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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의사 되고 싶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다"…필수의료 의사 '윤리적 좌절' 심각

    장원배 제주대병원 교수, 고위험 필수의료 위기를 의료진과 환자의 관계윤리 문제로 분석

    기사입력시간 2026-10-23 14:24
    최종업데이트 2026-10-23 14:24

    사진=AI 생성 이미지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응급·중환자·고위험 분만 등 필수의료 현장에서 의사가 옳다고 판단한 진료를 실현하지 못할 때, 그 경험은 업무 피로를 넘어 자신이 '좋은 의사'로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력과 병상, 전원체계가 부족한 현실에서 반복되는 윤리적 좌절이 의사와 환자의 치료 관계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제주대학교병원 외과 장원배 교수는 한국의료윤리학회지 2026년 9월호에 실린 논문 '고위험 필수의료의 윤리적 복원: 치료동맹과 제3자 구조를 통한 현대적 의료공급자 윤리의 재구성'에서 고위험 필수의료 의사가 겪는 번아웃과 도덕적 고통, 도덕적 상해가 어떻게 연결되고 환자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장 교수는 필수의료 위기를 설명할 때 주로 거론되는 인력 부족과 낮은 보상, 지역 간 자원 격차, 의료사고에 따른 법적 책임 부담이 중요한 출발점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조건에서 진료를 이어가는 의사가 어떤 윤리적 충돌을 겪는지도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선 다하고 싶지만 병상·인력·시간 허락하지 않을 때 '윤리적 좌절' 겪어

    고위험 필수의료 의사들은 불완전한 정보와 제한된 시간 안에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적절한 처치를 했더라도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거나 사망할 수 있다.

    따라서 의사의 판단이 실제 치료로 이어지려면 함께 일할 인력과 병상, 검사·전원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장 교수는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거나,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도 병상과 전원체계의 한계로 실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의사는 환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면서도 그대로 실천하지 못할 때 윤리적 좌절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논문은 이러한 경험을 세 가지 개념으로 구분했다. '번아웃'은 고강도 업무와 수면 부족, 감정노동 등으로 정서적·인지적 자원이 고갈된 상태다. '도덕적 고통'은 옳다고 믿는 진료를 제도적·조직적 제약 때문에 실천하지 못하면서 겪는 좌절이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돼 '이 조건에서 내가 좋은 의사로 계속 일할 수 있는가'라는 자기이해까지 흔들리면 '도덕적 상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장 교수의 해석이다.

    장 교수는 논문에서 "의료공급자는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천할 수 없다는 도덕적 고통을 경험한다"고 설명했다. 도덕적 상해 역시 단순히 일이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환자를 위해 일하려는 자신의 가치와 이를 진료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손상되는 경험으로 봤다.

    필수의료 의료진, 자신 탓하거나 환자 질문을 '책임 추궁'으로 받아들여

    장 교수는 이러한 상처가 '내재화'와 '외부화'라는 두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 반응은 의사의 고정된 성격을 뜻하지 않으며, 한 사건에서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내재화는 인력·병상 부족이나 예측하기 어려운 임상 경과까지 자신의 판단과 헌신이 부족했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료 결과를 돌아보는 성찰은 필요하지만, 모든 한계를 개인의 실패로 떠안으면 죄책감과 수치심, 자기비난이 깊어질 수 있다. 논문은 좋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책임감이 오히려 자기소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부화는 최선의 진료를 가로막은 시스템의 한계에 분노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의사 개인에게만 돌아올 수 있다고 느끼는 방향이다.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불신이 굳어지면 환자와 보호자까지 잠재적인 책임 갈등의 상대로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

    장 교수는 "환자와 보호자가 치료 결과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면서도 "도덕적 상해가 외부화된 의료진은 그 질문을 치료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선의를 의심하는 신호로 경험할 수 있다"고 봤다.

    그렇게 되면 설명은 환자와 함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사후 책임에 대비한 기록으로 바뀌고, 진료 판단은 치료 목표보다 책임 노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울 수 있다.

    그는 "내재화가 심해져 의사가 환자와의 관계에서 위축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두 방향 모두 의사와 환자가 공동의 치료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수의료 지속하려면 환자와 의사가 함께 치료 목표 세울 조건 필요"

    장 교수는 해법으로 환자와 의사가 위험과 불확실성을 공유하고 함께 치료 목표를 세우는 '치료동맹'을 제시했다. 이는 의료진의 책임을 없애자는 뜻이 아니다.

    그는 "좋은 의료인은 모든 위해를 예방하거나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한계 속에서도 환자의 가치와 의학적 판단을 조율하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의료사고나 치료 결과를 둘러싼 갈등은 환자와 의사가 직접 대립하도록 남겨두지 말고, 독립적이고 공정한 제3자 절차를 통해 사실관계와 개인의 책임, 시스템의 영향을 살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환자·유족의 설명 요구와 피해 회복, 의료진의 공정한 평가 요구를 함께 다루고 그 결과를 재발 방지로 연결해야 한다는 취지다.

    장 교수는 고위험 필수의료의 위기를 두고 "좋은 의료인이 되고자 하는 전문직적 이상과 이를 실현하기 어려운 현대 의료의 조건이 충돌하면서 나타나는 관계윤리의 위기이기도 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