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대법원이 한의사 초음파 사용 합법 결정에 이어 뇌파계 진단기기도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의료계와 한의계가 극과 극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넘어선 것이 아니라는 법원의 판단이 잇따라 나오면서 이에 반대하던 의료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가운데 숙원사업을 달성한 한의계는 두팔을 벌려 법원의 판결을 환영하는 모양새다.
대법원이 18일 외과의료기기인 뇌파계로 치매와 파킨슨병을 진단해 보건복지부로부터 한의사면허 자격정지처분을 받은 한의사 A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복지부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7년 전 내려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며, 한의사가 현대 진단기기인 뇌파계를 활용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밝혀준 판결이다.
의협 "의료인 면허제도 근간 흔들고, 국민 건강에 위해 초래하는 판결…경악과 분노"
지난해 12월 22일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을 실질적으로 허용한 판결에 이어 뇌파계까지 사실상 허용하는 판결이 나오면서 대한의사협회는 즉각 경악과 분노를 표하며 해당 판결이 의료와 한방의료를 이원화해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을 무시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의협은 재판부를 향해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단 한번이라도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의과의료기기를 사용함으로써 국민과 환자에게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였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의협은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함과 동시에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일반 공중위생과 밀접하고 중대한 관계가 있다. 이에 의료법은 의료인 면허 제도를 통하여 의료행위를 엄격한 조건하에 의료인에게만 허용하고 무면허자가 이를 하지 못하게 금지할 뿐만 아니라, 의료인도 각 면허된 범위 이외의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의료법 제2조는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하고,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적시해 의사와 한의사가 각자 면허를 받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의료직역의 축적된 전문성과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면허의 경계를 파괴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채 흔드는 것"이며 "무면허의료행위가 만연하게 돼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이번에 도마 위에 오른 '뇌파계'는 한의학적 원리와 관련이 없고, 뇌파검사(EEG)를 포함한 전기생리학적 검사 등은 파킨슨병과 치매의 진단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견을 세계신경학연맹(World Federation of Neurology), 국제 파킨스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International Parkinson and Movement Disorder Society), 아시아 오세아니아 신경과학회(Asian and Oceanian Association of Neurology)에서도 제시한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포기한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발생할 현장의 혼란, 국민보건상의 위해 발생 가능성, 그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에 대해 극도의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번 판결로 발생하게 될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피해는 온전히 대법원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한의사들이 이 판결의 의미를 오판해 의과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등 한의사 면허 범위를 넘어서는 의료행위를 시도한다면, 이를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불법적인 무면허 의료행위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의협 "한의사 의료기기 규제 철폐해야…현대 진단기기로 효과적 한의약 치료 시행할 것"
이에 반해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에 "초음파 판결에 이은 또 하나의 정의롭고 당연한 판결이 나왔다"고 평가하고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됐다"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한의협은 "최근 들어 초음파와 뇌파계 등 한의사의 현대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사법부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결이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정부당국은 이 같은 사법부의 준엄한 판결에 따라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고, 이를 활성화 할 수 있는 제도를 하루빨리 마련해 국민의 진료 선택권을 보장하고 편의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대 진단기기는 양의계의 전유물이 아닌 한의학의 과학화와 현대화에 필요한 도구이자 문명의 이기이며, 이를 적극 활용해 최상의 치료법을 찾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의 당연한 책무"라고 밝히고 "초음파와 뇌파계 등 다양한 현대 진단기기로 보다 더 효과적인 한의약 치료를 시행해 국민건강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