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에선 지난 2018년 폐교된 서남의대 사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전북의대 권근상 교무부학장은 28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서남의대 폐교 후 전북의대가 서남의대 학생들을 편입학으로 받았던 경험을 공유하며, 부실의대 방지를 위해 의대정원 확대 이전에 준비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정원이 110명이던 전북의대는 서남의대 정원 32명을 갑작스레 받으며, 정원이 3분의 1가량 늘어나면서 진통을 겪었다.
기존 전북의대 학생과 서남의대 출신 편입학생들 간 갈등이 있었고, 늘어난 학생으로 인해 좁은 강의실, 임상술기시설·임상실습 기회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교수 1인당 학생도 편입 이전인 2017년 3.8명에서 편입 이후인 2023년 5.5명으로까지 늘어나며 교수 부족 현상으로도 이어졌다.
권 부학장은 “(의대증원을 한다면) 학생 증원과 병행해 적시에 교수를 충원해야 한다”며 “최근 대학병원의 교수 지원이 감소하고 이탈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는데, 의대증원으로 학생 교육에 대한 부담감이 늘면 이탈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어 “갑작스럽게 2025학년도부터 정원이 크게 늘어나면 준비되지 않은 대학에선 이런 아픔이 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의대 동시에 대규모 증원되면 평가·인증 부담 커져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윤태영 부원장은 2025학년도에 다수의 대학에서 의대정원이 한꺼번에 대거 늘어날 경우 평가 인증에 대한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평원은 각 의대들이 기본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환경을 갖추고 있는지 평가해 인증을 해주는 기구다. 의평원 규정에 따르면 정원이 10% 이상 늘어나는 대학들은 의평원에 별도의 계획서(주요 변화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의평원은 필요할 경우 현지 방문 등을 거쳐 인증 기간이나 여부 등을 바꿀 수 있다.
윤 부원장은 “의대정원 증원이 확정되면 40개 가까운 대학들이 주요 변화 계획서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의평원은 이미 내년에 8개 의대에 대한 현지 방문 평가, 15개 의대에 대한 중간평가가 계획돼 있어 상당히 어려운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 기존의 평가인증단 외에 의학교육 모니터링과 적절성 자문 평가단이란 새 조직을 만들었다”며 “내년에 증원이 발표되면 그에 따라 관련 규정, 지침을 마련하고 2025학년도부터 그해 입학생이 졸업하는 6년 뒤까지 매년 현장의 상황에 대한 평가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의대정원 결정할 별도 기구 구축 필요…의대증원 20년간 한시적 시행 제안도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종태 정책연구소장은 의사정원을 결정하기 위한 독립적인 상설 자문기관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금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거나, 의료계가 자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신력 있는 기구가 과학적, 체계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적정 의사 인력 수를 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실제 네덜란드의 경우 1999년 설립한 별도의 자문기관이 의료인력 수급 시뮬레이션 모형을 개발하는 등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잡았다.
이 소장은 “네덜란드의 사례를 배웠으면 한다”며 “별도 기구가 의사인력 수급 예측 모델을 개발하고, 의사부족이나 과잉을 방지하기 위해 의대생 정원, 전공의 교육 수련 등의 정책에 대해 정부 권고안을 개발하도록 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대한기초의학협의회 김인겸 회장은 의대정원 증원을 20년간 일몰제로 시행하자고 했다.
김 회장은 “현재 출생아 수가 연간 27만명이고 의대 정원이 3000명대”라며 “산술적으로 인구 100명당 의사 1명이 되는 건 시간 문제다. 장기적으로 증원을 지속할 순 없고, 이번에 증원되는 건 20년간 한시적으로 증원하는 걸 전제로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