료 소송과 의료진의 책임 전가 등으로 전공의 기피 현상이 최악으로 악화돼 올해 전공의 지원율이 207명 중에 33명이 지원해 15.9%로 급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공의의 지원율이 바닥을 치면서 이미 전체 수련병원의 75%에서는 교수가 본인의 업무 외에 추가적으로 당직근무를 서고 있고,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응급진료는 이미 축소되고 있으며 향후 병동 진료와 중환자 진료 축소도 예정된 수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서 조사한 수련병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진료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응답한 수련병원이 75%에 달한다.
김지홍 이사장은 "학회는 소아청소년과 진료 대란을 방지하고 사회 안전 건강망의 붕괴를 우려해 전공의 인력 유입과 진료 인력난 해소를 위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뒤이어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지난주 서울 은평구의 한 아이가 열성 경련으로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해 수시간 끝에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알리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도 소아진료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을 설명했다.
임현택 회장은 "전공의가 제일 많은 4년차가 188명인데, 내년에 소청과를 지원한 전공의는 33명이다. 과연 서울시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중환인 아이를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이 있을까 굉장히 우려된다"며 "더 이상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바라만 봐서는 안된다고 본다. 하루빨리 근본 대책이 나와야 우리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그는 "개원가에서는 지난 5년동안 동네 소아과 병원 662개가 폐업을 했다. 어떤 의사분은 한 달 수입이 25만원이었다는 분도 있었다"며 "마이너스 상황을 버티고 버티다 폐업한 분들이 정말 수도 없이 많다"고 전했다.
임 회장은 "소아과 의사는 정부가 월급을 주는 공무원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공무원 연금조차 받지 못하는 공무원 처지다. 지난 5년동안 계속해서 정부에 우려를 제기했지만 정부는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며 "아이들 건강 인프라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정부 뒷받침이 절실한 상황이다"라고 강조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 박양동 회장은 "2019년 2월에 인천 길병원에서 소아과 전공의가 110시간 동안 근무하다 과로사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것이 최근 길병원의 입원병상 가동 중단과 연결되지 않나 생각된다"며 "정말 당국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소아과 진료 시스템은 그대로 무너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김지홍 이사장은 "현재 굉장히 어려운 상황임에도 1차 진료의 많은 선생님들이 사명감을 갖고 환자 진료에 애써주시고 있고, 아동병원도 야간 응급실을 열어 진료에 임해주고 있다. 3차 병원도 대학병원 교수가 사력을 다해 무너지고 있는 댐을 막고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 다행히 큰 사고가 우후죽순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이 너무나 눈앞에 뻔히 보이게 때문에 이런 기자회견을 열게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이 30%대로 떨어진 것이 벌써 2년 전부터다. 그때부터 이미 1차 진료 의사들이나 개원의, 대학 교수, 아동병원 원장들이 딱 자기가 해야할 일만 했다면 소청과 진료 붕괴문제가 이미 터졌을 것이다"라며 "교수들이 당직을 선지도 2년이 됐다. 교수가 당직을 섰다고 다른 일을 제외해주는 것도 아니고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전공의가 없으니까 누군가는 응급실을 지켜야 해서 교수들이 알아서 돌아가며 당직을 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1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코로나 때문에 잠깐 그런 것이니 조금 참으면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끼면서 이대로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라며 "소청과 전문의들은 마지막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 남아있을 것이다. 소청과를 지킬 사람은 우리다. 하지만 최소한 배가 가라앉기 전까지 다른 대책이 나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김 이사장은 정부를 향해 "소아청소년 건강 안전망이 붕괴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대통령 직속 논의기구를 만들어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기재부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현장 상황에 맞는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국회가 법과 예산으로 뒷받침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드린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