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명관 칼럼니스트] 한 달쯤 전에 처음 보는 노부인과 그의 딸이 의원에 왔다. 남편의 왕진 요청을 위해서 왔다고 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일차의료기관 왕진 시범사업은 재진 환자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의사의 판단으로 초진 환자도 가능하도록 돼 있다.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이 많지 않아서 검색을 해 보고 인근의 의원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어서 초진 환자도 왕진 요청이 가끔씩 있는 편이다.
거리도 멀지 않고 사정을 들어보니 왕진이 꼭 필요한 경우라서 진료를 마친 후에 방문하기로 했다.
당뇨병이 있던 환자가 오래전에 뇌출혈이 왔고 반신불수로 거동을 못하던 차에 식사도 못해 비위관(L-tube)으로 음식을 공급했다.
그러나 식도 협착으로 그마저도 불가능해 경피위루관 (PEG) 시술을 받고 퇴원, 집에서 소독도 하고 음식물도 경피위루관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시술 부위에 염증이 있는지 고름이 있는지 색깔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어 왔으나 사진 만으로 판단하기엔 곤란하다고 생각됐다. 보호자의 걱정은 병원에 가야 하는지(환자가 PEG뿐만 아니라 도뇨관도 달고 있고 반신불수라 병원에 가려면 119를 불러야만 한다.) 집에서 계속 관리할 수도 있는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에 의사의 판단이 필요하다. 의사는 판단하는 사람이다.
진료를 마친 후 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간호사와 함께 환자의 집으로 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 주택 거실에 환자의 침대가 있었다. 일본의 왕진의료 제도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환자들을 봤는데, 왕진 시범사업 후 우리나라에도 이런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환자는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에서 전적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이고 오랫동안 그런 환자를 돌보느라 보호자는 절반은 의사가 돼 있었다.
혈당 기록이라든지 보관하고 있던 두툼한 환자의 입원진료 기록들을 검토하고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환자의 혈압과 혈당은 안정적이었고 보호자들이 걱정하던 PEG 부위의 염증은 입원하지 않고도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판단됐다.
소독을 하고 항생제 주사를 맞혔다. 항생제를 복용하면서 관리해 보자고 했다. 환자 보호자에게 소독 방법을 교육하고 당분간 소독 횟수를 하루 1회에서 2회로 늘리도록 했다.
보호자가 환자의 피부 알레르기 등에 대해 물어 와서 거기에 대한 조치와 주의사항도 일러 줬다. 항생제 처방을 1주일 하고 1주일 후에는 보호자만 시술 부위의 사진을 찍어 가지고 의원으로 오시도록 했다. 물론 그 이전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즉시 오도록 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듣고 느끼셨겠지만 이 환자가 병원으로 가거나 입원하는 것과 집에서 이렇게 의사의 진료를 받고 약물 처방을 받는 것과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왕진을 할 수 없었다면 환자는 119를 불러서 병원에 가야 한다.
3층에서 1층까지 80kg이 넘는 환자를 업고 내려와야 한다.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라서 외래 이용도 힘들 수 있고 응급실을 이용하거나 입원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비용과 시간 소요뿐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의 고생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퇴원 후 집에서 돌보기가 쉽지 않고 병원에 장기 입원을 하고 있는 환자가 많다.
일주일 후에 환자의 딸이 방문했다. 약도 먹고 소독도 교육받은 대로 해 시술 부위의 염증 상태가 나빠지지 않고 호전 중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의식 상태도 더 좋아졌다고 했다.
환자는 올 수 없었지만 일주일마다 환자의 딸이 10여 장의 사진을 찍어 와서 상의를 하고 약을 처방받아 갔다. 상태가 호전돼 며칠 전에 환자의 항생제 처방을 끊기로 했다. 총 3주가 걸렸다.
코로나19로 정부에서 원격의료 사업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는 말이 들린다. 그러나 감염병 유행 시기에 일시적으로 필요한 일을 평상시에까지 확대할 필요는 없다. 환자의 건강이 아니라 산업을 위한 일을 코로나19를 핑계로 추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정말로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가까운 곳에 언제라도 상의하고 필요한 경우 왕진을 올 수도 있는 주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료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주치의가 있으면 환자 상태에 따라 전화 진료도 하고 원격진료도 하고 왕진도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