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3일 성명서를 통해 “커뮤니티케어는 실효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이며, 많은 부작용을 양산해 의료의 왜곡을 심화시킬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커뮤니티케어를 냉정하게 재검토하고, 의료계는 실효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인 커뮤니티케어 참여를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 6월부터 케어가 필요한 주민(노인, 장애인 등)이 살던 곳(자기 집, 그룹홈 등)에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보건의료‧요양‧돌봄‧독립생활 지원이 통합적으로 확보되는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 정책 선도사업을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병의협은 “커뮤니티케어는 국민들에게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마음껏 최선의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윤택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냉정하게 득실을 따져보고 실현 가능성에 대한 연구 없이 이상적인 목적으로만 추진되는 정책들의 결과는 항상 부작용만 양산한 채로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고 했다.
병의협은 “실제로 정부가 커뮤니티케어의 대상으로 벤치 마킹한 일본은 만만치 않은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지자체별로 적절히 조정된 형태로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향상시키고 지역사회에 의료 사각지대가 없게 만들려면 환자들이 의료기관에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에는 의료기관 개설을 유도할 수 있는 지원책 등의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커뮤니티케어의 문제점을 재정추계 없는 포퓰리즘 정책, 공무원 등 인력 증원의 부작용, 법적 안전장치나 실효성 없는 방문진료, 지역의사회가 콘트롤타워가 될 수 없는 한계 등 4가지로 들었다.
재정추계 없는 포퓰리즘 정책
병의협은 우선 커뮤니티케어는 제대로 된 재정추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병의협은 “현재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64억원 가량의 국비 지원을 생각하고 있다. 선도사업 추진계획에서 보건복지부는 중앙 정부에서 50%, 지자체가 50%의 재정을 부담해서 선도사업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고 했다.
병의협은 “커뮤니티케어는 일단 선도 사업 계획만 있지 전체적인 사업의 재정추계가 없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복지부는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에 100여 곳의 지자체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으나, 실제로 선도사업을 신청한 지자체는 29개에 불과했다. 상당수의 지자체는 재정적으로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도 감당하기 힘들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병의협은 “현재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 지불을 위해 운용하고 있는 의료급여기금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일정 비율씩 나누어 부담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중앙정부 50%, 서울시 50%)를 제외하고는 지자체에서 20%이상을 부담하는 경우가 없다. 정부의 과소예산 편성은 물론 지자체가 복지관련 예산을 부담할 재정 여력이 낮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커뮤니티케어가 발표되니 간호사, 약사, 한의사, 물리치료사 뿐만 아니라 영양사나 공무원들까지도 서로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덤벼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계가 참여한다면 책임만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커뮤니티케어 참여를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무원 등 인력 증원의 부작용
둘째, 커뮤니티케어는 많은 인력이 투입돼야 하는 정책인 만큼 이로 인해 여러 부작용이 파생될 것으로 우려했다.
병의협은 “커뮤니티케어는 정책의 구조상 많은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 의사 및 간호사는 물론이고 복지 공무원들까지 상당수 증원이 필요하다. 실제로 정부는 사회복지공무원 1만9000여명을 증원하게 되면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 지자체에 우선적으로 배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라고 밝혔다.
병의협은 “현재도 인구 규모에 비해서 많은 공무원 숫자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커뮤니티케어의 시행은 폭발적인 공무원 증원의 명분으로 이용될 수 있다. 방문진료 수가가 어떻게 책정될지 알 수 없으나 높은 수가 책정을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커뮤니티케어에 참여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여론이 형성된다. 전체적인 의사 인력 증원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고 이는 곧 의대 정원 확충의 명분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했다.
병의협은 “정부가 커뮤니티케어를 건보재정 절감의 도구로도 이용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 재정 절감의 방식은 현재 늘어난 요양병원 병상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요양병원의 구조조정이 일어나면 이 곳에서 일하던 의료진들의 상당수를 정부는 저비용의 커뮤니티케어 인력으로 흡수하려 할 것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전체적인 일자리는 줄어들면서 관의 통제를 받는 일자리만 늘어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문진료 법적 안전장치나 실효성 없어
셋째, 방문진료는 법적 안전장치나 실효성도 없고 의료진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으며, 원격진료 시행의 명분으로 이용될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병의협은 “왕진이나 방문진료는 의료가 발전하기 전에 거동이 힘든 환자에게 의사가 왕진가방과 청진기만 들고 찾아가서 진찰행위를 하던 것을 말한다. 지금 이런 수준의 의료 행위에 만족하는 환자는 없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아무런 정밀 의료장비 없이 간단한 진단 기구만을 가지고 시행하는 방문진료는 정확한 진단을 하기 힘들어 오진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법적인 안전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방문진료를 하는 의료진은 최대한 방어적인 진료를 할 수밖에 없게 되므로 방문진료는 형식적인 방문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각종 봉사단체에서 벽지 의료봉사를 가서 감기약과 파스 같은 간단한 의약품들만 노인들에게 나눠주고 오는 수준을 넘기 힘들고, 이 수준을 넘어가면 어차피 의료기관 방문을 권유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선도사업에는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티케어도 포함이 되어 있다. 최근 정신질환자들에 의해 발생하는 강력범죄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방문진료를 하는 것은 의료진들의 안전에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원격진료 도입을 위한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도 들었다. 병의협은 "방문진료 의사가 모든 과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기는 어렵기에 원격진료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펼 수도 있고, 재가 요양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 방문의사가 실시간으로 환자의 상태를 원격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원격진료와 관련한 정부의 억지주장이 예견되는 커뮤니티케어는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의사회의 한계로 정책 콘트롤타워 역할 어려워
넷쨰, 현재의 역량으로는 지역의사회가 커뮤니티케어의 컨트롤타워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이용만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병의협은 "현재 지역의사회는 개원의 중심의 지도부로 구성돼 있어 다양한 직역을 대표할 수 없다. 대부분의 지도부 인원들이 의료정책이나 복지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말하는 커뮤니티케어는 병의원 뿐만 아니라 지자체 및 각종 복지인력들과의 긴밀한 연계를 요구하고 있는데, 지역의사회가 이러한 정책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는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의협은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다른 직종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지역의사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고, 지자체 입장에서도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서 주도권을 못 미더운 의사들에게 넘겨줄 리가 만무하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결국 커뮤니티케어는 지자체 및 보건소가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의사들은 여기서 들러리만 서거나 이용만 당할 가능성이 높다. 지역의사회가 지역 내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들에 영향력이 있는가와 이들을 움직여 정책에 참여시킬 수 있는지 만을 생각해보아도 커뮤니티케어에서 의사회가 가질 수 있는 위치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병의협은 "결국 일본처럼 지역의사회의 역량과 권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커뮤니티케어가 진행되면 의사가 주도권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재 의협은 의사회 권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전문가평가제에만 목숨 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며 "의사회가 진정으로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동료에 대한 통제나 관리를 먼저 고려하기 전에, 회원들이 안정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는 의료 환경과 정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이를 지역사회에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