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최근 사법부가 녹지국제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도록 한 병원 개설허가 조건이 위법이라고 판단하면서 영리병원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민단체는 한번 영리병원이 설립되기 시작하면 헬스케어 빅테크 기업이 직접 영리 의료기관을 설립하는 법률적 토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동시에 외국의료기관 근거법률조항의 폐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보건의료단체연합∙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전국농민회총연맹∙참여연대∙한국진보연대는 2일 '영리병원 재점화 논란과 한국의료의 위기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이서영 기획국장은 향후 헬스케어 빅테크 자본과 영리병원이 결합해 의료영리화가 가속화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민감함 개인 의료 데이터도 상업적 목적으로 빅테크 기업들에 의해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기획국장은 "향후 영리병원이 허가되면 의료 데이터가 의료기관 밖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영리병원이 빅테크 자본과 연결돼 빅테크 기업들이 직접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럼 데이터도 이들에 의해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국장에 따르면 현재 헬스케어 빅테크 기업들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라이프로그 정보 수준의 개인 건강 데이터만 모을 수 있다. 그러나 빅테크 기업과 영리병원이 결합될 경우 더욱 민감한 의료정보가 영리병원에 축적되고 이를 토대로 빅테크 기업들이 수익모델을 창출해 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게 이 기획국장의 견해다. 실제로 정부 건강데이터 플랫폼 사업인 '마이헬스웨이'가 민간업체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가 하면, 카카오의 카카오헬스케어 론칭, 네이버의 의료 빅데이터 사업 진출 등이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의료가 민간에 의해 공급되는데 영리적 의료가 허용되는 순간 국민 건강이 영리 추구의 도구로 추락할 수 있다"며 "오히려 공공의료의 강화가 필요한 때인데 영리병원 설립과 영리적 헬스케어산업은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리병원 추진을 막기 위해 외국의료기관 근거법률조항의 폐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제주특별법은 외국인 투자 비율이 출자총액의 50% 이상이거나 미화 500만 달러 이상의 자본금을 가진 외국계 의료기관에 한해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녹지제주는 2017년 8월, 800억원 상당을 투입해 녹지국제병원을 건립하고, 제주도에 개설 허가 신청을 냈다.
이에 현재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제주특별법 내 영리병원 허용 조항을 삭제할 수 있도록 법률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이찬진 실행위원(변호사)은 "국회는 제주특별법 상 외국의료기관 근거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며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의 실증 사례인 녹지 제주가 과연 의료허브 설립 취지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다. 의료선진서비스의 국내 도입을 통한 국민건강권 확대가 맞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제주녹지국제병원 관련 사법부 판결은 수가와 의료행위의 법률적 제한 등 국내 건강보험시스템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기계적 해석이 적용됐다"며 "이는 국내 의료체계에 매우 큰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영리화저지제주도민운동본부 오상원 정책기획국장도 "제주특별법 내 의료기관 개설 등 특례 조항은 사실상 영리병원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라며 "원래 영리병원 설립 목적이 국내 거주 외국인을 위한 것임을 감안해 영리병원 허용 조항을 아예 전면 삭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