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유독 2025년 의료계 신년하례회는 많은 국회의원들이 참석하면서 인산인해를 이뤘다. 보통 신년하례회는 의료계의 정책파트너인 보건복지부 차관급 이상 인사가 참여하는 것이 관례다. 지난해에도 박민수 차관이 참석했다.
그러나 올해는 의료대란 사태로 인해 정부 측에선 1명도 참석하지 않은 대신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국민의힘에선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총출동하는가 하면, 정책위의장, 복지위 간사, 의사 출신 국회의원 등 10여명 이상이 대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복지위 간사와 더불어 당 중진 의원, 의사 출신 야당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자리를 빛냈다.
이처럼 다수 국회의원들이 대한의사협회를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대비적으로 지난해인 2023년 신년하례회엔 국민의힘 최재형, 서정숙, 조수진 의원, 민주당은 남인순 의원만이 참석했다.
여야 모두 김택우 신임 회장에 '눈도장 찍기'?
올해 의료계 신년 하례회가 국회의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이유는 여야당 모두 '의대증원' 문제 해결을 위해 의료계에 대화를 촉구하기 위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여당은 대통령 체포와 탄핵 위기라는 초유의 사태에서 의료대란 해결을 위해 '여의정협의체' 재가동을 노리고 있는 만큼, 의협 김택우 신임 회장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이날 의협을 찾은 권성동 원내대표는 자신이 강원도의사회 전 회장인 김택우 회장과 같은 강원도 출신임을 강조하며 "강원도 사람들끼리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서 문제를 풀자"고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은 셈법이 좀 다르다. 야당은 정부여당 주도 사태 해결 보단 국회가 나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그림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에서 먼저 주장했던 의대증원 정책 추진 과실을 현 정부여당이 독차지하게 된 상황에서, 장기화되고 있는 의료대란 사태 해결을 민주당이 주도하기 위한 밑그림인 것이다.
실제로 앞서 지난해 한동훈 전 당 대표가 '여야의정협의체'를 처음 제안했을 때도 민주당은 전공의 등 의료계의 참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명분으로 협의체 참여를 거부한 바 있다.
신년하례회를 찾은 박주민 복지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차원에서 대화하자. 국회는 열린 마음으로 수평적으로 얘기할 준비가 돼 있다"며 "문제 해결의 공을 다툴 필요는 없지만 국회 차원에서 열린 대화가 신속히 이뤄져 모든 문제가 해결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의협과 병협 조금은 다른 '의료대란' 시각차…의협은 '신중에 신중'
이와 함께 신년하례회에서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회장들이 낸 메시지를 보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이들 각 협회의 태도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우선 의협 김택우 회장은 "윤석열 정부가 결자해지하고 제대로 된 마스터플랜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먼저 대안을 내놓기 전까진 의료계가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이 같은 강경한 태도는 의협의 '2020년 9.4의정합의' 사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완강한 문제 해결 방향을 옅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가 먼저 대안을 내놓기 전까진 의료계가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이 같은 강경한 태도는 의협의 '2020년 9.4의정합의' 사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완강한 문제 해결 방향을 옅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와 의료계가 원하는 사태 해결 방법론과 방향성이 상이한 상황에서 자칫 대화부터 시작할 경우, 어설프게 협의체만 가동되고 문제 해결은 지지부진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이때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를 시작했으나 의료계가 지나친 주장을 해 협의가 어렵다'는 빠져나갈 명분이 생긴다. 결국 여론은 의료계에 불리해지고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협의가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의협 관계자는 "현재 정부와 의료계가 원하는 사태 해결 방향성이 다르다. 정부는 문제 본질을 고치려기 보단 단순히 전공의만 돌아오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대화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협 관계자는 "2020년 9.4의정합의 당시 의협 집행부와 전공의들의 사태 인식이 달랐다. 섣부르게 대화에 나서지 않은 김택우 회장의 태도는 당사자인 젊은의사들 입장에서 사태를 해결하려는 김 회장의 신중한 모습이 옅보이는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당장 병원 경영 악화에 병협은 '전공의 복귀' 최우선
반면 병협은 입장이 좀 다르다. 최대한 빨리 사태가 정상화돼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에 복귀하는 것이 병협의 최우선 목표다.
병협 이성규 회장은 신년하례회에서 "새해엔 수련 환경을 떠난 전공의와 교육 현장의 의대생들이 빨리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길 바란다. 최근 병원들이 악화된 환경과 경영난 등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젠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신뢰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존중과 배려로 소통, 화합하는 상생의 길을 걸어가자"고 메시지를 냈다.
즉 이성규 회장은 '의협이 이젠 정부와 대화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어려운 병원계 상황을 고려해 의-정이 협의해달라고 촉구한 셈이다.
이는 병원 경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데, 소위 그동안 병원의 '값싼' 노동력으로 치부되던 전공의가 대부분 사직하면서 지난해 상반기에만 주요 대형병원에서 5752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정부가 경영난으로 74개 수련병원에 지급 시기를 앞당겨 지원한 선지급금 규모만 1조4844억원에 달한다.
의료계 관계자는 "사태 해결 방법론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입장이 미세하게 다른 만큼 문제를 풀어갈 주체인 의협과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병협의 입장도 미묘하게 갈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